“핵폐기물 때문에 원수지겠네.”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공모 발표 이후 전국 원전지역 마을의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핵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자는 ‘개발론’과 핵쓰레기는 더 이상 안 된다는 ‘환경론’이 팽팽히 맞서 벌써부터 여론이 분열되고 있는 것. 주민이 환경단체와 한목소리로 정부에 맞섰던 90년대 안면도 굴업도 사태 때와는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다. 주민 내부의 대립은 정부와 환경단체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지역사회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27일 산업자원부는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유치 공모를 발표한 직후, 환경단체들로부터 “산자부와 한국전력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돈과 바꾸려 한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산자부 발표의 골자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국 46개 임해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부지 60여만평에 대한 유치 신청을 받은 뒤, 심사를 통해 내년 3월 최종 후보지를 선정한다는 것.
선택된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역 개발과 주민소득 증대 명목으로 2100억원이 지원되며,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에는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분 시설과 사용 후 연료(고준위) 중간 저장 시설이 2008년과 2016년까지 각각 건설될 계획이다. 산자부는 핵폐기물의 성격상 육상 운송이 불가능한 만큼 응모 대상을 해안지역이나 섬 등 임해지역만으로 제한했다. 선정 원칙을 본다면 원전지역의 경우 응모만 하면 처리장 부지로의 선정이 확실한 셈이다.
녹색연합은 산자부 발표 직후 성명서를 통해 “산자부가 핵발전소의 추가 건설 중지 등 핵발전 정책의 포기 없이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 공모에 들어간 것은 심각한 지역 분쟁만 야기할 뿐”이라며 “무책임한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시도는 과거 안면도와 굴업도 사태와 같이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산자부는 이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반응이다. 오히려 지역 주민 내부의 조율을 통해 많은 지자체가 유치 공모에 참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산자부 논리는 이번 유치 신청의 주체가 지자체이고, 지역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주민이 정부에 대해 반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 산자부는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과 관련한 의구심도 지자체의 주민 여론 수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산자부 원자력방사선과 백상호 서기관은 “지난 95년 굴업도 사태 이후 방사선 폐기물(핵폐기물)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주민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한 공개적인 선정 방식을 택했으므로 주민 차원의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결국 주민 총의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를 두고 주민간에 벌써부터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는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과 낙월면의 상황은 앞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 과정이 산자부의 장담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
홍농읍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상인과 농어민 간에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 홍농읍 번영회장 주경석씨는 “2002년 원전 5, 6호기가 완공되면 공사 현장의 인부와 건설업체, 주변 상인들 모두 굶어죽을 판”이라며 “2100억원의 지원금이 투입되면 유동인구와 상주인구의 증가로 침체된 홍농읍의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처리장 유치의 필수성을 강조했다.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에 적극적인 주민들은 원전으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들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지난해 4월 대전 원자력환경기술원을 방문해 핵폐기물 안전 문제에 관한 교육을 받고, 교육팀을 다시 불러 읍 복지회관에서 유치 설명회를 가질 만큼 적극적이다.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와 안마도의 450여명 섬 주민도 홍농읍 상인들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고 있다. 안마도 주민 서용진씨(44·월촌리 이장)는 “섬 주민들의 생계가 워낙 곤란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주민 중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반대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든 처리장을 유치해 투자를 유치하자는 생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원전 온배수(발전소 배출 온수)로 인한 어장 피해를 주장하는 어민들과 농민들은 처리장 유치에 결사 반대다. 홍농읍 주민 하성기씨는 “영광원전 2호기가 최근 잇따라 가동 중단되는 등 원전 안전문제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핵시설과 같은 혐오시설은 있을 수 없으며,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의 추가 시설도 영광군이 봉인한 상황”이라고 주민 반발의 심각성을 전했다. 낙월면의 경우도 섬 주민의 생각과 면소재지가 있는 육지 주민의 생각은 정반대다. “낙월면 면소재지 사람들은 ‘핵’자만 들어도 펄펄 뛰고 있는 상황”(낙월면사무소 하금식씨)이라는 것.
영광핵추방협의회(핵추협) 하선종 사무국장은 “정부가 핵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안 없이 모든 책임을 주민에게만 전가시켜 지역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며 “일부 찬성하는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전이 몇 푼씩 던져주는 지원금의 돈맛을 본 사람들일 뿐”이라고 한전의 ‘금전 유인책’을 비난했다. 핵추협은 오는 9월쯤 일본 노쇼카무라 핵폐기물 처리장 지역 주민들을 영광으로 초청해 주민들에게 처리장 유치의 폐해를 보여줄 예정이다.
영광군청은 이렇게 갈등구조가 첨예화되자 입장이 매우 난감해졌다.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지자체장이 일부러 나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 그러나 영광핵추협 등 환경단체에서 반발하자 김봉렬 영광군수는 최근 군의회에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군은 반대 입장에 있다며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수는 또 지역분열 양상이 계속될 경우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영광과 울진, 고리, 월성 4개 지역의 원전 내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의 저장용량이 2008년부터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이번 공모에 지자체가 계속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응모하지 않을 경우 핵폐기물이 당장 갈 곳이 없다는 것.
“핵폐기물 처리장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이단자 취급을 받았지요. 극렬 반대 쪽에 섰던 사람들도 사태 후에 하나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마주치면 인사도 안해요. 워낙 마을마다 또 개인마다 손익 계산이 틀려서 말입니다….”
지난 94년 5월 핵폐기물 처분장 건립을 둘러싸고 격렬한 주민 대립이 일어났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의 김일용씨(당시 이장)는 도로 점거와 학생들의 등교 저지로 번졌던 당시의 사태를 회상하며, 정부의 이번 공모전이 또 한번의 지역분열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씨는 또 “정부의 공모 발표 이후 장안읍에서도 하금리 등 일부 지역에서 이같은 대립이 벌써 시작됐다”며 “정치생명을 걸고라도 지자체장이 민주적 절차를 거친 여론 수렴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산자부 역시 사정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대체에너지에 대한 대안 없이 핵발전만 포기하란 말입니까.”
결국 주민 동의가 없다면 산자부와 한전은 2008년까지 ‘우주 핵페기물 처리장’ 건설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혁신적 대체에너지가 갑작스레 개발되거나 환경단체와 주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꿈의 부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말이다.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공모 발표 이후 전국 원전지역 마을의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핵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자는 ‘개발론’과 핵쓰레기는 더 이상 안 된다는 ‘환경론’이 팽팽히 맞서 벌써부터 여론이 분열되고 있는 것. 주민이 환경단체와 한목소리로 정부에 맞섰던 90년대 안면도 굴업도 사태 때와는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다. 주민 내부의 대립은 정부와 환경단체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지역사회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27일 산업자원부는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유치 공모를 발표한 직후, 환경단체들로부터 “산자부와 한국전력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돈과 바꾸려 한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산자부 발표의 골자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국 46개 임해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부지 60여만평에 대한 유치 신청을 받은 뒤, 심사를 통해 내년 3월 최종 후보지를 선정한다는 것.
선택된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역 개발과 주민소득 증대 명목으로 2100억원이 지원되며,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에는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분 시설과 사용 후 연료(고준위) 중간 저장 시설이 2008년과 2016년까지 각각 건설될 계획이다. 산자부는 핵폐기물의 성격상 육상 운송이 불가능한 만큼 응모 대상을 해안지역이나 섬 등 임해지역만으로 제한했다. 선정 원칙을 본다면 원전지역의 경우 응모만 하면 처리장 부지로의 선정이 확실한 셈이다.
녹색연합은 산자부 발표 직후 성명서를 통해 “산자부가 핵발전소의 추가 건설 중지 등 핵발전 정책의 포기 없이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 공모에 들어간 것은 심각한 지역 분쟁만 야기할 뿐”이라며 “무책임한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시도는 과거 안면도와 굴업도 사태와 같이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산자부는 이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반응이다. 오히려 지역 주민 내부의 조율을 통해 많은 지자체가 유치 공모에 참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산자부 논리는 이번 유치 신청의 주체가 지자체이고, 지역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주민이 정부에 대해 반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 산자부는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과 관련한 의구심도 지자체의 주민 여론 수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산자부 원자력방사선과 백상호 서기관은 “지난 95년 굴업도 사태 이후 방사선 폐기물(핵폐기물)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주민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한 공개적인 선정 방식을 택했으므로 주민 차원의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결국 주민 총의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를 두고 주민간에 벌써부터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는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과 낙월면의 상황은 앞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 과정이 산자부의 장담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
홍농읍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상인과 농어민 간에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 홍농읍 번영회장 주경석씨는 “2002년 원전 5, 6호기가 완공되면 공사 현장의 인부와 건설업체, 주변 상인들 모두 굶어죽을 판”이라며 “2100억원의 지원금이 투입되면 유동인구와 상주인구의 증가로 침체된 홍농읍의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처리장 유치의 필수성을 강조했다.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에 적극적인 주민들은 원전으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들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지난해 4월 대전 원자력환경기술원을 방문해 핵폐기물 안전 문제에 관한 교육을 받고, 교육팀을 다시 불러 읍 복지회관에서 유치 설명회를 가질 만큼 적극적이다.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와 안마도의 450여명 섬 주민도 홍농읍 상인들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고 있다. 안마도 주민 서용진씨(44·월촌리 이장)는 “섬 주민들의 생계가 워낙 곤란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주민 중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반대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든 처리장을 유치해 투자를 유치하자는 생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원전 온배수(발전소 배출 온수)로 인한 어장 피해를 주장하는 어민들과 농민들은 처리장 유치에 결사 반대다. 홍농읍 주민 하성기씨는 “영광원전 2호기가 최근 잇따라 가동 중단되는 등 원전 안전문제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핵시설과 같은 혐오시설은 있을 수 없으며,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의 추가 시설도 영광군이 봉인한 상황”이라고 주민 반발의 심각성을 전했다. 낙월면의 경우도 섬 주민의 생각과 면소재지가 있는 육지 주민의 생각은 정반대다. “낙월면 면소재지 사람들은 ‘핵’자만 들어도 펄펄 뛰고 있는 상황”(낙월면사무소 하금식씨)이라는 것.
영광핵추방협의회(핵추협) 하선종 사무국장은 “정부가 핵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안 없이 모든 책임을 주민에게만 전가시켜 지역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며 “일부 찬성하는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전이 몇 푼씩 던져주는 지원금의 돈맛을 본 사람들일 뿐”이라고 한전의 ‘금전 유인책’을 비난했다. 핵추협은 오는 9월쯤 일본 노쇼카무라 핵폐기물 처리장 지역 주민들을 영광으로 초청해 주민들에게 처리장 유치의 폐해를 보여줄 예정이다.
영광군청은 이렇게 갈등구조가 첨예화되자 입장이 매우 난감해졌다.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지자체장이 일부러 나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 그러나 영광핵추협 등 환경단체에서 반발하자 김봉렬 영광군수는 최근 군의회에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군은 반대 입장에 있다며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수는 또 지역분열 양상이 계속될 경우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영광과 울진, 고리, 월성 4개 지역의 원전 내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의 저장용량이 2008년부터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이번 공모에 지자체가 계속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응모하지 않을 경우 핵폐기물이 당장 갈 곳이 없다는 것.
“핵폐기물 처리장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이단자 취급을 받았지요. 극렬 반대 쪽에 섰던 사람들도 사태 후에 하나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마주치면 인사도 안해요. 워낙 마을마다 또 개인마다 손익 계산이 틀려서 말입니다….”
지난 94년 5월 핵폐기물 처분장 건립을 둘러싸고 격렬한 주민 대립이 일어났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의 김일용씨(당시 이장)는 도로 점거와 학생들의 등교 저지로 번졌던 당시의 사태를 회상하며, 정부의 이번 공모전이 또 한번의 지역분열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씨는 또 “정부의 공모 발표 이후 장안읍에서도 하금리 등 일부 지역에서 이같은 대립이 벌써 시작됐다”며 “정치생명을 걸고라도 지자체장이 민주적 절차를 거친 여론 수렴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산자부 역시 사정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대체에너지에 대한 대안 없이 핵발전만 포기하란 말입니까.”
결국 주민 동의가 없다면 산자부와 한전은 2008년까지 ‘우주 핵페기물 처리장’ 건설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혁신적 대체에너지가 갑작스레 개발되거나 환경단체와 주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꿈의 부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