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사 복장을 한 호스트가 수수께끼의 웃음을 띠며 망토를 펄럭이면 안개 속에서 네 사람의 ‘철인’이 서서히 등장한다. 이어 어둠을 헤치고 외로이, 그러나 결연한 표정으로 나타나는 도전자. 비장한 음악과 북소리 속에서 주인은 투우사처럼 멋진 포즈로 탁자 위의 베일을 벗긴다. 탁자에는 ‘오늘의 주제’가 한가득 차려져 있다. 이제 한 시간에 걸친 철인과 도전자의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삽시간에 큰칼을 비롯한 각종 금속성 도구들이 번쩍이며 불꽃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위의 광경은 미국의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Iron Chef)를 묘사한 것이다. 미국의 시청자들은 두 명의 전사가 요리를 통해 격돌하는 이 괴상한 요리 프로그램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포켓몬 이래 최대로 히트한 일본 상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젊은 남성층 열광적인 지지
‘아이언 셰프’의 첫인상은 ‘유치찬란함’이다. 우선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다.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카가 타케시는 세계의 진기한 요리를 즐기는 백만장자다(물론 이 설정은 픽션이다). 그는 자신의 성에 ‘키친 스타디움’을 만들고 그 안에 일본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의 철인 네 사람을 모셔다 놓았다. 매 프로그램마다 네 사람의 철인 중 한 사람의 영역에 도전하는 요리사가 등장한다. 철인과 도전자는 한 가지의 주제, 예를 들면 쇠고기 등심이나 살아 있는 장어, 바닷가재, 송이버섯, 개구리 다리 등으로 전채 요리부터 메인 디시와 디저트까지 풀코스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키친 스타디움’에는 두 사람을 도울 갖가지 부재료와 조수, 그리고 요리기구들이 총망라돼 있다.
여러 가지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 만큼 두 명의 요리사에게 한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한 시간이 지나면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요리를 맛보고 점수를 매겨 승자를 가린다. 승자는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데 챔피언 격인 철인 요리사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 만약 동점이 되면 다시 30분간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진행도 구성 못지않게 컬트 그 자체다. 키친 스타디움의 주인 카가 타케시는 시종일관 긴 망토를 펄럭이며 신파조의 목소리로 분위기를 돋운다(타케시의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미국인 성우가 없어서 그의 대사만큼은 영어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처리된다). 여기에 더해 둥둥 울리는 북소리, 어디서 기인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의상들,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뿜으며 등장하는 요리 재료, 번쩍이는 원색 조명과 ‘요리의 신’ 같은 과장된 표현들…. 여러 문화의 스타일이 잡탕밥처럼 섞인 화면은 우위썬(吳宇森)의 홍콩 영화 같기도 하고 ‘스타워즈’나 ‘록키 호러 픽처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이언 셰프’는 일본 후지 TV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음식 전문 케이블 채널인 푸드 네트워크가 이 프로그램의 방영권을 사와 지난해 9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아이언 셰프’의 방송 이후 푸드 네트워크의 시청률은 67% 이상 증가했다. 푸드 네트워크는 올 6월25일에는 ‘아이언 셰프’ 팀을 미국으로 초청해 철인과 미국 요리사가 대결하는 ‘뉴욕 전투’까지 벌였다.
‘아이언 셰프’의 주시청자가 젊은 남성층이라는 사실은 높은 시청률 이상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대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마주친 이 프로그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남성들은 프로레슬링 경기에 열광하듯 ‘아이언 셰프’에 열광한다. 푸드 채널은 예상치 못한 남성 시청자층의 호응에 힘입어 최근 방송 시간을 주 3회로 늘렸다.
남성들은 왜 ‘아이언 셰프’에 사로잡히는가.
방송 비평가들은 그 이유를 이 프로그램에 녹아들어 있는 ‘사무라이의 이미지’에서 찾는다. ‘아이언 셰프’에는 요리 프로그램의 ABC나 다름없는 요리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매주 새로운 요리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캐비어 아이스크림’과 같이 전문 요리사나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따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카메라는 요리보다도 요리중인 철인과 도전자의 매서운 눈매, 신기에 가까운 칼질, 그리고 긴장으로 팽팽한 손끝과 흘러내리는 땀방울 등을 비춘다.
대결방법이 요리일 뿐 ‘아이언 셰프’에서 보여주는 것은 사실상 두 사무라이간의 불꽃 튀는 전투이며 진짜 승부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전투’(Battl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제가 송이버섯이라면 ‘송이버섯 전투’라는 식으로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처럼 국적불명의 팬터지로 화려하고 조잡하게 치장된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일본의 형식주의와 사무라이 정신에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에서 많은 이미지를 차용한 스타워즈 시리즈에 열광했듯이 ‘아이언 셰프’에 열광한다.
‘아이언 셰프’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으로 우열이 가려지면 승자는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 ‘명예’를 얻을 뿐이다. 텔레비전의 퀴즈쇼에서 이겨도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인데 피땀을 흘려가며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낸 승자에게 한 푼의 상금조차 없다니?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시청자들은 ‘돈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은 아무튼 멋지지 않은가!’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아이언 셰프’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을 위장한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사실 요리사들은 출연 전에 프로그램에 등장할 주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타케시가 설명하는 것처럼 한 시간 안에 모든 요리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속임수가 화면 가득 넘치는 긴장감과 신비롭고 낯선 무사정신에 매료된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는 않는 모양이다.
공상과학소설가인 휘커버는 ‘아이언 셰프’에서 도전자인 여성 요리사가 실수로 손을 베어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도전자는 반창고로 대강 손을 감은 뒤 다시 요리에 달려들었습니다. 다친 와중에서도 전투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사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젊은 남성층 열광적인 지지
‘아이언 셰프’의 첫인상은 ‘유치찬란함’이다. 우선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다.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카가 타케시는 세계의 진기한 요리를 즐기는 백만장자다(물론 이 설정은 픽션이다). 그는 자신의 성에 ‘키친 스타디움’을 만들고 그 안에 일본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의 철인 네 사람을 모셔다 놓았다. 매 프로그램마다 네 사람의 철인 중 한 사람의 영역에 도전하는 요리사가 등장한다. 철인과 도전자는 한 가지의 주제, 예를 들면 쇠고기 등심이나 살아 있는 장어, 바닷가재, 송이버섯, 개구리 다리 등으로 전채 요리부터 메인 디시와 디저트까지 풀코스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키친 스타디움’에는 두 사람을 도울 갖가지 부재료와 조수, 그리고 요리기구들이 총망라돼 있다.
여러 가지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 만큼 두 명의 요리사에게 한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한 시간이 지나면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요리를 맛보고 점수를 매겨 승자를 가린다. 승자는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데 챔피언 격인 철인 요리사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 만약 동점이 되면 다시 30분간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진행도 구성 못지않게 컬트 그 자체다. 키친 스타디움의 주인 카가 타케시는 시종일관 긴 망토를 펄럭이며 신파조의 목소리로 분위기를 돋운다(타케시의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미국인 성우가 없어서 그의 대사만큼은 영어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처리된다). 여기에 더해 둥둥 울리는 북소리, 어디서 기인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의상들,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뿜으며 등장하는 요리 재료, 번쩍이는 원색 조명과 ‘요리의 신’ 같은 과장된 표현들…. 여러 문화의 스타일이 잡탕밥처럼 섞인 화면은 우위썬(吳宇森)의 홍콩 영화 같기도 하고 ‘스타워즈’나 ‘록키 호러 픽처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이언 셰프’는 일본 후지 TV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음식 전문 케이블 채널인 푸드 네트워크가 이 프로그램의 방영권을 사와 지난해 9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아이언 셰프’의 방송 이후 푸드 네트워크의 시청률은 67% 이상 증가했다. 푸드 네트워크는 올 6월25일에는 ‘아이언 셰프’ 팀을 미국으로 초청해 철인과 미국 요리사가 대결하는 ‘뉴욕 전투’까지 벌였다.
‘아이언 셰프’의 주시청자가 젊은 남성층이라는 사실은 높은 시청률 이상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대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마주친 이 프로그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남성들은 프로레슬링 경기에 열광하듯 ‘아이언 셰프’에 열광한다. 푸드 채널은 예상치 못한 남성 시청자층의 호응에 힘입어 최근 방송 시간을 주 3회로 늘렸다.
남성들은 왜 ‘아이언 셰프’에 사로잡히는가.
방송 비평가들은 그 이유를 이 프로그램에 녹아들어 있는 ‘사무라이의 이미지’에서 찾는다. ‘아이언 셰프’에는 요리 프로그램의 ABC나 다름없는 요리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매주 새로운 요리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캐비어 아이스크림’과 같이 전문 요리사나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따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카메라는 요리보다도 요리중인 철인과 도전자의 매서운 눈매, 신기에 가까운 칼질, 그리고 긴장으로 팽팽한 손끝과 흘러내리는 땀방울 등을 비춘다.
대결방법이 요리일 뿐 ‘아이언 셰프’에서 보여주는 것은 사실상 두 사무라이간의 불꽃 튀는 전투이며 진짜 승부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전투’(Battl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제가 송이버섯이라면 ‘송이버섯 전투’라는 식으로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처럼 국적불명의 팬터지로 화려하고 조잡하게 치장된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일본의 형식주의와 사무라이 정신에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에서 많은 이미지를 차용한 스타워즈 시리즈에 열광했듯이 ‘아이언 셰프’에 열광한다.
‘아이언 셰프’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으로 우열이 가려지면 승자는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 ‘명예’를 얻을 뿐이다. 텔레비전의 퀴즈쇼에서 이겨도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인데 피땀을 흘려가며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낸 승자에게 한 푼의 상금조차 없다니?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시청자들은 ‘돈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은 아무튼 멋지지 않은가!’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아이언 셰프’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을 위장한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사실 요리사들은 출연 전에 프로그램에 등장할 주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타케시가 설명하는 것처럼 한 시간 안에 모든 요리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속임수가 화면 가득 넘치는 긴장감과 신비롭고 낯선 무사정신에 매료된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는 않는 모양이다.
공상과학소설가인 휘커버는 ‘아이언 셰프’에서 도전자인 여성 요리사가 실수로 손을 베어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도전자는 반창고로 대강 손을 감은 뒤 다시 요리에 달려들었습니다. 다친 와중에서도 전투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사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