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낸 주돈식씨의 ‘문민정부 1200일 기록’을 보면 정부의 문화정책 부재를 신랄하게 지적한 부분이 있다. 그 중 ‘예술의전당이 풀어야 할 과제’에는 예술의전당뿐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이 풀어야 할 과제도 함께 들어 있어 되새겨볼 만하다.
먼저 예술의전당. 주씨는 90년 초 1300억원을 들여 개관한 예술의전당이 건물 규모에 비해 내용이 없는 껍데기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공연센터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속 오페라단이 없고, 공연장 입구에서 250m나 떨어져 있는 지하철역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국립극장은 연 130억원을 쓰면서 수입은 3억원에 불과했다. 장충단공원 한구석에 있는 국립극장이 시민들에게 100억원 이상의 문화혜택을 주고 있는지 반문했다. ‘국립’이 붙은 예술단체는 단원의 충원과 공연행사의 질 등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국립’이 곧 비효율과 무책임을 의미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은, 기획공연보다는 가만히 앉아 장사하는 대관에나 신경을 쓰고, 책임자는 ‘바람 맞은 자리’라고 생각해 부임하는 그날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갈 운동만 한다는 것이다. 단원의 충원부터 책임자 선정까지 공개와 경쟁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인맥을 통해 적당히 메워온 결과다. 그러다보니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의 일시적 취직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놀랍게도 주 전장관이 지적한 문제들은 대부분 이미 해결됐거나 바꾸려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공연계는 혹독한 IMF 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깎는 감량을 하지 않으면 안됐고, 그것을 거듭 태어나는 발판으로 삼았다.
99년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운영되던 세종문화회관이 민영화되면서 재단법인으로 바뀌었고, 국립극장은 올해부터 책임운영제를 시작했으며, 예술의전당이 연내 재단법인에서 특별법인으로 격상되는 등 위상이 변화됨으로써 세 공연장의 변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이되 세 공연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삼색(三色)이다. 먼저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은 한강을 기점으로 문화권을 양분한다. 최근 LG아트센터의 도전을 받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을 잇는 문화벨트의 맹주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질 계획이다. 세종문화회관은 태생적 한계인 정부 행사장의 이미지(대극장은 애초에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열기 위해 4000석 규모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를 벗고 강북의 문화중심지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두 공연장의 중간쯤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국립’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되, 공급자 중심의 공연장에서 고객 중심으로 허리를 구부리겠다고 말한다.
현재는 50년 전통의 국립극장과 22년 전통의 세종문화회관(모태가 된 시민회관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39년)이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예술의전당을 빠르게 추격하는 형세다.
예술의전당은 설립 당시부터 재단법인으로 출발해 꾸준히 재정자립도를 높인 결과 지난해 이미 70%를 넘어섰다. 각각 5.5%와 16%에 불과한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의 재정자립도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장이지만 두 곳의 추격을 팔짱끼고 바라볼 수만도 없다. 세종문화회관이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경험을 쌓은 이종덕총감독 체제를 구축하면서 공공연하게 ‘베껴라, 바꿔라’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술의전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예술의전당에서 성공한 사업은 적극 도입하고, 실패한 일은 철저하게 피해간다는 전략을 펼친다. 그러니 세종문화회관의 변화에 속도감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립극장도 “어차피 국고지원”이라는 안일한 자세를 버렸다. 전단지 수준의 빈약한 공연홍보가 보고서 수준의 완벽한 자료로 바뀜으로써 각 언론사 문화담당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사무국에서 눈에 띄는 변화라면 ‘공연 정보 알림판’이 생긴 것이다. 다른 공연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립극장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알리고 자극을 주려는 시도다.
이처럼 지금 세 마리 공룡들은 서로를 벤치마킹하면서 조용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월11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국립극장 야외놀이마당에서는 어린이 마당극 ‘백두거인’이 공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주룩주룩 적잖은 비가 오자 공연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평소 같으면 “우천 관계로 취소합니다”라는 안내문 한 장 붙이면 그만일 일이었지만, 그날은 재빨리 집에서 쉬고 있는 무대기술자들을 호출해 공연장소를 달오름극장(소극장)으로 옮겼다. 관객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서비스였으나 그동안 국립극장의 관례상 파격적인 일이었다. 낙하산이 아닌 공채 출신 극장장(김명곤)이 부임한 뒤 국립극장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시켜준 예다.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한 지 1년째(오는 7월1일)가 되는 세종문화회관은 올해부터 대극장 로비를 개방했다. 공연이 있는 밤에만 열리고 낮 시간에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이제는 항상 열려 있게 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지나가다가 한번 둘러볼 수도 있고, 아예 로비를 약속장소로 삼을 수도 있다. 세종문화회관 경영기획팀 김승업팀장은 로비개방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시켜 누구나 부담없이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6월 중 로비에 카페테리아를 열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렇게 공연장과 친숙해진 사람이 돈 주고 공연도 보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극장 로비는 개방과 동시에 환해졌다. 작년 7월 이종덕총감독이 부임하면서, 전기료 아낀다고 고객이 머무는 로비를 어둡게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관료적 마인드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관장’에서 ‘총감독’ 체제가 된 것도 관료적 냄새를 확 줄이는 데 기여했다.
예술의전당은 일찍이 매표소마다 일명 ‘개구멍(매표창구)’을 없애 고객에게 눈높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각 공연장 로비에 하우스매니저를 배치하는 등 세 공연장 가운데 고객 서비스에 관한 한 가장 앞서간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의 발빠른 추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남부순환도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매표소나 카페테리아와 같은 로비시설을 대폭 개선하는 등 고객 중심의 공연장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 것도 한국 최고의 공연메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수십년 동안 정부와 시민의 보호 속에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세 공연장이 최근 들어 변신의 몸부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정압박’이다.
국립극장이 입이 열이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연간 130억원을 쓰면서 3억원을 버는’ 말도 안되는 손익계산서. 또 인건비 100억원에 공연제작비는 23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도 바꾸지 않으면 안됐다. 재정자립도가 5.5%(올해 목표 15%)에 머무르는 것도 어차피 국가지원을 받기 때문에 유료표보다 객석 점유율에만 신경을 써온 안일한 전시행정의 결과였다. 책임경영기관이 된 이상 김명곤극장장부터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발로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극장은 돈을 벌기 전에 감량부터 했다. 국립중앙극장 산하 7개 전속단체 중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3개 단체가 2000년 1월 예술의전당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국립극장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가벼운 몸으로 새출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국립교향악단과 창극단, 국립극단을 중심으로 ‘국립’의 이미지를 선명히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예술의전당은 개관 12년만에 공연단체를 상주시키면서 예술단체 없는 극장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한편 예술의전당이 수년 동안 ‘특별법인’이 되기 위해 목을 맨 것도 문화관광부의 직접적인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자산정리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동안 예술의전당 부지는 문예진흥원장 소유고 건물주는 문화부장관으로 되어 있어서 예술의전당은 운영위탁을 하는 용역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특별법인이 되면 정부가 쥐고 있는 재산권을 찾아올 수 있는 데다 예술의전당에 후원금을 낸 기업이나 시민들이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게 돼 예술의전당 재정상태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수장이 누구인지, 그리고 손발이 될 전문가들을 얼마나 거느리고 있는지가 공연장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은 22년 동안 21명의 대표가 거쳐갔고, 국립극장 역시 고인이 된 허규 전극장장(임기 8년) 외에 짧게는 2개월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한 극장장이 수두룩했다. 예술의전당도 3년 임기제가 되기 전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로운 대표가 부임해 개혁을 시도하려 해도 사원들 사이에서는 “몇 달만 참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연장의 수장들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98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기를 마칠 때 전 사원의 기립박수를 받은 이종덕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은 ‘사람관리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사원 각각의 장단점을 직속팀장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예술의전당 시절 관객이 아닌 고객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만큼 세종문화회관의 관 이미지를 벗기고 고객중심의 서비스장으로 전환시키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예술의전당은 박성용이사장이 일을 벌이면 최종률사장이 수습하는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 공연 중 피아니스트가 잘못 연주한 네 군데를 지적할 만큼 예민한 귀를 갖고 있는 박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최고의 예술기관이라는 자존심. 이를 위해 어느 공연장보다 빨리 전산화를 시도했고 국제화(모든 홍보자료의 영문 작성)를 앞당겼다. 앞으로 예술의전당 이사장은 최소한 총리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말할 만큼 예술의전당의 격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국립극장은 배우출신 김명곤극장장을 모신 덕분에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케이스다. 그러나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해 인력을 보강하고 새로 기획팀을 꾸리는 등 조직정비에 나섰다.
세 공연장은 7월초 약속이나 한 듯 중장기 발전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세종문화회관은 소극장과 대극장을 보완해줄 중극장의 필요성을 역설할 계획이고, 예술의전당은 상주단체라는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장은 동대입구역부터 국립극장까지를 예술의 거리로 조성하는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국민의 세금만 삼키던 공룡들이 국민을 향해 허리를 낮추고 다가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먼저 예술의전당. 주씨는 90년 초 1300억원을 들여 개관한 예술의전당이 건물 규모에 비해 내용이 없는 껍데기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공연센터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속 오페라단이 없고, 공연장 입구에서 250m나 떨어져 있는 지하철역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국립극장은 연 130억원을 쓰면서 수입은 3억원에 불과했다. 장충단공원 한구석에 있는 국립극장이 시민들에게 100억원 이상의 문화혜택을 주고 있는지 반문했다. ‘국립’이 붙은 예술단체는 단원의 충원과 공연행사의 질 등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국립’이 곧 비효율과 무책임을 의미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은, 기획공연보다는 가만히 앉아 장사하는 대관에나 신경을 쓰고, 책임자는 ‘바람 맞은 자리’라고 생각해 부임하는 그날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갈 운동만 한다는 것이다. 단원의 충원부터 책임자 선정까지 공개와 경쟁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인맥을 통해 적당히 메워온 결과다. 그러다보니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의 일시적 취직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놀랍게도 주 전장관이 지적한 문제들은 대부분 이미 해결됐거나 바꾸려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공연계는 혹독한 IMF 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깎는 감량을 하지 않으면 안됐고, 그것을 거듭 태어나는 발판으로 삼았다.
99년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운영되던 세종문화회관이 민영화되면서 재단법인으로 바뀌었고, 국립극장은 올해부터 책임운영제를 시작했으며, 예술의전당이 연내 재단법인에서 특별법인으로 격상되는 등 위상이 변화됨으로써 세 공연장의 변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이되 세 공연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삼색(三色)이다. 먼저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은 한강을 기점으로 문화권을 양분한다. 최근 LG아트센터의 도전을 받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을 잇는 문화벨트의 맹주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질 계획이다. 세종문화회관은 태생적 한계인 정부 행사장의 이미지(대극장은 애초에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열기 위해 4000석 규모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를 벗고 강북의 문화중심지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두 공연장의 중간쯤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국립’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되, 공급자 중심의 공연장에서 고객 중심으로 허리를 구부리겠다고 말한다.
현재는 50년 전통의 국립극장과 22년 전통의 세종문화회관(모태가 된 시민회관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39년)이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예술의전당을 빠르게 추격하는 형세다.
예술의전당은 설립 당시부터 재단법인으로 출발해 꾸준히 재정자립도를 높인 결과 지난해 이미 70%를 넘어섰다. 각각 5.5%와 16%에 불과한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의 재정자립도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장이지만 두 곳의 추격을 팔짱끼고 바라볼 수만도 없다. 세종문화회관이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경험을 쌓은 이종덕총감독 체제를 구축하면서 공공연하게 ‘베껴라, 바꿔라’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술의전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예술의전당에서 성공한 사업은 적극 도입하고, 실패한 일은 철저하게 피해간다는 전략을 펼친다. 그러니 세종문화회관의 변화에 속도감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립극장도 “어차피 국고지원”이라는 안일한 자세를 버렸다. 전단지 수준의 빈약한 공연홍보가 보고서 수준의 완벽한 자료로 바뀜으로써 각 언론사 문화담당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사무국에서 눈에 띄는 변화라면 ‘공연 정보 알림판’이 생긴 것이다. 다른 공연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립극장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알리고 자극을 주려는 시도다.
이처럼 지금 세 마리 공룡들은 서로를 벤치마킹하면서 조용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월11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국립극장 야외놀이마당에서는 어린이 마당극 ‘백두거인’이 공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주룩주룩 적잖은 비가 오자 공연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평소 같으면 “우천 관계로 취소합니다”라는 안내문 한 장 붙이면 그만일 일이었지만, 그날은 재빨리 집에서 쉬고 있는 무대기술자들을 호출해 공연장소를 달오름극장(소극장)으로 옮겼다. 관객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서비스였으나 그동안 국립극장의 관례상 파격적인 일이었다. 낙하산이 아닌 공채 출신 극장장(김명곤)이 부임한 뒤 국립극장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시켜준 예다.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한 지 1년째(오는 7월1일)가 되는 세종문화회관은 올해부터 대극장 로비를 개방했다. 공연이 있는 밤에만 열리고 낮 시간에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이제는 항상 열려 있게 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지나가다가 한번 둘러볼 수도 있고, 아예 로비를 약속장소로 삼을 수도 있다. 세종문화회관 경영기획팀 김승업팀장은 로비개방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시켜 누구나 부담없이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6월 중 로비에 카페테리아를 열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렇게 공연장과 친숙해진 사람이 돈 주고 공연도 보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극장 로비는 개방과 동시에 환해졌다. 작년 7월 이종덕총감독이 부임하면서, 전기료 아낀다고 고객이 머무는 로비를 어둡게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관료적 마인드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관장’에서 ‘총감독’ 체제가 된 것도 관료적 냄새를 확 줄이는 데 기여했다.
예술의전당은 일찍이 매표소마다 일명 ‘개구멍(매표창구)’을 없애 고객에게 눈높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각 공연장 로비에 하우스매니저를 배치하는 등 세 공연장 가운데 고객 서비스에 관한 한 가장 앞서간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의 발빠른 추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남부순환도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매표소나 카페테리아와 같은 로비시설을 대폭 개선하는 등 고객 중심의 공연장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 것도 한국 최고의 공연메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수십년 동안 정부와 시민의 보호 속에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세 공연장이 최근 들어 변신의 몸부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정압박’이다.
국립극장이 입이 열이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연간 130억원을 쓰면서 3억원을 버는’ 말도 안되는 손익계산서. 또 인건비 100억원에 공연제작비는 23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도 바꾸지 않으면 안됐다. 재정자립도가 5.5%(올해 목표 15%)에 머무르는 것도 어차피 국가지원을 받기 때문에 유료표보다 객석 점유율에만 신경을 써온 안일한 전시행정의 결과였다. 책임경영기관이 된 이상 김명곤극장장부터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발로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극장은 돈을 벌기 전에 감량부터 했다. 국립중앙극장 산하 7개 전속단체 중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3개 단체가 2000년 1월 예술의전당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국립극장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가벼운 몸으로 새출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국립교향악단과 창극단, 국립극단을 중심으로 ‘국립’의 이미지를 선명히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예술의전당은 개관 12년만에 공연단체를 상주시키면서 예술단체 없는 극장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한편 예술의전당이 수년 동안 ‘특별법인’이 되기 위해 목을 맨 것도 문화관광부의 직접적인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자산정리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동안 예술의전당 부지는 문예진흥원장 소유고 건물주는 문화부장관으로 되어 있어서 예술의전당은 운영위탁을 하는 용역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특별법인이 되면 정부가 쥐고 있는 재산권을 찾아올 수 있는 데다 예술의전당에 후원금을 낸 기업이나 시민들이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게 돼 예술의전당 재정상태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수장이 누구인지, 그리고 손발이 될 전문가들을 얼마나 거느리고 있는지가 공연장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은 22년 동안 21명의 대표가 거쳐갔고, 국립극장 역시 고인이 된 허규 전극장장(임기 8년) 외에 짧게는 2개월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한 극장장이 수두룩했다. 예술의전당도 3년 임기제가 되기 전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로운 대표가 부임해 개혁을 시도하려 해도 사원들 사이에서는 “몇 달만 참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연장의 수장들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98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기를 마칠 때 전 사원의 기립박수를 받은 이종덕 세종문화회관 총감독은 ‘사람관리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사원 각각의 장단점을 직속팀장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예술의전당 시절 관객이 아닌 고객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만큼 세종문화회관의 관 이미지를 벗기고 고객중심의 서비스장으로 전환시키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예술의전당은 박성용이사장이 일을 벌이면 최종률사장이 수습하는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 공연 중 피아니스트가 잘못 연주한 네 군데를 지적할 만큼 예민한 귀를 갖고 있는 박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최고의 예술기관이라는 자존심. 이를 위해 어느 공연장보다 빨리 전산화를 시도했고 국제화(모든 홍보자료의 영문 작성)를 앞당겼다. 앞으로 예술의전당 이사장은 최소한 총리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말할 만큼 예술의전당의 격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국립극장은 배우출신 김명곤극장장을 모신 덕분에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케이스다. 그러나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해 인력을 보강하고 새로 기획팀을 꾸리는 등 조직정비에 나섰다.
세 공연장은 7월초 약속이나 한 듯 중장기 발전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세종문화회관은 소극장과 대극장을 보완해줄 중극장의 필요성을 역설할 계획이고, 예술의전당은 상주단체라는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장은 동대입구역부터 국립극장까지를 예술의 거리로 조성하는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국민의 세금만 삼키던 공룡들이 국민을 향해 허리를 낮추고 다가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