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법정 선거비용을 지킨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 혼자만 지켜서 될 일도 아니다. 나만 해도 실제 들어간 비용을 3분의 1 정도로 줄여야 겨우 한도액의 90% 선에서 맞출 수 있다.”(민주당 경기도 당선자)
“15대 때는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선관위도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아 회계보고서 얘기만 나오면 두통이 생긴다. 선거법이 처음부터 잘못됐는데 그 법에만 맞추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 인력 동원비며 여론조사비 등을 전부 없애고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것도 힘들다.”(한나라당 대구 당선자)
중앙선관위와 16대 총선 출마자들, 특히 당선자들과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 시작됐다. 중앙선관위의 선거비용 실사(實査)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5월13일 출마자들의 회계보고서 접수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실사작업에 들어갔다. 당선의 헹가래와 꽃다발 세례도 잠시, 당선자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직 총선은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후보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지출했다고 신고한 선거비용은 평균 6361만원으로 평균 법정 신고 비용 1억2600만원의 51.0%에 그쳤다. 지역구 당선자는 이보다 많은 8775만원으로 법정비용의 69.7%.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이번 총선 법정비용이 15대 총선(8100만원)보다 무려 55.5%가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법정선거비용 대비 51.0%는 사실상 축소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수치라고 보고 있다. 거의 대부분 후보들이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축소-누락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지적인 것.
중앙선관위는 “수박 겉 핥기 식 실사의 오명을 벗겠다”며 선거 이전부터 실사의 칼날을 벼르고 있는 참이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선관위별로 4, 5명에 불과하던 실사인원을 대폭 보강했다. 16개 시-도 선관위별로는 국세청 직원 5∼10명을 포함한 합동조사반을 편성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지방 경찰청의 인력도 지원받는다. 15대 총선 당시 5일이었던 합동실사 기간도 일주일로 늘리고 ‘혐의’가 짙은 당선자에게는 2차 실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중앙선관위는 또 실사제도가 처음 도입되어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출마자들의 회계보고서에만 의존했던 15대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현장에 대한 철저한 채증작업을 통해 이미 상당량의 자료를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재선거가 불가피한 지역이 최소한 10곳 이상(15대 때는 6곳) 될 것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16대 총선 당선자들 가운데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을 지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얘기해서 검사 몇 명만 작심하고 덤벼들면 16대 당선자 전원이 금배지를 반납해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야를 떠나서 선거법에 관한 한 모두가 범법자요 ‘반칙왕’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구당 사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선 수도권의 경우 민주당이 대략 1억∼2억원, 한나라당이 5000만∼1억원 정도의 ‘실탄’(선거 보조비용)을 내려보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이 돈만 해도 한도액에 다가서는 액수다. 여야 모두 말로는 공정선거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탈법-금권 선거를 부추겨 후보자들을 범법자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총선 출마자들이나 각 정당 선대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수도권은 선거 비용 최소 단위가 10억원 선이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자들은 거의 이 정도의 지출은 있었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무소속 후보와 현역 의원간의 ‘사투’가 벌어진 전남의 모 지역, 민주당과 한나라당 재력가들끼리 맞대결이 벌어진 경기도 모 지역은 최소 50억원 이상의 선거 비용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먼저 거론된 지역의 경우 유권자수도 얼마 되지 않아 유권자 1인당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돈 폭격’을 받은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386세대’나 ‘재야 운동 출신 후보자’들이라고 해서 선거 한도비용 초과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주당 소속의 경기도 한 재야 출신 당선자는 공식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이미 4억원 가량의 돈이 들어갔다고 측근에게 털어놓았고,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에서 출마한 한 386세대 당선자 역시 10억원 가량의 선거비용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충청권 당선자 역시 3억원 정도를 썼는데 그 정도 쓰고 당선됐다고 해서 지역에서는 ‘선거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충분한 실탄을 쌓아 놓고서도 나중에 선관위 실사가 두려워 오히려 선거비를 쓰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민주당의 서울 지역 한 중진의원은 후원금 계좌로 성금이 답지, 선거비용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후원금 계좌에서 돈을 꺼내 쓸 경우 곧바로 선관위 실사에 포착되기 때문에 오히려 ‘남의 떡’처럼 구경만 하면서 돈을 끌어오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경기지역 한 초선당선자도 중앙당에서 내려보낸 지원비 등으로 선거비용은 모자라지 않았지만 지구당의 한 지역 관리장이 한나라당으로 ‘투항’하는 바람에 말썽이 생길 것을 염려, 돈주머니를 꽉 틀어막았기 때문에 돈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돈이 남은 출마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후보자들은 거의 모두 법정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물론 현역 의원들이나 지구당을 오래 꾸려왔던 경우는 법정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선거비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항목을 통상적 정당활동비(지구당 관리비)로 잡으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향응이나 단체 관광 등의 사실상 선거운동은 법정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당원 교육’ 혹은 ‘확대 당직자 회의’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예로 서울 민주당의 모 중진의원의 경우 지구당 당직자만 300여 명이 돼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너무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많은 출마자들이 선거운동 기간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구멍’이 있어서다. 따라서 많은 현역 의원들은 법정 선거운동 기간 16일 이전에도 다과를 곁들인 사랑방 좌담회나 의정 보고회를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거의 마쳐놓는다. 물론 이들에게도 투표일 하루나 이틀 전의 ‘돈 살포’는 빼놓을 수 없는 절차.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든 출마자들은 당선과 낙선 여부를 떠나 법정 한도비용 안에서 회계 보고서를 짜맞추는 일이 골칫거리다. 대부분 적게는 3억원 정도에서 많게는 20억원까지 들어가는 인력동원비를 아예 없는 것으로 기재한다. 자원봉사자도 말로만 자원봉사이지 실제는 ‘선거 아르바이트’인데도 회계보고에서는 아예 일당을 주지 않은 것으로 기재한다. 이들에게 들어간 숙식비도 마찬가지다. 서울 민주당 A후보 선거운동원들에게 밥을 대주었던 한 식당 주인은 “밥값만 해도 1000만원인데 누가 영수증을 남기겠느냐”며 “지구당 사무국장과 매일 밥값을 맞춰보고 중간중간 현찰로 거래한다”고 말한다. “낙선하면 돈 받기가 힘들어 외상 거래는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주인의 설명.
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 들어가는 여론조사비도 삭제 대상 1순위. 여론조사를 담당한 선거 기획사에 가짜 영수증 처리를 일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선거에서 10여명 후보의 여론조사를 맡았던 한 선거 기획사 관계자는 “처음 계약을 맺는 시점부터 이면계약을 하는 것이 이 업계의 불문율”이라면서 “그렇다 보니 당선자든 낙선자든 돈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차량 및 선거장비 임대료도 절반 정도는 깎은 ‘가짜 영수증’이 횡행한다. 그러나 멀티비전 등 첨단 장비 임대료는 2000만∼3000만원의 공식 비용이 너무 뻔해 회계 장부를 맞추는 데 커다란 부담이 된다.
이렇게 회계장부 맞추는 것이 금배지 사수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 되자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아예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회계장부를 맞추는 교육까지 시켰다. 그럼에도 숙달된 현역 의원과 달리 새내기 당선자들은 아직 요령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계보고에서도 현역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중앙선관위 이용훈위원장은 그동안 줄곧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뿌리뽑겠다”며 “법정선거비용을 0.5% 이상 초과한 후보는 예외 없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엄단 의지를 밝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얼마나 철저한 실사가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고, 출마자들마다 초과 비용에 대해서는 선관위에 신고한 은행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나 현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선관위 역량만으로는 역부족인 부분이 많기 때문. 막상 실사 기간이 되면 선거 기획사나 선거 용역업체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보고액과 실제액을 대조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일선 선관위에서는 대부분 조사를 서면조사로 대체하는 ‘요식 행위’로 마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거비 실사는 그 명분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거법에 기초한 잘못된 제도로서, 획기적인 개선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국력을 낭비하는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와 그 이후의 여러 조처들이 이처럼 ‘부(富)의 재분배가 유일한 미덕’으로 남는 후진성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유권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15대 때는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선관위도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아 회계보고서 얘기만 나오면 두통이 생긴다. 선거법이 처음부터 잘못됐는데 그 법에만 맞추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 인력 동원비며 여론조사비 등을 전부 없애고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것도 힘들다.”(한나라당 대구 당선자)
중앙선관위와 16대 총선 출마자들, 특히 당선자들과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 시작됐다. 중앙선관위의 선거비용 실사(實査)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5월13일 출마자들의 회계보고서 접수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실사작업에 들어갔다. 당선의 헹가래와 꽃다발 세례도 잠시, 당선자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직 총선은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후보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지출했다고 신고한 선거비용은 평균 6361만원으로 평균 법정 신고 비용 1억2600만원의 51.0%에 그쳤다. 지역구 당선자는 이보다 많은 8775만원으로 법정비용의 69.7%.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이번 총선 법정비용이 15대 총선(8100만원)보다 무려 55.5%가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법정선거비용 대비 51.0%는 사실상 축소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수치라고 보고 있다. 거의 대부분 후보들이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축소-누락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지적인 것.
중앙선관위는 “수박 겉 핥기 식 실사의 오명을 벗겠다”며 선거 이전부터 실사의 칼날을 벼르고 있는 참이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선관위별로 4, 5명에 불과하던 실사인원을 대폭 보강했다. 16개 시-도 선관위별로는 국세청 직원 5∼10명을 포함한 합동조사반을 편성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지방 경찰청의 인력도 지원받는다. 15대 총선 당시 5일이었던 합동실사 기간도 일주일로 늘리고 ‘혐의’가 짙은 당선자에게는 2차 실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중앙선관위는 또 실사제도가 처음 도입되어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출마자들의 회계보고서에만 의존했던 15대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현장에 대한 철저한 채증작업을 통해 이미 상당량의 자료를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재선거가 불가피한 지역이 최소한 10곳 이상(15대 때는 6곳) 될 것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16대 총선 당선자들 가운데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을 지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얘기해서 검사 몇 명만 작심하고 덤벼들면 16대 당선자 전원이 금배지를 반납해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야를 떠나서 선거법에 관한 한 모두가 범법자요 ‘반칙왕’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구당 사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선 수도권의 경우 민주당이 대략 1억∼2억원, 한나라당이 5000만∼1억원 정도의 ‘실탄’(선거 보조비용)을 내려보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이 돈만 해도 한도액에 다가서는 액수다. 여야 모두 말로는 공정선거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탈법-금권 선거를 부추겨 후보자들을 범법자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총선 출마자들이나 각 정당 선대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수도권은 선거 비용 최소 단위가 10억원 선이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자들은 거의 이 정도의 지출은 있었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무소속 후보와 현역 의원간의 ‘사투’가 벌어진 전남의 모 지역, 민주당과 한나라당 재력가들끼리 맞대결이 벌어진 경기도 모 지역은 최소 50억원 이상의 선거 비용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먼저 거론된 지역의 경우 유권자수도 얼마 되지 않아 유권자 1인당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돈 폭격’을 받은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386세대’나 ‘재야 운동 출신 후보자’들이라고 해서 선거 한도비용 초과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주당 소속의 경기도 한 재야 출신 당선자는 공식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이미 4억원 가량의 돈이 들어갔다고 측근에게 털어놓았고,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에서 출마한 한 386세대 당선자 역시 10억원 가량의 선거비용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충청권 당선자 역시 3억원 정도를 썼는데 그 정도 쓰고 당선됐다고 해서 지역에서는 ‘선거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충분한 실탄을 쌓아 놓고서도 나중에 선관위 실사가 두려워 오히려 선거비를 쓰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민주당의 서울 지역 한 중진의원은 후원금 계좌로 성금이 답지, 선거비용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후원금 계좌에서 돈을 꺼내 쓸 경우 곧바로 선관위 실사에 포착되기 때문에 오히려 ‘남의 떡’처럼 구경만 하면서 돈을 끌어오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경기지역 한 초선당선자도 중앙당에서 내려보낸 지원비 등으로 선거비용은 모자라지 않았지만 지구당의 한 지역 관리장이 한나라당으로 ‘투항’하는 바람에 말썽이 생길 것을 염려, 돈주머니를 꽉 틀어막았기 때문에 돈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돈이 남은 출마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후보자들은 거의 모두 법정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물론 현역 의원들이나 지구당을 오래 꾸려왔던 경우는 법정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선거비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항목을 통상적 정당활동비(지구당 관리비)로 잡으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향응이나 단체 관광 등의 사실상 선거운동은 법정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당원 교육’ 혹은 ‘확대 당직자 회의’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예로 서울 민주당의 모 중진의원의 경우 지구당 당직자만 300여 명이 돼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너무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많은 출마자들이 선거운동 기간 “한도액을 넘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구멍’이 있어서다. 따라서 많은 현역 의원들은 법정 선거운동 기간 16일 이전에도 다과를 곁들인 사랑방 좌담회나 의정 보고회를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거의 마쳐놓는다. 물론 이들에게도 투표일 하루나 이틀 전의 ‘돈 살포’는 빼놓을 수 없는 절차.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든 출마자들은 당선과 낙선 여부를 떠나 법정 한도비용 안에서 회계 보고서를 짜맞추는 일이 골칫거리다. 대부분 적게는 3억원 정도에서 많게는 20억원까지 들어가는 인력동원비를 아예 없는 것으로 기재한다. 자원봉사자도 말로만 자원봉사이지 실제는 ‘선거 아르바이트’인데도 회계보고에서는 아예 일당을 주지 않은 것으로 기재한다. 이들에게 들어간 숙식비도 마찬가지다. 서울 민주당 A후보 선거운동원들에게 밥을 대주었던 한 식당 주인은 “밥값만 해도 1000만원인데 누가 영수증을 남기겠느냐”며 “지구당 사무국장과 매일 밥값을 맞춰보고 중간중간 현찰로 거래한다”고 말한다. “낙선하면 돈 받기가 힘들어 외상 거래는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주인의 설명.
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 들어가는 여론조사비도 삭제 대상 1순위. 여론조사를 담당한 선거 기획사에 가짜 영수증 처리를 일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선거에서 10여명 후보의 여론조사를 맡았던 한 선거 기획사 관계자는 “처음 계약을 맺는 시점부터 이면계약을 하는 것이 이 업계의 불문율”이라면서 “그렇다 보니 당선자든 낙선자든 돈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차량 및 선거장비 임대료도 절반 정도는 깎은 ‘가짜 영수증’이 횡행한다. 그러나 멀티비전 등 첨단 장비 임대료는 2000만∼3000만원의 공식 비용이 너무 뻔해 회계 장부를 맞추는 데 커다란 부담이 된다.
이렇게 회계장부 맞추는 것이 금배지 사수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 되자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아예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회계장부를 맞추는 교육까지 시켰다. 그럼에도 숙달된 현역 의원과 달리 새내기 당선자들은 아직 요령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계보고에서도 현역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중앙선관위 이용훈위원장은 그동안 줄곧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뿌리뽑겠다”며 “법정선거비용을 0.5% 이상 초과한 후보는 예외 없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엄단 의지를 밝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얼마나 철저한 실사가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고, 출마자들마다 초과 비용에 대해서는 선관위에 신고한 은행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나 현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선관위 역량만으로는 역부족인 부분이 많기 때문. 막상 실사 기간이 되면 선거 기획사나 선거 용역업체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보고액과 실제액을 대조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일선 선관위에서는 대부분 조사를 서면조사로 대체하는 ‘요식 행위’로 마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거비 실사는 그 명분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거법에 기초한 잘못된 제도로서, 획기적인 개선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국력을 낭비하는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와 그 이후의 여러 조처들이 이처럼 ‘부(富)의 재분배가 유일한 미덕’으로 남는 후진성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유권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