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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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지금 ‘요지경 세상’

로비 섹스 검은돈 등 은밀한 거래…상류층 결혼식·예술공간으로도 활용

  • 입력2005-11-29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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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은 지금 ‘요지경 세상’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린다김 사건의 중심에는 고급호텔의 객실이 있다. 이양호 전국방부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A호텔 R호텔에서 린다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 물론 린다김은 이를 부인했지만….

    이중 A호텔은 린다김이 로비장소로 자주 이용한 곳으로 자신의 집과 가까운 강남구 논현동에 있다. 그녀가 주로 묵었던 객실은 1118호실로 하룻밤 숙박료가 84만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호텔은 어떤 이들에겐 쉬는 곳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일’을 하는 곳이다. 그 ‘일’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그 안에서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아서도 안되고, 알 필요도 없는 게 호텔업계의 생리”라는 한 호텔관계자의 말처럼 호텔에서는 인간사의 천태만상이 ‘은밀하게’ 펼쳐진다.

    서울 호텔신라 647호와 649호. 안에 따로 출입문이 있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연결된 ‘커넥팅 룸’인 이곳은 지난 93년부터 한보사태 전까지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안가(安家·안전가옥)처럼 사용하던 곳이다. 김씨는 특급호텔 객실을 주연(酒宴)과 정치를 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이 외에도 김씨가 자주 이용했던 곳은 롯데호텔과 하얏트호텔 워커힐호텔 뒤편의 빌라 등. 그가 사용했던 롯데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C타입룸인 3264호실은 하루 객실료가 110여 만원에 이르고 워커힐 사파이어 빌라는 60만원.

    워커힐호텔 뒤편 빌라는 정치인과 관계 인사, 재계 인사들이 가장 애용하는 곳 중 하나다. 울창한 숲에 가려 있고 경비 초소에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등 보안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예약장부에도 영문 이니셜로만 기록돼 있어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실명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



    작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합당 문제를 논의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10여 년 전에도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인 YS와 신민주공화당 총재인 JP(김종필)가 이곳에서 오찬을 하며 정치 얘기를 주고받았다. 당시 3당 합당과 내각제 개헌문제가 깊숙이 논의되었고 다음해인 90년 1월에 3당 합당이 이루어졌다.

    김대중대통령도 청와대가 아닌 밖에서 묵을 때 이따금씩 이곳을 이용한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바로 앞에 강이 있고 뒤로는 산이 있어 김대통령이 좋아하는 휴식장소가 되었다.

    97년 신한국당 경선 직후에는 신한국당 서청원 의원이 여의도 맨해튼호텔 객실에 1000만원의 수표가 든 돈 봉투를 두고 나와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다. 이 돈은 이수성고문의 경선을 도우면서 사용한 돈으로 알려졌는데, 이렇듯 고급 호텔의 객실이 뒷돈 거래의 현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정치인들 외에 검찰이나 국정원 사람들도 자주 특급호텔의 객실을 이용한다. 검찰의 경우,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고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 호텔에서 이를 진행하며 바깥 동정을 살핀다.

    국정원의 경우는 아예 서울 시내 주요 특급호텔에 고급객실을 잡아놓고 ‘안가’로 이용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특급호텔 직원은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호텔마다 ‘안기부방’이 있었다. 그 방은 평소에도 외부손님을 일절 받지 않는다. 주로 사람들을 불러 만나는 용도로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장기계약을 해놓고 객실료도 다 지불해가면서 썼다”고 말한다. 당장 구속할 수는 없지만, 은밀히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청사가 아닌 호텔 객실로 불러 조사하고 진술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내곡동 국정원 청사와 가까운 R호텔의 객실에 불려가 조사받은 경험이 있는 모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객실은 2개가 안에서 통하게 돼있는 커넥팅룸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밖에서 들릴 수 있으니까 층의 가장 구석에 위치한 방을 쓰고 있었다. 조사를 하는 사람은 중간중간 옆방으로 가서 보고도 하고 상의도 하는 듯했다. 국정원 원장이 개인사무실로 이용하는 방도 있다고 들었다.”

    호텔은 그러나 이처럼 은밀한 거래만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다.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고 상류층의 결혼식도 치러진다. 최근 들어선 대규모 연회뿐 아니라 가족모임 등 개인행사가 많아지고, 보통사람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별(Star)로 호텔의 등급을 표시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로 표시한다. 관광사업법에 의거해 특1급, 특2급(무궁화 5개), 1급(무궁화 4개), 2급(무궁화 3개), 3급(무궁화 2개) 등으로 나누고 문화관광부 장관이 이를 결정한다. 전국의 관광호텔수는 7만여 개에 이르며, 이중 특1급 호텔은 서울에만 13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0개 정도.

    린다김이 투숙했던 A호텔의 경우, 그전까지 특2급 호텔이었다가 작년에 특1급으로 승격했다. 호텔협회는 1년에 한번씩 각 호텔로 등급심사위원을 파견해 평가기준에 따라 호텔의 등급을 조정한다. 평가기준은 현관-로비-복도부문, 객실부문, 식당 및 주방부문, 부대시설, 국제회의시설, 주차시설부문 등 여러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데 심사위원의 평가 결과에 따라 기존의 호텔등급이 바뀌기도 한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 호텔신라나 롯데호텔의 경우 투숙객의 80~90%가 외국인이다. 미국 유럽 등지의 관광객들이 인터컨티넨탈 힐튼 하얏트 같은 국제적인 체인 호텔을 선호하는 반면, 일본인 관광객들은 롯데 신라 워커힐 등의 토종호텔을 많이 이용하는 편. 5월초 일본의 황금연휴 기간에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서울 시내 호텔에 투숙했는데, 호텔의 주차관리요원과 렌터카 직원이 합세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매춘을 알선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특급호텔들이 매춘관광에 일조한다는 비난여론이 일었고, 호텔측은 문제가 된 용역회사 직원을 해고하고 호텔 주변에 기생하는 일명 ‘팸프’(pimp·포주)들을 단속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지방 관광호텔들의 경우, 호텔에 딸려 있는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 수입이 호텔 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

    VIP들과 유명연예인들이 드나드는 특급호텔의 경우는 종업원 교육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흔히 호텔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접촉하는 사람이 벨보이나 청소아주머니들인데, 호텔측은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매뉴얼을 만들고 트레이닝 매니저를 두어 호텔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신경쓴다. 룸 열쇠는 반드시 본인임을 확인하고 내줄 것, 외부에서 누군가를 찾는 전화가 오더라도 방번호는 절대 알려주지 말 것 등등이 그것이다.

    이제 호텔은 단순히 ‘잠만 자는 장소’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행지의 최종안식처’라는 종래의 호텔 개념이 ‘예술품의 소장장소’ 혹은 버젓한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 자체를 예술공간으로 꾸미는 데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호텔 벽마다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걸리고 VIP룸은 진귀한 미술품이나 조각품으로 가득 채워진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메리어트호텔 등 최근 강남 지역에 문을 연 호텔들은 출장온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최첨단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 기존의 강북지역 호텔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34층 건물에 497개 객실의 ‘메리어트호텔’은 영상회의가 가능한 첨단시설을 갖췄다. 피트니스클럽이 4200평으로 인공암벽까지 설치한 국내 최대 규모.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도 각 객실에 인터넷 등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편리한 서비스를 자랑한다.

    호텔의 첨단 서비스들이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아 가면서, 호텔은 이제 현대판 ‘마법의 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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