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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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김 스캔들’ 이것이 전모다

린다 국방연구원 회의 참석설, 북한인과 접촉 백두기밀 유출 가능성도

  • 입력2005-11-07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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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다김 스캔들’ 이것이 전모다
    요즘 ‘린다-양호 스캔들’이 화제다. ‘사랑하는 린에게’란 제목으로 이양호 전국방장관이 린다김(한국명 김귀옥)에게 보낸 편지는 ‘연서’(戀書)로 해석되고 있다. 이양호씨 외에도 전직 고위인사 H, K, C씨 등이 린다김과 야릇한 편지를 주고받거나 만남을 가졌다. 때문에 언론은 ‘린다김이 군-정 고위 인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으므로 로비 부분에 대해 수사하라. 검찰은 백두사업 관련한 비리를 전면 재수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백두사업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것일까.

    백두사업은 신호정보를 감청하는 정찰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사업과 세트로 묶인 것이 금강사업인데, 금강사업은 영상정보를 촬영하는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감청은 영상촬영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백두사업은 정찰기로 (대략 백두산까지의) 북한 전역의 신호정보를 잡아내는 것이 목표라 백두사업이라 불린다. 금강사업은 (대략 금강산까지의) 휴전선 부근을 촬영한다는 것이 목표이므로 금강사업이라는 암호를 얻게 되었다.

    96년 6월 3개 사가 경쟁한 백두사업 응찰에서 국방부는 정찰기로는 미국 레이시온사의 호커 800XP를, 감청장비로는 같은 레이시온그룹사인 E시스템스의 ‘원격조종 감시체계’(RCSS)를 선정하였다. 계약금액은 금강사업을 포함해 총 3600억원이었다. 이때 레이시온그룹의 에이전트로 활약한 이가 린다김이었다. 그후 국방부는 이 정찰기를 운영할 부대로 한미연합군이 공동 운영하는 특수 비밀부대(여기서는 쭛부대로 표기한다)를 선정했다. 일반적으로 무기 도입은, 먼저 그 무기를 운용할 부대에서 요구가 있은 뒤 국방부에서 기종을 선택하는데, 백두사업은 거꾸로 추진되었다.

    뒤늦게 운영부대가 된 쭛부대는 관계자를 미국에 보내 제작중인 백두 정찰기를 점검케 했는데,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정찰기와 감청장비 도입만 생각했지 감청장비에 운용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거의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서 국방부는 컴퓨터(감청장비)와 컴퓨터를 올려놓을 책상(항공기)을 고르는 데만 신경썼지, 이 컴퓨터가 어떤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을 운용할 수 있고 이 컴퓨터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깔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청장비에 탑재할 소프트웨어는 한국적인 상황에 맞아야 한다. 따라서 범용 소프트웨어는 곤란하고, 한국적 특성에 맞춰 새로 개발해야 한다. 우리 능력으로 개발할 수 없다면 미국 회사와 공동으로라도 개발했어야 한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감청장비 공급사가 주는 소프트웨어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감청장비와 소프트웨어는 함께 가야 한다. 따라서 추후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이 감청장비와 잘 맞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의 한계점 등을 발견할 때면 보증기간도 끝나, 우리가 다시 돈을 싸들고 찾아가야 미국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줄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권이 미국에 있는 한 한국의 ‘전략 정보 자주화’는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두번째 문제점은 백두정찰기가 생각보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곳을 비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곳을 비행한다는 것은 유사시 이 정찰기가 북한의 대공(對空) 포화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쭛부대측은 “우리 직(職)을 걸고 이 사업을 무산시키자”고까지 결의했다고 한다.

    문제가 커지자 국방부는 제3자들로 평가팀을 만들어 조사시켰는데, 쭛부대측 주장과 유사한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백두정찰기 제작을 중단시키고 보완점을 수정하려고 했으나 새로운 장애가 발견되었다. 백두사업 계약 조건에는 우리측의 요구로 설계 변경을 위해 사업을 중지시키면, 한국은 1일당 7만5000여 달러(약 8000만원)를 연체료로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체료가 이렇게 비싸다 보니 그 누구도 선뜻 이 사업을 중지시키고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장애는 백두사업을, 최선이나 차선을 선택하는 행복한 게임에서 하루아침에 최악을 피해야 하는 게임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했다. 백두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방부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정찰기를 도입하는 것인 만큼 수업료조로 약간의 시행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착오가 무서워 이 사업을 중지시키면 ‘뿔을 바로잡아 주려다 소까지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한다”며 백두사업 진행론을 유포시켰다. 국방부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실보다는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현실론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안기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이 사업을 비판했다. 감청장비를 탑재한 호커 800XP는 공간이 너무 좁고 이륙중량이 무거워 쭛부대 요원만 탑승하고 안기부 요원은 탑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안기부측은 “유사시에는 안기부도 이 비행기를 타고 감청업무를 벌여야 하는데 우리가 못 탄다면 말이 안된다”는 요지로 백두사업에 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올렸다. 이러한 비판론은 97∼98년의 정권 교체기 때 더욱 무성해졌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떠들면 백두사업은 ‘제2의 고속철도사업’이 될 것이다”는 우려를 내놓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린다김과 국방부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뽑아들었다. 먼저 린다김이 좋은 보고서가 올라가도록 백두사업 관련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린다김은 미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백두사업 주미연락단장인 이모 공군 대령을 “애국자”라고까지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이대령은 백두사업을 좋지 않게 평가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국방부가 뽑아든 ‘보도’(寶刀)는 기무사로 하여금 군사기밀 유출 부문을 내사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백두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일을 하다 보면 관련 업체와 군사기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이를 이용한 것이다. 기무사는 어렵지 않게 이대령과 쭛부대의 1급 군무원인 권모씨(예비역 육군 준장) 등 6명이 팩스로 군사기밀을 린다김의 회사로 보낸 사실을 포착하고 이들을 구속했다(98년 10월). 예상대로 쭛부대측은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기무사의 수사는 린다김까지도 겁먹게 해 린다김은 이후 일절 한국을 찾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기소된 권씨와 이대령 등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으로 풀려나왔다. 백두사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들이 백두사업의 기밀을 백두사업의 에이전트인 린다김측에 누설했다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었던 만큼, 이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국방부 역시 쭛부대의 입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만큼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가 처지가 전혀 다른 린다김의 주목을 받았다.

    린다김은 ‘죽으나 사나’ 한국을 주사업처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군사기밀 획득 혐의 때문에 한국에 가지 못하니 속이 탔다. 한 소식통은 “이런 차에 권씨 등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린다김은 ‘그렇다면 차제에 나도 솜방망이를 맞자.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으니 한 번만 맞으면 같은 죄목의 과거 일들은 전부 묻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솜방망이를 맞아주려고 지난 3월 자진해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8년 권씨 등은 구속 기소됐지만, 자진해서 한국에 온 린다김은 서울지검 공안2부로부터 ‘불구속 기소’되었다.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던 린다김의 솜방망이는, 돌연 중앙일보가 린다김이 이양호씨 등 군-정 실력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도깨비 방망이’가 돼버렸다. 도깨비방망이가 린다김과 백두사업을 내리치는 ‘철퇴’가 될지, 아니면 휘휘 사방을 위협하다 사라지는 ‘물방망이’가 될지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가 없다. 아무튼 중앙일보의 편지 공개로 꺼져가던 백두사업 불씨는 되살아났다.

    이런 가운데 이양호 전국방장관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린다김과 두 차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음을 시인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끼얹게’ 했다. 린다김으로서는 ‘순경을 피하려다 파출소도 아니고 경찰서를 만난’ 꼴이 된 셈이다. 하지만 린다김은 이미 권씨 등에게 적용된 법률 잣대가 있는지라,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재판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백두사업을 둘러싼 문제점의 본줄기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은 본줄기가 아니라 곁가지다.

    대표적인 곁가지가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과 린다김과의 관계.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것이 백두사업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과연 이를 처벌할 수 있는지가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검찰과 법원은 금품을 주고받았을 때만 뇌물죄로 처벌하고, 부적절한 관계 등 기타 문제에 대해서는 처벌한 경우가 거의 없다. 검찰이 재수사를 망설이는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검찰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두번째 곁가지는 린다김의 광범위한 로비망이다. 린다김을 이양호 전장관에게 소개해준 황명수 당시 국방위원장은 린다김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원금은 물론 적법한 정치자금이다. 그런데 이 자금이 매개가 돼 정치인이 후원자를 사업상 관계가 있는 실력자에게 소개했다면, 후원금을 뇌물로 봐야 할지 정치자금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세번째는 린다김과 북한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의 문제다. 과거 모 정보기관은 한 북한인이 린다김이 운영하는 업체를 방문한 사실이 있다며, 그때 우리 측 군사기밀이 북한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만의 하나 백두사업 관련 정보가 북한으로 유출됐다면 이 사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네번째는 린다김이 국방연구원의 평가회의에 참석했는지 여부다. 오랫동안 백두사업을 추적해온 관계자는 “린다김은 비밀 취급 자격이 없는 외부인은 참석하기 어려운 국방연구원 회의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린다김이 국방연구원 회의에 참석한 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이를 허용했는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현재 언론은 백두사업의 본줄기보다 린다김과 당시 이양호국방부장관간의 부적절한 관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백두사업의 본줄기는, 연체료 지불을 최소화하면서 성능을 개량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국방부는 어떤 묘책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국방부와 검찰이 국민여론을 달래며 국익면에서 가장 손해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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