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은 5월9일 청와대에서 김영삼전대통령(YS)과 회동했다. 2년여만의 일이다. 자신을 독재자라 칭하며 지금 대통령직을 덤으로 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은 YS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의 첫걸음이었다. 이날 YS와의 회동은 김대통령이 5월5일 어린이날 행사 직후 청남대로 떠나 7일까지 머무르며 가다듬은 향후 정국 구상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물론 김대통령의 ‘청남대 구상’은 남북정상회담이 첫번째 테마였다. 김대통령으로서는 ‘민족사적 대사건’에 임해 한반도 거주 당사자들인 국민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커다란 밑그림을 준비해야만 한다. 김대통령이 이번 청남대행에 북한 전문가인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쓴 ‘현대 북한의 지도자’등 3권의 북한 관련 책을 지참한 것도 이 때문이다.
3일간 ‘청남대 구상’ 정국 밑그림
그러나 김대통령의 숙고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6대 국회 원구성 문제도 김대통령을 심란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국회의장을 한나라당이 가져갈 경우 임기 후반의 국회와 원내 대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9월 전당대회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두통거리다. 이밖에도 수없이 산적한 현안들이 김대통령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네 가지 사안을 중심으로 김대통령의 후반기 통치술을 들여다보자.
현 정권의 정책 브레인 중 한 사람인 동국대 황태연교수(정치학)는 6월 이후 김대통령의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국회의장 자리가 야당으로 넘어가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민주당 내에서 너무 빨리 차기 대통령후보 문제가 부상하는 경우. 황교수는 “지금 한나라당은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으나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시비를 확대할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을 여당에서 차지하지 못하면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고 정국 파행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교동계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은 황교수의 전망과 전혀 달랐다. “무리수를 써가면서 국회의장을 반드시 여당에서 가져가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국민의 정치 의식이 과거와 다르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야당 편을 들거나 편파적인 진행을 하면 그 즉시로 광범위한 비판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날치기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장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김대통령 생각은? 일단은 가져오면 좋지만 ‘무슨 수를 쓰든지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역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의 총재회담 이후 모처럼 조성된 여야간 대화 협력 정국을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다시 파행으로 이끌고 싶지 않다는 뜻이 강한 듯하다. 민주당 박상천총무가 5월6일 “국회의장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집권 여당에서 맡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한나라당이 경선을 고집할 경우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국회의장 경선 카드의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러한 기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회의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한 표 대결까지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민주당에서 ‘자민련 의장 추대론’이 급부상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민주당 인사들은 김종필명예총재(JP)와의 ‘재결합’ 추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소장파 의원일수록 그렇다. 한 386세대 당선자는 “JP 문제는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이라며 “자민련 17석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JP가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대통령 생각은 전혀 다른 듯하다. 한 소장파 의원은 “유감스럽게도 김대통령이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주장을 들어주려 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자민련은 6일에도 성명을 통해 “외국의 경우 영국 미국 호주 등 24개국은 교섭단체 조건이 없고, 조건을 둔 대부분의 나라도 15인 이하”라며 “특히 의원 정수가 16대 국회에서 26명이 준 것도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의 주요 사유”라고 거듭 주장했다. 자민련 주장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17석의 도움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한나라당도 ‘결사 반대’를 고집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진입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가 된 다음에도 DJP 재공조를 유지하려 할 것이냐는 사실. 이는 역시 DJP 회동에서 결말이 날 문제다.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자민련 이한동총재는 “조만간 두 분이 만날 것”이라고 DJP회동의 성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권 내부 기류로 볼 때 김대통령이 DJP 재공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대통령이 JP와의 의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민주당 관계자들 얘기다.
5월4일 자민련 이한동총재는 묘한 말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이 집권 경험을 살려 국가 경영의 안목과 식견을 현직 대통령에게 조언해 국가 운영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DJ-YS 화해론’을 꺼낸 것.
이에 덧붙여 이총재는 “헌법에 전직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아 현직 대통령에게 자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면서 YS가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맡아 김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 그는 4월20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의 YS와 만난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총재가 김대통령과 총재회담을 가진 것이 4월28일이니 이에 대한 이들 3인 사이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YS의 방미 도중 현지 공관의 예우는 최고 수준이었고, 5월6일 귀국에는 한광옥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김대통령과의 만남을 계속 거부했던 YS가 총선 이후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변한 것은 분명 총선에 따른 정국 기상도의 변화 때문이다. 물론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의원은 청와대 회동에 대해 “김대통령이 독재자라고 하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지만, 이는 YS의 ‘얼굴 살리기’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이번 YS와의 회동에서는 남북정상회담만 의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30년 전부터 그래왔듯 ‘대결과 협력의 관계’ 차원에서의 ‘공존’이 모색된 자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 단계가 개헌론을 꺼내기에 적절한 시점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이 놓여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탐색은 예상 외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것도 자민련이 아니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은 지난 4월18일 이회창총재가 우연찮게 꺼냈다가 며칠만에 슬그머니 잠복했다. “벌써 대통령이라도 된 것 같은 모양”이라는 안팎의 조롱이 나오자 맹형규 총재비서실장은 “원론적 수준의 얘기”라고 서둘러 봉합하려 애썼지만, 김덕룡부총재와 이부영원내총무 등은 “대통령 정-부통령 문제도 동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 논의를 가속화시켰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것. 그러나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의 한 핵심 인사는 “항간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거론되고 있으나 우리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인제상임고문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예비주자가 없는 여권 입장에서 정-부통령제 도입은 선택의 폭을 상당히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상자기사 참조). 김대통령으로서도 이인제고문 한명만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포스트 이회창’을 노리는 주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헌 연대’가 생길 수도 있다는 논리다.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론은 현재로서는 수면 밑에 잠복해 있지만 6월 정상회담 이후 16대 국회에서는 언제든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소지가 많다.
이상 네 가지 사안만을 놓고 볼 때 김대통령과 이회창총재, JP, YS 4인은 현재 치열한 ‘관계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총선 이전의 ‘적대적 관계’는 이제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정국 주도력 확보를 위한 ‘4각 체제’가 동시에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통한 이니셔티브를 최대한 살려 정권재창출의 기틀을 마련하려 하겠지만, ‘원내 제2당’의 입장에 따른 통치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총선 공천권이 없어진 것도 한계를 부추기는 절대적 요인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4각의 고난도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 해법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김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이회창총재 YS JP 등 3인과 사안별 협력과 대결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긴장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김대통령이 정치적 갈등 요소를 가급적 줄여가면서 남북정상회담이나 개혁 같은 대국적 국면에만 치중한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논지도 적지 않다.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김대통령에게 부쩍 ‘통합의 정치력’을 주문하는 소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김대통령의 ‘청남대 구상’은 남북정상회담이 첫번째 테마였다. 김대통령으로서는 ‘민족사적 대사건’에 임해 한반도 거주 당사자들인 국민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커다란 밑그림을 준비해야만 한다. 김대통령이 이번 청남대행에 북한 전문가인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쓴 ‘현대 북한의 지도자’등 3권의 북한 관련 책을 지참한 것도 이 때문이다.
3일간 ‘청남대 구상’ 정국 밑그림
그러나 김대통령의 숙고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6대 국회 원구성 문제도 김대통령을 심란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국회의장을 한나라당이 가져갈 경우 임기 후반의 국회와 원내 대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9월 전당대회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두통거리다. 이밖에도 수없이 산적한 현안들이 김대통령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네 가지 사안을 중심으로 김대통령의 후반기 통치술을 들여다보자.
현 정권의 정책 브레인 중 한 사람인 동국대 황태연교수(정치학)는 6월 이후 김대통령의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국회의장 자리가 야당으로 넘어가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민주당 내에서 너무 빨리 차기 대통령후보 문제가 부상하는 경우. 황교수는 “지금 한나라당은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으나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시비를 확대할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을 여당에서 차지하지 못하면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고 정국 파행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교동계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은 황교수의 전망과 전혀 달랐다. “무리수를 써가면서 국회의장을 반드시 여당에서 가져가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국민의 정치 의식이 과거와 다르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야당 편을 들거나 편파적인 진행을 하면 그 즉시로 광범위한 비판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날치기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장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김대통령 생각은? 일단은 가져오면 좋지만 ‘무슨 수를 쓰든지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역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의 총재회담 이후 모처럼 조성된 여야간 대화 협력 정국을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다시 파행으로 이끌고 싶지 않다는 뜻이 강한 듯하다. 민주당 박상천총무가 5월6일 “국회의장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집권 여당에서 맡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한나라당이 경선을 고집할 경우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국회의장 경선 카드의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러한 기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회의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한 표 대결까지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민주당에서 ‘자민련 의장 추대론’이 급부상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민주당 인사들은 김종필명예총재(JP)와의 ‘재결합’ 추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소장파 의원일수록 그렇다. 한 386세대 당선자는 “JP 문제는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이라며 “자민련 17석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JP가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대통령 생각은 전혀 다른 듯하다. 한 소장파 의원은 “유감스럽게도 김대통령이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주장을 들어주려 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자민련은 6일에도 성명을 통해 “외국의 경우 영국 미국 호주 등 24개국은 교섭단체 조건이 없고, 조건을 둔 대부분의 나라도 15인 이하”라며 “특히 의원 정수가 16대 국회에서 26명이 준 것도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의 주요 사유”라고 거듭 주장했다. 자민련 주장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17석의 도움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한나라당도 ‘결사 반대’를 고집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진입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가 된 다음에도 DJP 재공조를 유지하려 할 것이냐는 사실. 이는 역시 DJP 회동에서 결말이 날 문제다.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자민련 이한동총재는 “조만간 두 분이 만날 것”이라고 DJP회동의 성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권 내부 기류로 볼 때 김대통령이 DJP 재공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대통령이 JP와의 의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민주당 관계자들 얘기다.
5월4일 자민련 이한동총재는 묘한 말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이 집권 경험을 살려 국가 경영의 안목과 식견을 현직 대통령에게 조언해 국가 운영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DJ-YS 화해론’을 꺼낸 것.
이에 덧붙여 이총재는 “헌법에 전직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아 현직 대통령에게 자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면서 YS가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맡아 김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 그는 4월20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의 YS와 만난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총재가 김대통령과 총재회담을 가진 것이 4월28일이니 이에 대한 이들 3인 사이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YS의 방미 도중 현지 공관의 예우는 최고 수준이었고, 5월6일 귀국에는 한광옥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김대통령과의 만남을 계속 거부했던 YS가 총선 이후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변한 것은 분명 총선에 따른 정국 기상도의 변화 때문이다. 물론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의원은 청와대 회동에 대해 “김대통령이 독재자라고 하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지만, 이는 YS의 ‘얼굴 살리기’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이번 YS와의 회동에서는 남북정상회담만 의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30년 전부터 그래왔듯 ‘대결과 협력의 관계’ 차원에서의 ‘공존’이 모색된 자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 단계가 개헌론을 꺼내기에 적절한 시점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이 놓여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탐색은 예상 외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것도 자민련이 아니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은 지난 4월18일 이회창총재가 우연찮게 꺼냈다가 며칠만에 슬그머니 잠복했다. “벌써 대통령이라도 된 것 같은 모양”이라는 안팎의 조롱이 나오자 맹형규 총재비서실장은 “원론적 수준의 얘기”라고 서둘러 봉합하려 애썼지만, 김덕룡부총재와 이부영원내총무 등은 “대통령 정-부통령 문제도 동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 논의를 가속화시켰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것. 그러나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의 한 핵심 인사는 “항간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거론되고 있으나 우리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인제상임고문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예비주자가 없는 여권 입장에서 정-부통령제 도입은 선택의 폭을 상당히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상자기사 참조). 김대통령으로서도 이인제고문 한명만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포스트 이회창’을 노리는 주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헌 연대’가 생길 수도 있다는 논리다.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론은 현재로서는 수면 밑에 잠복해 있지만 6월 정상회담 이후 16대 국회에서는 언제든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소지가 많다.
이상 네 가지 사안만을 놓고 볼 때 김대통령과 이회창총재, JP, YS 4인은 현재 치열한 ‘관계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총선 이전의 ‘적대적 관계’는 이제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정국 주도력 확보를 위한 ‘4각 체제’가 동시에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통한 이니셔티브를 최대한 살려 정권재창출의 기틀을 마련하려 하겠지만, ‘원내 제2당’의 입장에 따른 통치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총선 공천권이 없어진 것도 한계를 부추기는 절대적 요인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4각의 고난도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 해법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김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이회창총재 YS JP 등 3인과 사안별 협력과 대결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긴장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김대통령이 정치적 갈등 요소를 가급적 줄여가면서 남북정상회담이나 개혁 같은 대국적 국면에만 치중한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논지도 적지 않다.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김대통령에게 부쩍 ‘통합의 정치력’을 주문하는 소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