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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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金은 가도 ‘지역’은 남는가

영호남 유권자들 몰표 … 충청·강원 합리적 선택 주목할 만

  • 입력2006-05-19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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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金은 가도 ‘지역’은 남는가
    16대 총선에서는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어떻게 나타났나. 과거보다 더욱 심화된 것일까, 아니면 완화된 것일까.

    총선 결과가 보여준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역주의와 관련한 일종의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지도자와 그 지역의 ‘일체화’라는 기조가 유지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양자 사이의 ‘분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외관상 지역분할 체제는 더욱 깊어졌다. 한나라당이 영남권 의석 65석 중 무소속 1개를 제외하고 64석을 독식한 것은 이에 대한 부동의 증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29석 가운데 무소속 4석을 빼고 25석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영-호남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당 후보에게 단 한 석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지역주의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특히 한나라당(15대 때 신한국당)의 영남 석권은 지역주의 심화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5대 총선과 이번 선거의 정당 지지율을 비교하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나라당 지지도는 부산의 경우 55.8%에서 60.3%로, 경남은 46.5%에서 53.7%로 각각 상승했다. TK지역은 더욱 심해 대구는 과거 24.8%에서 62.8%로, 경북은 34.9%에서 52.5%로 뛰어올랐다.

    이처럼 영남에서 지역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깊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그 원인을 ‘이인제 효과’와 연관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서강대 손호철교수(정치학)는 “영남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후보에게 표를 분산시킴으로써 김대중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일종의 ‘학습효과’를 거쳐 이번엔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를 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을 계속 유지한 이유로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지역분할구도가 지적되고 있다. 개정 선거법에 따른 현재의 영-호남 의석비는 65대 29. 영남이 호남보다 무려 36석이나 많다. 따라서 선거 결과를 놓고 제1당이니 제2당이니 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내 의석 변화와 이에 따른 정치 위상 변화는 영-호남 지역주의의 극렬한 표출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깊숙이 천착해 보면 지역주의가 약화되어 가는 징후도 조금씩 발견된다. 우선 호남의 경우 무소속 당선자가 대부분 김대중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점에서 이들 4인의 국회 진출 성공을 지역주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즉, 호남에서 지역주의 약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지지도의 변화 추이를 살펴볼 때 지역주의 약화 주장은 더욱 호소력을 갖는다. 호남의 경우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 크게 준 대신 영남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는 15대 때 광주에서 86.2%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번엔 민주당 이름으로 69.9% 얻는데 그쳤다. 전남에서도 70.9%이었던 지지가 66.4%로 내려앉았다. 거꾸로 4년 전 부산에서는 6.4%의 지지율밖에 기록하지 못했으나 이번엔 15%의 표를 얻었고, 경북은 1.6%에서 14.7%로, 경남 4.2%에서 11.8%로, 대구 1.4%에서 10.9%로 각각 상승했다.

    수도권과 충청권, 강원도의 경우 유권자들이 지역 연고성보다 인물과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충청권의 경우 자민련은 4년 전 총선에서 대전 49.8%, 충북 39.3%, 충남 51.1%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이번엔 각각 34.3%, 29.5%, 39.2%를 얻는데 그쳐 지역주의 퇴조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충청권 맹주를 자임해온 JP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철회한 결과, 자민련은 이 지역 24곳 중 13곳을 타당에 빼앗기는 참패를 맛봤다. 충청권에서부터 지역주의 해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과 JP의 외연이 좁아든 데에는 양당 구도 고착화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민주당 이인제선대위원장의 향후 움직임 여하에 따라 지역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할 가능성도 있어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또 하나 지역주의 해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건 민국당의 완패다. 민국당은 “영남에서 당선되지 않으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는 등 극단적인 지역감정 유발 발언으로 유리한 고지 선점을 시도했지만, 헛수고로 돌아갔다. 대신 아이로니컬하게도 여론의 돌팔매를 맞아 가며 의지하고자 했던 지역주의의 과실은 몽땅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한국정치의 주류였던 민정계와 민주계, 공화계의 퇴조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민정계는 대구-경북에서, 민주계는 부산-경남에서, 공화계는 충청권에서 각각 궤멸됐다. 결국 특정지역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지도자 사이의 일체화 및 분열이라는 대립 요소의 동시 진행은 곧 지역주의의 국면적 강화와 전반적인 해체라는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3김정치의 몰락’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충청권 사수에 실패한 JP는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이번에 자민련이 충청권 싸움에서 잃은 선거구 중 대전 서갑과 충북 보은-옥천-영동, 충남 천안갑, 당진, 서산-태안 등지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JP가 단 한번도 패배를 상정한 일이 없다. 선거 직후부터 언론이 “유종의 미를 준비하라”며 JP의 정치권 명퇴를 거론하고 나선 것도 심상치 않다.

    YS도 측근들의 대거 낙선으로 발언권이 현저히 줄어든 모양이다. 비록 부산과 경남에서의 민국당 공개 지지를 끝까지 회피해 최소한의 체면은 유지했지만, 그의 선택이 더 이상 정국의 주요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DJ 역시 호남 무소속의 대거 당선과 제1당 진출 실패 등으로 미뤄 승자라고는 볼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외견상 지역주의의 강화 경향에도 불구, 이번 선거 결과 가장 큰 특징을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지역주의 해체 가능성 확인 및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3김정치’의 퇴조로 보는 시각이 나타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3김정치’가 16대 총선을 마지막으로 종언을 고했다는 다소 성급한 시각도 있다. 앞으로 수도권에서부터 신구대결이나 세대교체, 정보화 논리가 지역주의를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지리라는 건 더 이상 말의 성찬만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16대 총선에서 밖으로 드러난 지역주의는 최고점에 이르렀지만, 이는 곧 해체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최고단계’는 곧 ‘사멸하는 단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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