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계에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의 일. 대학 캠퍼스에서는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과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인문학 강좌는 수강생 수가 축소 일로를 걷고 있는 형편이다. 국어국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고전문학이나 국어학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가운데 실용적 성격이 강한 문예창작과는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학과사회’ 봄호에 ‘국어국문학의 위기’를 우려한 홍정선 인하대교수의 글이 실려 눈길을 끈다. 이 글에서 홍교수는 “최근 문예창작과에 대한 수험생의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당수 대학에서 문예창작과(혹은 전공)를 신설하고 있거나 기존의 국문과를 창작적 색채가 짙은 방향으로 개편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가 독자적 성격을 상실하고 뒤섞이는 비정상적 기류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중앙대와 서울예대로 양대산맥을 이룬 문예창작과가 수적인 급증세를 보인 것은 최근 10여년 사이의 일. 현재 문예창작과(혹은 전공)가 설치된 4년제 대학은 명지대 중앙대 계명대 단국대 동국대 한신대 등 21개 학교이며, 교수진에도 국내 유수의 현역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명지대의 경우 석좌교수인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 이제하, 시인 남진우 등이 교수진에 포함되어 있고, 신경림(동국대) 이문구(경기대) 임철우(한신대)도 다른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문예창작과가 설립되어 있지 않은 학교의 경우도 창작 관련 강좌나 ‘영상매체 속의 문학’ ‘광고와 문학’처럼 대중문화와 문학을 연계시킨 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고, 학생들의 호응도도 높다.
그러나 국문학 중에서 인문학적 성격이 강한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한문학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추세. “대학에 학부제가 도입돼 ‘전공필수’ 과목이 없어지면서 인문학부 수강생들도 학술적 성격이 강한 강좌보다 실용적인 강좌에만 몰려가고 있다”는 것이 경기대 국문과 김성규교수의 이야기다. “지금의 상황은 국문학 전체의 위기라기보다 국어학과 고전문학의 위기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한신대의 경우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국문학은 그렇지 않은 문창과에 비해 오히려 지원율이 높은 편이지만, 국어학과 고전문학은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한신대 서영채교수는 말한다. 한국-동양어문학부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고려대도 지난해 전공선택 과정에서 단 한명도 한문학과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학교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비교적 학풍이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서울대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아직까지는 창작 전공강좌가 없지만, 앞으로 관련 강좌를 개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일부 교수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국어학 교양강좌의 경우 10년 전에 비해 수강생 수가 줄어가는 추세며, 전체 국문과 교수 중 국어학 전공교수의 수가 가장 많은 데 비해 대학원 진학생들은 국어학 전공을 선호하지 않는다.”(서울대 국문과의 한 조교)
문예창작과(혹은 전공)가 늘어나고 국어학-고전 전공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글을 잘 쓰는 훈련을 받으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기대심리가 그중 하나. 기존의 출판사와 기업의 홍보실 외에도 영상매체의 발달에 따른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의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학생들의 발길을 문창과로 향하게 만든다. 반면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전공은 교직을 택하지 않는 한 취업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편이다.
또한 기존의 그 어느 세대보다 대중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성장한 젊은 세대들에게 순수 인문학적인 전공보다 창작, 혹은 대중매체와 밀접한 문학장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지도 모른다. 김성규교수는 “기존의 국문학이 지나치게 학술적이고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 중심이었던 데 대한 반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문예창작과의 수요가 늘다보니 일부 ‘부실 학과’도 생겨난다. 졸속으로 문창과를 만든 지방 H대와 서울 K대 대학원이 그 예다. H대는 일부 국어학, 고전문학 전공 강사에게 수필 한 두편을 발표하게 한 뒤 문예창작과 교수로 발령을 내는가 하면 K대학 역시 정교수는 한 명도 두지 않고 외부 강사만으로 어설프게 문창과를 개설했다.
그러나 인문학으로서의 국문학과 실용적 성격의 문예창작학을 ‘제로 섬’(한쪽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다른 한쪽이 줄어드는 역학관계)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홍정선교수는 “문예창작과가 증가하는 사실 자체는 결코 반대할 만한 현상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일부 국문과처럼 학생 수요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교수진과 교과 과정을 창작 및 현대문학 중심으로 바꿔버리거나, 문창과가 국어국문학과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강좌를 구성해 놓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강상희 경기대교수도 “실용적 성격의 국문학 강좌나 문창과의 증가가 곧 국어학이나 고전문학을 위축시킨 결정적 원인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문학의 탐구 대상이 이전보다 넓어지고, ‘문학’ 혹은 ‘문학적인 것’의 개념 자체가 확장된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의 원칙만을 갖고는 국문학뿐 아니라 순수 인문학 어느 분야도 자생력을 갖고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이 수강하지 않는 이상 학교측으로서는 강좌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전공을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북돋워 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들 학과가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도 이젠 자본주의 시장의 한 ‘상품’이다. 학생, 즉 소비자들은 ‘필요’와 ‘입맛’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 ‘필요와 입맛’의 영역에서 벗어난 인문학으로서의 국어국문학을 보호하기 위해서 강상희교수의 지적처럼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문학과사회’ 봄호에 ‘국어국문학의 위기’를 우려한 홍정선 인하대교수의 글이 실려 눈길을 끈다. 이 글에서 홍교수는 “최근 문예창작과에 대한 수험생의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당수 대학에서 문예창작과(혹은 전공)를 신설하고 있거나 기존의 국문과를 창작적 색채가 짙은 방향으로 개편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가 독자적 성격을 상실하고 뒤섞이는 비정상적 기류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중앙대와 서울예대로 양대산맥을 이룬 문예창작과가 수적인 급증세를 보인 것은 최근 10여년 사이의 일. 현재 문예창작과(혹은 전공)가 설치된 4년제 대학은 명지대 중앙대 계명대 단국대 동국대 한신대 등 21개 학교이며, 교수진에도 국내 유수의 현역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명지대의 경우 석좌교수인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 이제하, 시인 남진우 등이 교수진에 포함되어 있고, 신경림(동국대) 이문구(경기대) 임철우(한신대)도 다른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문예창작과가 설립되어 있지 않은 학교의 경우도 창작 관련 강좌나 ‘영상매체 속의 문학’ ‘광고와 문학’처럼 대중문화와 문학을 연계시킨 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고, 학생들의 호응도도 높다.
그러나 국문학 중에서 인문학적 성격이 강한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한문학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추세. “대학에 학부제가 도입돼 ‘전공필수’ 과목이 없어지면서 인문학부 수강생들도 학술적 성격이 강한 강좌보다 실용적인 강좌에만 몰려가고 있다”는 것이 경기대 국문과 김성규교수의 이야기다. “지금의 상황은 국문학 전체의 위기라기보다 국어학과 고전문학의 위기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한신대의 경우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국문학은 그렇지 않은 문창과에 비해 오히려 지원율이 높은 편이지만, 국어학과 고전문학은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한신대 서영채교수는 말한다. 한국-동양어문학부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고려대도 지난해 전공선택 과정에서 단 한명도 한문학과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학교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비교적 학풍이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서울대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아직까지는 창작 전공강좌가 없지만, 앞으로 관련 강좌를 개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일부 교수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국어학 교양강좌의 경우 10년 전에 비해 수강생 수가 줄어가는 추세며, 전체 국문과 교수 중 국어학 전공교수의 수가 가장 많은 데 비해 대학원 진학생들은 국어학 전공을 선호하지 않는다.”(서울대 국문과의 한 조교)
문예창작과(혹은 전공)가 늘어나고 국어학-고전 전공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글을 잘 쓰는 훈련을 받으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기대심리가 그중 하나. 기존의 출판사와 기업의 홍보실 외에도 영상매체의 발달에 따른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의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학생들의 발길을 문창과로 향하게 만든다. 반면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전공은 교직을 택하지 않는 한 취업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편이다.
또한 기존의 그 어느 세대보다 대중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성장한 젊은 세대들에게 순수 인문학적인 전공보다 창작, 혹은 대중매체와 밀접한 문학장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지도 모른다. 김성규교수는 “기존의 국문학이 지나치게 학술적이고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 중심이었던 데 대한 반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문예창작과의 수요가 늘다보니 일부 ‘부실 학과’도 생겨난다. 졸속으로 문창과를 만든 지방 H대와 서울 K대 대학원이 그 예다. H대는 일부 국어학, 고전문학 전공 강사에게 수필 한 두편을 발표하게 한 뒤 문예창작과 교수로 발령을 내는가 하면 K대학 역시 정교수는 한 명도 두지 않고 외부 강사만으로 어설프게 문창과를 개설했다.
그러나 인문학으로서의 국문학과 실용적 성격의 문예창작학을 ‘제로 섬’(한쪽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다른 한쪽이 줄어드는 역학관계)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홍정선교수는 “문예창작과가 증가하는 사실 자체는 결코 반대할 만한 현상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일부 국문과처럼 학생 수요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교수진과 교과 과정을 창작 및 현대문학 중심으로 바꿔버리거나, 문창과가 국어국문학과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강좌를 구성해 놓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강상희 경기대교수도 “실용적 성격의 국문학 강좌나 문창과의 증가가 곧 국어학이나 고전문학을 위축시킨 결정적 원인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문학의 탐구 대상이 이전보다 넓어지고, ‘문학’ 혹은 ‘문학적인 것’의 개념 자체가 확장된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의 원칙만을 갖고는 국문학뿐 아니라 순수 인문학 어느 분야도 자생력을 갖고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이 수강하지 않는 이상 학교측으로서는 강좌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국어학이나 고전문학 전공을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북돋워 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들 학과가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도 이젠 자본주의 시장의 한 ‘상품’이다. 학생, 즉 소비자들은 ‘필요’와 ‘입맛’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 ‘필요와 입맛’의 영역에서 벗어난 인문학으로서의 국어국문학을 보호하기 위해서 강상희교수의 지적처럼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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