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홈페이지(www.mpb.go.kr)에는 나라 빚이 얼마나 되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돼 있다.
“99년말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는 111조8000억원. 여기에다 한국은행의 IMF 차입금과 정부가 채무를 보증한 금액 90조2000억원을 합한 국가부채는 200조원이 넘습니다.”
96년 57조원이었던 국가부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기획예산처는 “정부가 외국에서 돈을 빌려 금융구조조정 지원, 수출 지원, SOC투자확대, 실업자와 저소득자 지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빚을 줄여 나가기란 매우 어렵다”고 이 홈페이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대외에 공표한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채무를 줄이는 게 왜 어려운가. 기획예산처 홈페이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이 재정흑자로 전환되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은 70년 재정적자가 시작된 이후 99년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97.3%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겐 사회복지 분야 지출확대, 국가가 지급보증한 금융구조조정자금(64조원)의 국가채무 전환가능성, 통일대비소요 등 새로운 재정지출 소요로 국가채무가 늘어날 요인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2004년까지 국가채무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채무를 모두 갚는 데 적어도 15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무관리는 나라의 ‘명운’과 직결된 문제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렸던 IMF상황을 떠올리면 채무관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국가 1년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10조원이 올해 이자로 지급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획예산처도 2월25일 홈페이지에서 이 문제를 우려하며 “재정잉여금은 ‘전액’ 국가채무 상환에 사용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이같은 약속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정부가 2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지난해 세계잉여금을 ‘빈곤퇴치’에 사용하기로 최근 결정한 것이다. ‘세계(歲計)잉여금’이란 정부가 예측한 액수보다 세금이 더 들어와 결산한 뒤 남은 돈을 뜻하는 말이다. 재정잉여금과 거의 같은 의미다.
그동안 정부는 세계잉여금 사용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을 주어왔다. 기획예산처는 99년말 세계잉여금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지 않고 국가채무상환에만 쓸 수 있도록 ‘재정 건전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김대중대통령은 한 교육계 행사장에서 세계잉여금의 일부를 교육재정에 쓰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여당과의 협의과정에서 ‘서민생활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엔 사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이의 실행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도 못했다.
재정경제부가 작성한 ‘200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세계잉여금에 대한 ‘원칙론’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재정경제부는 여기서 “재정은 적자감축에 중점을 두어 조속한 균형재정 회복을 도모하겠다. 연차별 재정적자 관리목표를 설정하고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상환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올해 초 세계잉여금을 저소득자 지원에 쓰겠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의 관계자는 2월24일 “2월9일의 국무회의를 거쳐 1조5000억원의 세계잉여금은 빈곤층을 위해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교육학과 송기창교수는 2월24일 “정부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통령은 99년 11월23일 ‘세계잉여금의 일정비율을 교육재정에 투입하는 방안을 관계기관에 지시했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이를 굳게 믿고 다음날 한 신문에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을 환영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세계잉여금에서 2000년 교육재정으론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교육당국은 2001년 추가 확보하기로 한 교육재정이 바로 세계잉여금에서 나온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말을 끼워맞추는 억지에 불과하다.”
LG경제연구원 이용만부연구위원은 2월24일 이-메일로 여론을 전하는 ‘자유기업원’을 통해 부채를 줄이려는 정부 의지에 불신을 나타냈다. “‘재정 건전화법’이 무산된 이후에도 다행히 정부는 세계잉여금이 발생하면 부채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또다시 결정을 번복해 이를 믿고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정부가 빈곤층을 보호하려는 순수한 목적이 있다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즉흥적 지원방식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를 걱정한다. “후세대들도 혜택을 입는 SOC투자에 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무계획적으로 먹고 쓰는데에 써버리면 지금의 국가채무는 후세대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세계잉여금을 복지정책에 쓰건 부채탕감에 쓰건 그것은 정책적 선택의 문제다. 원래 발행하기로 했던 2조5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하지 않은 것은 세계잉여금을 빚 갚는데 쓴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려대 경제학과 이만우교수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액수만큼 빚을 갚은 셈이라는 정부측 논리엔 선뜻 동의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정부가 1년간 살림하고 돈이 남았으면 당연히 빚을 갚는데 써야 한다. 선진국도 세수잉여금은 모두 부채탕감에 사용한다. 1년 예산의 10%를 고스란히 이자로 날리고 더구나 4대 보험문제와 금융구조조정 여파로 2004년이 지나도 적자규모가 더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복지예산을 이번처럼 소위 일회성 ‘원샷’으로 쓰는 것은 효과도 거의 없다. 이것으로 소득재분배가 될 것 같은가. 저소득층 지원의 근본대책은 세제개혁을 통한 항구적 세입 확보에 있다.”
시민단체 사이에선 세계잉여금 처리 문제를 두고 시각이 갈린다.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정부 방침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 단체 조세팀은 중립적 입장이다. 다음은 조세팀 홍일표간사가 내놓는 해결책이다.
“채무상환이나 복지정책이나 원칙을 정해 큰 틀로 풀어야 자원의 낭비를 막고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현 시점에서 채무상환의 원칙은 ‘재정건전화 특별법’에 다 나와 있고, 복지정책의 원칙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정건전화법은 사장됐다. 또한 정부는 5조원이 소요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예산을 너무 적게 책정했다. 복지정책이 세계잉여금을 투입할 정도로 그렇게 시급했다면 불과 두달 전 정규예산편성 때 이 사업예산을 충분히 책정했어야 했다. 국가정책의 원칙이 서있지 않으니 세계잉여금 같은 공돈이 생겨도 어디에다 쓸지를 몰라 혼란을 겪는 것이다.
세계잉여금 2조원은 첫 단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방식으로 복지사업에 국고를 투입한다면 채무에 계속 시달리면서 소득재분배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부는 다음달 초 복지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또 하나의 잣대인 ‘소득분배구조개선 3개년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 계획에 따른 세부사업을 보고 나서 세계잉여금의 구체적 용처를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99년말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는 111조8000억원. 여기에다 한국은행의 IMF 차입금과 정부가 채무를 보증한 금액 90조2000억원을 합한 국가부채는 200조원이 넘습니다.”
96년 57조원이었던 국가부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기획예산처는 “정부가 외국에서 돈을 빌려 금융구조조정 지원, 수출 지원, SOC투자확대, 실업자와 저소득자 지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빚을 줄여 나가기란 매우 어렵다”고 이 홈페이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대외에 공표한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채무를 줄이는 게 왜 어려운가. 기획예산처 홈페이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이 재정흑자로 전환되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은 70년 재정적자가 시작된 이후 99년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97.3%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겐 사회복지 분야 지출확대, 국가가 지급보증한 금융구조조정자금(64조원)의 국가채무 전환가능성, 통일대비소요 등 새로운 재정지출 소요로 국가채무가 늘어날 요인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2004년까지 국가채무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채무를 모두 갚는 데 적어도 15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무관리는 나라의 ‘명운’과 직결된 문제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렸던 IMF상황을 떠올리면 채무관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국가 1년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10조원이 올해 이자로 지급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획예산처도 2월25일 홈페이지에서 이 문제를 우려하며 “재정잉여금은 ‘전액’ 국가채무 상환에 사용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이같은 약속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정부가 2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지난해 세계잉여금을 ‘빈곤퇴치’에 사용하기로 최근 결정한 것이다. ‘세계(歲計)잉여금’이란 정부가 예측한 액수보다 세금이 더 들어와 결산한 뒤 남은 돈을 뜻하는 말이다. 재정잉여금과 거의 같은 의미다.
그동안 정부는 세계잉여금 사용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을 주어왔다. 기획예산처는 99년말 세계잉여금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지 않고 국가채무상환에만 쓸 수 있도록 ‘재정 건전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김대중대통령은 한 교육계 행사장에서 세계잉여금의 일부를 교육재정에 쓰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여당과의 협의과정에서 ‘서민생활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엔 사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이의 실행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도 못했다.
재정경제부가 작성한 ‘200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세계잉여금에 대한 ‘원칙론’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재정경제부는 여기서 “재정은 적자감축에 중점을 두어 조속한 균형재정 회복을 도모하겠다. 연차별 재정적자 관리목표를 설정하고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상환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올해 초 세계잉여금을 저소득자 지원에 쓰겠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의 관계자는 2월24일 “2월9일의 국무회의를 거쳐 1조5000억원의 세계잉여금은 빈곤층을 위해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교육학과 송기창교수는 2월24일 “정부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통령은 99년 11월23일 ‘세계잉여금의 일정비율을 교육재정에 투입하는 방안을 관계기관에 지시했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이를 굳게 믿고 다음날 한 신문에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을 환영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세계잉여금에서 2000년 교육재정으론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교육당국은 2001년 추가 확보하기로 한 교육재정이 바로 세계잉여금에서 나온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말을 끼워맞추는 억지에 불과하다.”
LG경제연구원 이용만부연구위원은 2월24일 이-메일로 여론을 전하는 ‘자유기업원’을 통해 부채를 줄이려는 정부 의지에 불신을 나타냈다. “‘재정 건전화법’이 무산된 이후에도 다행히 정부는 세계잉여금이 발생하면 부채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또다시 결정을 번복해 이를 믿고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정부가 빈곤층을 보호하려는 순수한 목적이 있다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즉흥적 지원방식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를 걱정한다. “후세대들도 혜택을 입는 SOC투자에 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무계획적으로 먹고 쓰는데에 써버리면 지금의 국가채무는 후세대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세계잉여금을 복지정책에 쓰건 부채탕감에 쓰건 그것은 정책적 선택의 문제다. 원래 발행하기로 했던 2조5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하지 않은 것은 세계잉여금을 빚 갚는데 쓴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려대 경제학과 이만우교수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액수만큼 빚을 갚은 셈이라는 정부측 논리엔 선뜻 동의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정부가 1년간 살림하고 돈이 남았으면 당연히 빚을 갚는데 써야 한다. 선진국도 세수잉여금은 모두 부채탕감에 사용한다. 1년 예산의 10%를 고스란히 이자로 날리고 더구나 4대 보험문제와 금융구조조정 여파로 2004년이 지나도 적자규모가 더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복지예산을 이번처럼 소위 일회성 ‘원샷’으로 쓰는 것은 효과도 거의 없다. 이것으로 소득재분배가 될 것 같은가. 저소득층 지원의 근본대책은 세제개혁을 통한 항구적 세입 확보에 있다.”
시민단체 사이에선 세계잉여금 처리 문제를 두고 시각이 갈린다.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정부 방침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 단체 조세팀은 중립적 입장이다. 다음은 조세팀 홍일표간사가 내놓는 해결책이다.
“채무상환이나 복지정책이나 원칙을 정해 큰 틀로 풀어야 자원의 낭비를 막고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현 시점에서 채무상환의 원칙은 ‘재정건전화 특별법’에 다 나와 있고, 복지정책의 원칙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정건전화법은 사장됐다. 또한 정부는 5조원이 소요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예산을 너무 적게 책정했다. 복지정책이 세계잉여금을 투입할 정도로 그렇게 시급했다면 불과 두달 전 정규예산편성 때 이 사업예산을 충분히 책정했어야 했다. 국가정책의 원칙이 서있지 않으니 세계잉여금 같은 공돈이 생겨도 어디에다 쓸지를 몰라 혼란을 겪는 것이다.
세계잉여금 2조원은 첫 단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방식으로 복지사업에 국고를 투입한다면 채무에 계속 시달리면서 소득재분배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부는 다음달 초 복지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또 하나의 잣대인 ‘소득분배구조개선 3개년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 계획에 따른 세부사업을 보고 나서 세계잉여금의 구체적 용처를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