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개각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상근 부회장의 입각이 유력한 가운데 재계가 ‘정치세력화 선언’을 둘러싸고 파란에 휩싸이고 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손병두부회장을 연말 개각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기용하는 문제가 여권과의 사이에서 깊숙이 논의되었으며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고 말했다. 손부회장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입각하게 되면 재계를 대표하는 현직 경제단체 주요 임원으로는 첫 케이스로 기록될 것인데다 ‘영남 끌어안기’와 ‘재계 끌어안기’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손부회장의 입각은, 취임 이후 2년간 재계를 강하게 압박해 온 김대중정부로서는 재계와의 화해 제스처로 비칠 수 있는 인사여서 재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영남-재계 끌어안기 노려
청와대는 논란을 빚었던 부채비율 200%를 달성하는 시점에 맞춰 열리는 연말 정재계 간담회를 앞두고 재계와의 화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손부회장의 입각이 검토됐으며 손부회장 자신도 ‘재계 자율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적극적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밑 논의 과정에서 경제 5단체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세력화’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가 재계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현안이라는 데만큼은 여권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정치세력화하겠다’느니 ‘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해 친재벌적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선별 지원하겠다’느니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재계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실제 전경련 관계자는 “노조측이 회원 수를 바탕으로 표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나온다면,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는 재계로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전경련이 마음만 먹으면 30억∼40억원은 모을 수 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손부회장의 입각을 통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계와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앞세운 여권의 전략이 ‘정치세력화 선언’을 계기로 암초를 만난 형국인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재계 끌어안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