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언 신동아그룹부회장은 실패한 로비스트인가 아닌가. 아니, 그는 로비스트인가 아닌가. 옷로비 의혹 사건이 ‘여인들의 거짓말’ 시리즈에서 검찰총장과 청와대법무비서관이 관련된 ‘국가기강 문란 사건’ 시리즈로 좌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박시언씨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기반이 별로 없는 박씨는 해외에서 맺어진 현 정권 실세들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검찰총장실 등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자 “나는 로비스트가 아니다”고 말해 그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로비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설령 그가 로비스트를 자처했다고 해도 그는 무능한 로비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로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로비를 부탁한 의뢰인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언론에 폭로함으로써 의뢰인을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공격형 로비스트 단 한 사람도 없어
박씨와 같은 ‘무능한’ 로비스트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 ‘로비 문화’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에게 굳이 로비스트라는 이름을 붙이자면 그는 ‘방어형’ 로비스트에 불과하다. 자신의 ‘고객’과 관련한 비위 사실 폭로나 사법처리 직전에 영입되어 이를 막기 위해 각종 인맥을 바탕으로 동분서주하는 브로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회나 행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전 개입형, 즉 ‘공격형’ 로비는 전무한 형편이다. 이는 곧바로 국내에서 로비에 대한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30여년간 사업했던 한 전직 기업인은 “한국에 들어와 보니 ‘로비 자금’이라는 말이 독직 사건과 관련된 ‘뇌물’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이고 언론이고 마찬가지였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방어형’ 로비에 치중하다 보면 당연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정책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채 로비에 뛰어들기보다는 무턱대고 ‘힘있는 사람’을 찾아다니게 마련이다. 자칫하면 로비는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변호사법 위반 딱지를 붙이기 십상이다. 현재 국내에 공식적으로 ‘로비스트’라고 이름붙일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간혹 외국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 과정에서 로비스트라는 이름을 단 인물들이 활동하는 경우는 있다. 경부고속철도 차종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프랑스산 테제베(TGV)를 생산하는 알스톰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강귀희씨 정도가 자신이 로비스트임을 당당히 밝히는 유일한 인물인 셈이다.
국제적인 홍보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내놓아 스타덤에 오른 조안 리 역시 국가 차원의 로비스트라고 할 만하다. 로비는 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서 벗어나 상대 국가의 행정부는 물론, 여론과 국민에게 그 국가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나가는 작업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관료생활을 끝마치고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외국의 사례와 유사한 형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해 각 업종을 대표하는 이익집단들의 단체장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 단체장은 해당 업종의 현직 기업인이 맡더라도 부단체장은 관료 출신이 떠맡는 경우도 있다. 이들 관료 출신 단체 임원들은 정부청사를 수시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각 업종별 이익 단체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로비스트의 역할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체장 또는 단체 임원으로 내려오는 퇴직 관료들의 경우 대부분 부처 내에서 ‘물을 먹은’ 무능력한 관료라는 인식이 팽배해 기업들이건 정부 부처건 달가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 출신으로 2년전 직능 단체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한 인사는 “IMF 2년은 한마디로 바늘방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임원은 “어차피 지금 몸담고 있는 단체에서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외곽을 떠돌더라도 공직에 남아 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이들에게도 공식적인 로비스트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공무원 출신이 기업으로 이동하기는 하지만 이는 비대해진 관료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인력의 배출구일 뿐 로비스트 양성의 통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로비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로비스트는 변호사나 퇴직 공무원들로 채워진다. 이들은 법률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별도의 로비스트 사무실을 내고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들은 △성명과 사무실 소재지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주소 △계약기간과 보수 △누구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지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의회에 등록해야 한다.
물론 이 정도로 로비가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미국이라고 해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직 관료들이 퇴직하자마자 입장을 180도 바꿔 규제 대상이던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오면서 도덕성 논란은 물론 환경, 보건 등의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직에서는 환경 관련 규제를 외치던 관료들이 퇴직한 뒤 화학업체나 농약업체의 로비스트로 고용되면 입장을 180도 바꿔 각종 규제 철폐를 외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로비스트의 위원회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극단론자들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의회에 등록해 놓고 활동하는 로비스트가 많은 만큼 이들의 활동에 부정이나 뇌물이 개입되는 경우를 거의 상상할 수 없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민단체 “제대로 된 로비문화 만들자” 목소리 높여
이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로비문화는 음성적인 그늘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식적인 후원금이나 기부금이 아닌, ‘떡값’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일종의 로비자금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로비스트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20년의 관료생활을 마치고 대기업 기획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한 기업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기업들의 로비 관행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기업들 입장에서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하는 이유 등 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논리적 접근 방법은 전무하다. 그저 각종 연줄을 내세워 ‘내 체면을 생각해서 형편을 좀 봐달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로비가 설 땅이 있겠는가.”
오히려 제대로 된 로비문화를 정착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온 곳은 이익집단이 아니라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는 부패방지법이나 임대주택 관련법, 부가세법 등 각종 민생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을 개별 방문하거나 편지보내기운동을 벌이는 등 로비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참신한 시도인 만큼 평가도 긍정적이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교수(정치학)는 “참여연대 등에서 펼치는 시민로비운동은 우리 사회에 로비문화를 세울 수 있는 중요한 시도다.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각 이익집단들이 로비능력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다원 사회로 진행될수록 각종 로비 집단의 출현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어설픈 로비로 투명한 거래 관행을 망치기 보다는 제대로 된 로비스트를 키워 공정하게 활동하게 하는 것이 낳지 않느냐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로비 문화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아예 ‘로비 사관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어느 기업인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로비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설령 그가 로비스트를 자처했다고 해도 그는 무능한 로비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로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로비를 부탁한 의뢰인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언론에 폭로함으로써 의뢰인을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공격형 로비스트 단 한 사람도 없어
박씨와 같은 ‘무능한’ 로비스트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 ‘로비 문화’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에게 굳이 로비스트라는 이름을 붙이자면 그는 ‘방어형’ 로비스트에 불과하다. 자신의 ‘고객’과 관련한 비위 사실 폭로나 사법처리 직전에 영입되어 이를 막기 위해 각종 인맥을 바탕으로 동분서주하는 브로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회나 행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전 개입형, 즉 ‘공격형’ 로비는 전무한 형편이다. 이는 곧바로 국내에서 로비에 대한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30여년간 사업했던 한 전직 기업인은 “한국에 들어와 보니 ‘로비 자금’이라는 말이 독직 사건과 관련된 ‘뇌물’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이고 언론이고 마찬가지였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방어형’ 로비에 치중하다 보면 당연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정책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채 로비에 뛰어들기보다는 무턱대고 ‘힘있는 사람’을 찾아다니게 마련이다. 자칫하면 로비는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변호사법 위반 딱지를 붙이기 십상이다. 현재 국내에 공식적으로 ‘로비스트’라고 이름붙일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간혹 외국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 과정에서 로비스트라는 이름을 단 인물들이 활동하는 경우는 있다. 경부고속철도 차종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프랑스산 테제베(TGV)를 생산하는 알스톰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강귀희씨 정도가 자신이 로비스트임을 당당히 밝히는 유일한 인물인 셈이다.
국제적인 홍보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내놓아 스타덤에 오른 조안 리 역시 국가 차원의 로비스트라고 할 만하다. 로비는 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서 벗어나 상대 국가의 행정부는 물론, 여론과 국민에게 그 국가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나가는 작업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관료생활을 끝마치고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외국의 사례와 유사한 형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해 각 업종을 대표하는 이익집단들의 단체장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 단체장은 해당 업종의 현직 기업인이 맡더라도 부단체장은 관료 출신이 떠맡는 경우도 있다. 이들 관료 출신 단체 임원들은 정부청사를 수시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각 업종별 이익 단체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로비스트의 역할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체장 또는 단체 임원으로 내려오는 퇴직 관료들의 경우 대부분 부처 내에서 ‘물을 먹은’ 무능력한 관료라는 인식이 팽배해 기업들이건 정부 부처건 달가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 출신으로 2년전 직능 단체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한 인사는 “IMF 2년은 한마디로 바늘방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임원은 “어차피 지금 몸담고 있는 단체에서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외곽을 떠돌더라도 공직에 남아 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이들에게도 공식적인 로비스트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공무원 출신이 기업으로 이동하기는 하지만 이는 비대해진 관료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인력의 배출구일 뿐 로비스트 양성의 통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로비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로비스트는 변호사나 퇴직 공무원들로 채워진다. 이들은 법률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별도의 로비스트 사무실을 내고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들은 △성명과 사무실 소재지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주소 △계약기간과 보수 △누구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지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의회에 등록해야 한다.
물론 이 정도로 로비가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미국이라고 해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직 관료들이 퇴직하자마자 입장을 180도 바꿔 규제 대상이던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오면서 도덕성 논란은 물론 환경, 보건 등의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직에서는 환경 관련 규제를 외치던 관료들이 퇴직한 뒤 화학업체나 농약업체의 로비스트로 고용되면 입장을 180도 바꿔 각종 규제 철폐를 외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로비스트의 위원회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극단론자들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의회에 등록해 놓고 활동하는 로비스트가 많은 만큼 이들의 활동에 부정이나 뇌물이 개입되는 경우를 거의 상상할 수 없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민단체 “제대로 된 로비문화 만들자” 목소리 높여
이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로비문화는 음성적인 그늘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식적인 후원금이나 기부금이 아닌, ‘떡값’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일종의 로비자금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로비스트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20년의 관료생활을 마치고 대기업 기획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한 기업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기업들의 로비 관행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기업들 입장에서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하는 이유 등 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논리적 접근 방법은 전무하다. 그저 각종 연줄을 내세워 ‘내 체면을 생각해서 형편을 좀 봐달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로비가 설 땅이 있겠는가.”
오히려 제대로 된 로비문화를 정착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온 곳은 이익집단이 아니라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는 부패방지법이나 임대주택 관련법, 부가세법 등 각종 민생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을 개별 방문하거나 편지보내기운동을 벌이는 등 로비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참신한 시도인 만큼 평가도 긍정적이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교수(정치학)는 “참여연대 등에서 펼치는 시민로비운동은 우리 사회에 로비문화를 세울 수 있는 중요한 시도다.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각 이익집단들이 로비능력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다원 사회로 진행될수록 각종 로비 집단의 출현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어설픈 로비로 투명한 거래 관행을 망치기 보다는 제대로 된 로비스트를 키워 공정하게 활동하게 하는 것이 낳지 않느냐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로비 문화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아예 ‘로비 사관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어느 기업인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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