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 피에르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5), 루이스 부뉴엘의 ‘비리디아나’(1961). 누군가로부터 “이 영화를 봤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잠시 망설일 것이다. 불쑥 “내 취향”이라고 말했다 ‘변태’로 오해받을지도 모르니까.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사랑에 대해, 종교에 대해, 카니발리즘에 대해, 폭력과 도덕에 대해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고 나가” “관객으로 하여금 구토하게 하고, 혐오감에 빠지게 하며, 심지어 영화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 놓는 영화”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지금까지 “각자 집에서 몰래, 홀로 조심스럽게 보는 ‘은밀한 음지’의 영역”이었다. 이 엄청난 영화를 함께 보며 그 원초적 강렬함에 정신이 번쩍 뜨여 새벽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삶의 재발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이들이 있다. ‘30금 쌍담’은 이 강연장의 열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책이다.
“사다는 기치조의 멱을 비틀어 쥔 채로 그의 물건 위에 올라탄다. 절정, 그건 사라지기 위해 나타나는 것인가! 급기야 기치조는 사다에게 마지막 부탁을 건넨다. “이왕 조를 거면, 멈추지 말아 줘, 끝까지 졸라.” 끝이 오기 전에 스스로 영원을 찾아 떠나는 이의 옆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윽고 기치조의 숨통이 끊어지자, 사다는 칼 한 자루를 꺼내 든다. ‘그래, 그는 내 것이야. 그의 것을 잘라 가질 거야. 내 안에 넣고 다닐 테야.’ 사다는 기치조의 성기를 잘라 품에 안는다. 사다와 기치조, 둘이서 영원히….”(‘30금 쌍담’ 중 ‘감각의 제국’ 훔쳐보기).
이 대목만 읽어도 영화 ‘감각의 제국’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 책의 ‘훔쳐보기’는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까지도 대화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이어지는 ‘씨네렉처’에서 이상용은 영화를 분석하고, 강신주는 인생 상담을 한다. 강의가 끝나면 ‘버킷리스트’가 나온다. ‘감각의 제국’ 버킷리스트는 ‘숙제 검사받지 마라’와 ‘마음에 들면 일단 자고 보자’다. 마지막에 ‘금기 도전자’로서 영화감독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네 편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강신주의 독설이 날아든다.
“(우리는) ‘30금 쌍담’을 통해 착한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싶었다. 타인들이 나쁘다고 했을 때에만, 우리의 행동은 타자의 이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된다. … 자신의 삶에 진짜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유쾌한지 불쾌한 일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금기에 연연하지 말고 직접 도전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눈치 보지 말고, 꾹꾹 참지 말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라’로 요약된다. 금기 도전자로서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제임스 네어모어가 쓴 ‘큐브릭’을 권한다. 저자는 ‘마지막 모더니스트’인 큐브릭과 ‘그로테스크 미학’으로서 그의 영화를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
이동준 편역/ 삼인/ 1200쪽/ 10만 원
지난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지만 현실에서 양국관계는 ‘정상화’와 거리가 멀다. 기타큐슈대 교수인 저자가 한일관계의 매듭을 풀기 위한 첫 작업으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전모를 담은 일본 정부 보고서를 번역했다. 이 보고서는 14년에 걸친 한일 간 협상이 끝나고 일본 외무성이 회담에 관여한 관료 19명을 동원해 2년 6개월에 걸쳐 만든 것으로 공식 기록과 회의록, 인터뷰 자료 등을 망라했다.
강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강철규 지음/ 사회평론/ 380쪽/ 1만8000원
진정한 발전이란 높은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자유, 생명, 신뢰, 재산권과 같은 기본적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제도, 조직, 리더십이라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경제학자이자 초대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강대국의 기틀을 만드는 법과 제도,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열린 조직, 신뢰와 법치가 가능한 리더십이라는 개념으로 대한민국 개조론을 말했다.
널뛰는 감정 날뛰는 생각
정연호 지음/ 지상사/ 254쪽/ 1만4900원
“너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할 때 억울한 ‘감정’과 잠을 못 자는 ‘증상’의 바탕에는 억울한 일로 여기는 ‘생각’이 있다. 마음병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생각지 않을 일을 ‘그렇게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한의사인 저자는 강박증, 불안증, 우울증 같은 마음병이 생기는 원인을 개인이 가진 ‘생각의 토양’에서 찾고 치유 방법을 제시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272쪽/ 1만5000원
차고술금(借古述今·옛일에서 빌려와 지금을 말한다)의 생각으로 매주 한 꼭지씩 7년을 써온 ‘네 글자의 성찰’을 책 한 권으로 엮었다. ‘건상유족’(褰裳濡足·옷자락을 걷고 발을 담그다)에서 마음 다스리는 법을 찾고, ‘시비이해’(是非利害·옳고 그름과 이로움과 해로움)의 두 가지 저울로 세상을 보는 법을 설명하며, ‘생사요법’(省事要法·일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내려놓기의 기쁨’에 대해 말한다.
대학의 미래
케빈 캐리 지음/ 공지민 옮김/ 지식의날개/ 328쪽/ 1만7000원
1997년 피터 드러커는 “30년 후 대규모 대학 캠퍼스는 유물이 될 것”이라 했고 19년이 지난 지금 그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고등교육정책 전문가인 저자가 ‘18년 후 내 딸은 대학에 갈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대학의 미래를 전망했다. 결론은 ‘우리가 알던 대학’은 더는 없지만,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열린 교육 덕에 ‘평생교육’ ‘개인별 맞춤형 교육’ 같은 신개념 고등교육이 대학의 기능을 대신할 것이다.
지구의 밥상
구정은 외 지음/ 글항아리/ 288쪽/ 1만4000원
인구의 94.5%가 비만이며 성인 대부분이 당뇨를 앓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 로컬푸드 없이 모든 식량을 수입하는 두바이, 걸프 부국의 온실로 전락한 에티오피아, 자동차가 없으면 장을 보러 갈 수 없는 미국의 ‘식품사막’, 원자력발전소 사고 지역을 돕기 위해 후쿠시마산 채소를 구매하는 일본 주부들, 백만 명이 굶주리는 영국 등 ‘밥상’을 통해 본 세계화의 현장.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이 6개월간 10개국을 탐사 보도한 내용이다.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
안경환 지음/ 라이프맵/ 428쪽/ 2만2000원
윌리엄 더글러스는 1939년 마흔 살에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돼 36년 7개월 동안 재직했다. “약자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라고 믿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썼고 네 차례 탄핵 위기를 맞으면서도 소신을 버리지 않은, 연방대법원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판사였다. 젊은 시절 그의 판결문에 매혹돼 진보법학자의 길을 걷게 된 저자가 쓴 평전.
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한길사/ 680쪽/ 1만4500원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로 시작한 소설은 한 남자가 겪는 어수선하고 피곤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자전적 이야기다. 단, 책을 잡기 전 심호흡이 필요하다. 1권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 총 6권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2009년 출간 이래 노르웨이에서 50만 부 이상 팔렸고 32개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힘은 일상과 디테일에 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