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소류급 디젤잠수함 ‘하쿠류’. 소류급 잠수함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이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6번함까지 실전배치돼 있다. 2013년 괌의 미 해군기지를 방문했을 당시 촬영된 사진이다.
호주의 차기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에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 독일의 티센 크루프 마린시스템스, 프랑스 국영기업 DCNS가 각각 참여해 3파전을 벌이고 있다. 호주는 11월 30일까지 이들로부터 최종 입찰서를 받고 내년 상반기 중 공동개발 파트너를 선정할 예정이다.
선봉에 선 방위장비청
일본은 현재 자국에 우호적이던 토니 애벗 호주 총리가 갑자기 낙마하면서 잠수함 수주전에 비상등이 켜졌다. 노골적으로 친일 성향을 보이던 애벗 전 총리는 최근 당대표 신임투표에서 맬컴 턴불 전 통신부 장관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턴불 신임 총리는 차기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와 관련해 자국 내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는 업체에게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 산업 보호 등을 이유로 사업자 선정 기준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4월 ‘무기 수출 3원칙’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대체하며 47년 만에 무기 수출의 족쇄를 푼 일본은 호주와의 밀월관계를 이용해 잠수함 수주를 진행해왔다. 호주가 사업자 선정 기준을 변경해 독일과 프랑스가 유리해지자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잠수함 수주전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먼저 구사카 스미오 호주 주재 일본대사는 일본 기업도 호주에서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이토 다카시 전 자위대 통합막료장을 수장으로 한 일본 대표단도 직접 남호주 애들레이드를 방문해 자신들의 구상을 피력했다. 일본 대표단은 호주 방산업체 ASC와의 협력 강화도 약속했다. 특히 일본 대표단은 잠수함 건조 기술을 제공하고 스텔스 기술을 이번 잠수함에 처음 적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다.
이번 잠수함 수주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은 10월 1일 새롭게 출범한 일본 방위장비청이다. 민간 공무원 1400명, 자위관 400명으로 구성된 방위장비청은 방위성의 외청으로, 우리의 방위사업청과 비슷하다. 방위성 전체 예산의 40%인 2조 엔(약 20조 원)을 집행하는 방위장비청은 무기 연구·개발·도입은 물론, 무기 수출이나 외국과 공동개발 등도 주도한다. 특히 대외협상 창구 기능을 맡고 무기 국제 공동개발과 수출 지원, 외국 방위산업 및 국방 기술과 관련한 정보 수집, 외국 연구기관과 제휴 등의 업무도 맡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방위장비청을 앞세워 앞으로 방위산업 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왔다. 호주 잠수함 수주가 방위장비청의 첫 번째 주요 목표가 된 배경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잠수함 건조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현재 4개 잠수함대(18척)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1년까지 6개 잠수함대(22척)로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잠수함들은 자국 내 최대 방산업체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이 교대로 건조해왔다. 일본의 주요 방산업체는 그동안 수출 금지에 묶여 자위대에만 납품해왔는데도 세계 100대 방산업체에 포함돼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선정한 2014년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는 미쓰비시 중공업(27위), 미쓰비시 전기(68위), 가와사키 중공업(75위), NEC(93위)가 들어 있다.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으로, 아베의 속내
일본이 호주에 수출하려는 잠수함은 소류급 디젤잠수함이다.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이 생산하는 소류급 디젤잠수함은 현재 6번함까지 실전배치돼 있으며,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한다. 수중배수량 4200t, 길이 84m, 너비 9.1m, 흘수 8.5m로 디젤잠수함으로는 세계 최대다. 한국과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보유한 214급(수중배수량 1799~1980t, 길이 65m, 너비 6.3m, 흘수 6m)보다 훨씬 크다. 65명이 승선하며 수중 속도는 최대 20노트. AIP를 탑재해 소음이 적고 잠행시간이 길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533mm 어뢰발사관 6문과 89식 어뢰, 하푼 잠대함 미사일, 기뢰 등을 탑재해 공격력도 탁월하다.
일본이 호주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을 비롯해 일본 방산업체들은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일본 방산업체들은 집단자위권 행사와 안보법 통과로 국방예산 증액이 기대되면서 앞으로 내수와 수출에서 급성장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특히 연간 4020억 달러(2013년 기준·약 480조 원)에 달하는 세계 방산시장을 넘보고 있다. 일본 재계 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이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할 것을 정부 측에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일본 정부가 가진 복안도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수출 증대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 일본 방산업체는 4600여 개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기 국제 공동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으로 관계가 더욱 밀접해진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과도 무기 개발 공동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개발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세계시장에 판매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해외 업체를 자위대 무기 개발에 끌어들이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방위성은 7월 육상자위대의 차기 다목적 헬기인 ‘UH-X’ 개발업체로 후지 중공업과 미국 벨 헬리콥터사를 선정한 바 있다. 현재는 양사가 공동개발한 민간용 헬기를 육상자위대용으로 개조해 배치한 뒤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또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자 관련 대학에 건당 3억 엔(약 28억 원)씩 연구비를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건당 지원 규모는 문부과학성의 과학연구비 보조금(건당 200만~300만 엔)을 크게 웃도는 수준. 방위성이 공모에 들어간 프로젝트는 ‘마하 5’ 이상 속도를 내는 항공기 엔진 기술, 로봇과 무인차량 영상인식 기술, 톱밥 등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기술 등 28개 분야다. 방위성이 대학에 연구프로젝트를 발주한 것은, 학계 연구 결과를 군사 분야는 물론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도록 유도한다는 아베 총리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일본이 이처럼 방위산업의 도약을 위해 잰걸음을 하는 동안, 한국의 방위산업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방산업체들의 ‘비리’ 사건이나 낮은 경쟁력이 연일 언론에 부각되면서, 일각에서는 굳이 방위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 방위산업 수출액은 2012년 23억5300만 달러, 2013년 34억1600만 달러, 2014년 36억1200만 달러(약 4조790억 원)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다 올해 들어 방산 비리 수사가 강력하게 진행되자 9월 말 기준 19억 달러(약 2조10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물론 수출이 부진한 것은 방산비리 수사 때문이 아니라 기술력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무엇보다 기술력이다.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산 시스템이다. 현재 국내 모든 방산업체는 정부가 필요한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를 제기하면 이를 받아 그대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개별 업체가 자체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품질을 향상해 판매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기술 개발에 대한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2015년 10월 20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 2015에서 참가자들이 방위산업 제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2013년 기준 국내 방산업체들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2.4%. 독과점도 문제다. 국내 방산업체는 대부분 주요 군사물자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한화테크윈은 자주포와 장갑차, LIG넥스원은 미사일과 레이더를 도맡아 생산한다. 경쟁이 없다 보니 기술 개발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방위산업의 제품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84~88% 수준이다. 기업과 정부 경쟁력은 77~80%로 더욱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국내 방위산업 수출 비중은 전체 생산액의 12.8%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선진국의 방산 수출 비중은 미국 15~23%, 영국 24~28%, 프랑스 23~35%, 독일 35~50% 등에 달한다. 특히 이스라엘은 생산액의 71~78%를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방위산업은 자칫 저가 공세에 나서는 세계 3위 무기 수출국 중국, 기술력과 글로벌 공동개발을 앞세운 일본에 밀려 경쟁력이 더욱 떨어질 공산이 크다. 방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R&D 방식에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책연구기관 주도의 R&D를 민간기업에 대폭 이양할 필요가 있다.
방위사업청의 대대적인 개혁도 중요하다. 가장 먼저 꼽히는 과제는 방위사업청의 민과 군 비율 문제다. 군 출신 인사를 줄이고 민간 전문가를 대거 영입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해외 무기 동향을 잘 아는 전문가를 각국에 주재하는 대사관 등에 파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현재는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해외에 파견한 국방무관이 방산 수출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상황이다.
주요 국가의 경우 방위산업 담당부서의 민간인 비중은 평균 70~80%를 넘는다. 한국도 글로벌 공동 연구 및 개발, 수출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외교부와 국방부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를 통합하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미국이나 유럽 등 방산 선진국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1대 수출할 경우 중형차 115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209급(수중배수량 1200t급) 잠수함 1척을 수출하면 중형차 1만8600대를 수출한 것과 비슷하다. 방위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