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전국 주택 매매가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내년부터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상승폭이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국 주택가격은 최근까지 꾸준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이 11월 발표한 지난달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 대비 매매가격은 0.33%, 전세가격은 0.42% 올랐고, 이는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매매가격은 3.36%, 전세가격은 4.74% 오른 수치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가운데 서울 강북지역(동대문구·성동구·광진구), 서울에 인접한 경기지역(고양 일산동구·안양 동안구)을 중심으로 상승폭이 컸고, 지방은 주요 상승 지역이던 대구(0.7%)와 제주(0.49%)에서 매수인 관망세가 확산되면서 전월 대비 상승폭이 둔화됐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되면서 계속 오르는 전세가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 위주로 집값 부담이 적은 중소형 주택 매수세가 형성되면서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전월과 동일한 상승폭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 의혹
하지만 아파트 분양시장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10월 말 발표한 전국 미분양주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주택은 전월 대비 2.6% 증가한 총 3만2524호로 집계됐다(표 참조). 지역별로는 편차를 보이는데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전월 대비 8.4% 감소한 1만4549호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방은 1만7975호로 전월 대비 13.7%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전국에서 미분양 물량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대구로 전월에 비해 881.8% 증가했고 다음으로 충남 52.3%, 광주 36.8%, 부산 19.9% 순이었다.
이 같은 지표는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경제연구소는 10월 말 내놓은 부동산시장 보고서에서 ‘올해 주택건설 인허가 물량이 70만 호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공급과잉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건설사들이 한정된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추가 공급을 서두르고 있는 만큼 공급 물량의 자율 조정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즉 건설사들이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부동산경기 호조세를 틈타 묵혀 놨던 택지에 아파트를 대거 공급한 탓에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발생하는 등 가격 조정 움직임이 보인다는 뜻이다.
공급과잉으로 지방 분양시장에는 실수요보다 투자 수요가 많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부산지역 분양권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공인중개사 김모 씨는 “아파트 분양 본보기집에 가보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보다 표준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 얘기를 들어보면 서울이나 경기도에선 10억 원이면 1채 분양받고 많아야 5% 프리미엄이 붙는데, 부산에서는 같은 돈이면 2~3채를 분양받을 수 있고 프리미엄도 10%까지 붙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여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부동산공인중개사 신모 씨도 “굵직한 회사가 많은 대구나 창원에 거주하는, 투자 여력 있는 아파트 매입 희망자들이 부산지역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미분양이 급증한 대구에서는 고점을 찍었다며 아파트를 내놓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대구 달서구의 공급면적 178.5㎡ 아파트에 거주하던 70대 이모 씨는 최근 집을 팔았다. 자녀가 모두 분가한 뒤 남편과 단둘이 살기에 집이 너무 커 청소하기도 벅차던 차에 건설회사에 다니는 첫째 사위가 집을 팔라고 조언한 것. 이씨의 아파트는 2년 사이 1억 원이 올랐는데 이에 대해 사위는 “대구지역 아파트값이 몇 년 사이 급등한 것은 서울의 돈 있는 이들이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라며 “최근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현금도 대구지역 떴다방에서 벌어들인 돈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 투자 수요이기 때문에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이씨의 집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렸고, 그는 105.8㎡ 아파트 전세로 들어가 시장을 관망한 뒤 값이 내리는 시점에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결정했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최모 씨도 같은 이유로 최근 집을 내놓았다. 최씨는 주말부부인 데다 20대 딸이 취업하면서 분가한 뒤로 170㎡ 아파트에서 거의 홀로 지내는데, 최근 집값이 급격히 오른 틈을 타 집을 팔고 중소형 아파트로 옮겨갈 계획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씨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해당 평형은 지난해 3월 5억5000만 원에 거래된 이후 올해 9월에는 역대 최고가인 8억9900만 원에 팔렸다. 이 같은 가격 오름세에 대해 최씨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올랐기 때문에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지 않다. 조만간 가격이 떨어질 듯하다”며 올랐을 때 팔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가격 상승 흐름은 차이가 있다. 지방의 경우 수도권과 다르게 2000년대 중반까지 가격 상승세가 미미했지만 2010년 이후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특히 대구와 광주 등은 최근 3년간 매매가격이 각각 연평균 13.4%, 9.7% 상승해 과열 우려도 제기됐다.
은행권 집단대출 점검 나선 금융당국
이 같은 상승세의 배경에는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과 저금리 등 여러 이유 외에 가계의 주택구매능력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이 10월 내놓은 ‘최근 주택경기 회복의 배경’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월평균 가구소득 430만 원과 평균 순금융자산 9200만 원 규모를 가진 가계가 월소득 25%를 원리금 상환에 충당한다고 계획할 경우 구매할 수 있는 주택가격 수준은 약 2억9000만 원인 것으로 계산된다. 전국 기준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2억7000만 원으로 우리나라 평균 가계는 전국 기준 평균 아파트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셈이다. 지방의 경우 이들이 2010년 이후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주택구매능력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는 데 비해 아파트가격 상승세는 가파른 수준이기 때문에 부동산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구소득과 금융자산 증가는 빠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공급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내년 이후 주택경기의 활력도 다소 약화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과열된 아파트 분양시장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하고자 금융당국도 직접 점검에 나섰다. 10월 28일부터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을 대상으로 집단대출에 대한 건전성 심사를 벌인 데 이어 일주일 뒤 KB국민은행에 대해서도 종합검사를 실시하며 집단대출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은행들이 집단대출 시 심사를 제대로 했는지,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금감원이 은행권 집단대출을 점검하는 데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과 재건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 등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대출이다. 분양 물량을 계약하는 사람은 최초 계약금 외 중도금을 납부할 때, 입주 시점 잔금을 납부할 때 집단대출을 이용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적용되지 않고 대출금리도 개별적으로 받는 것보다 저렴한 편이라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대출 규모는 최근 빠르게 늘었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72조7898억 원으로 전월 대비 1조6444억 원,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조5639억 원 늘었다. NH농협·기업은행 등을 포함한 6대 시중은행의 9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 331조8844억 원 가운데 아파트 분양 중도금 및 잔금 대출, 이주비 대출 등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금액은 1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은행권 집단대출 점검에 따라 건설사 분양계획에 차질이 우려되고 업계 반발이 이어지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1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금융당국이 점검에 나선 건 집단대출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스크 관리를 위한 컨설팅 차원”이라며 “규제 신설 계획은 없다. 은행 스스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사업성을 면밀히 평가해 대출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강화된 집단대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단대출은 건설사의 신용과 분양 당첨자의 신용을 토대로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신용대출로, 주택담보 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경기가 꺾이고 분양 포기자가 발생할 경우 (분쟁의 원인이 되는) 악성 미분양이 쌓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둔 2007년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식으로 물량을 쏟아낼 당시 분양받았던 계약자들이 금융위기 이후 분양가가 매매가보다 낮아지자 분양가격 조정을 요구하며 입주를 거부하는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러면서 당시 집단대출 연체율이 3%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거래량 감소 후 급매물 쏟아질 것
10월 말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점검에 나선 것과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집단대출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스크 관리를 위한 컨설팅 차원”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올리는 추세다. KB국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를 9월 2.63~3.94%로 올린 데 이어 10월에는 2.84~4.15%로 인상했고, 우리은행도 9월 2.65~4.24%, 10월 2.94~4.53%로 각각 올렸다. 정부도 내년부터 가계부채 관리에 직접 나설 전망이다. 11월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부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한도 결정 시 ‘스트레스 금리’, 즉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까지 기존 변동금리에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DTI 규제도 강화돼 대출받기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장에 즉각 반영될 공산이 크다. 고종완 원장은 “규제완화 조치로 투자용 부동산인 오피스텔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 70%까지 대출받아 매입하는 이도 많았다. 규제가 강화되면 오피스텔이나 상가, 상업용 부동산,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 등에 투자한 이들은 타격을 받게 된다. 그 여파로 내년부터 부동산가격 상승폭은 올해에 비해 둔화되고, 상승폭이 컸던 지방의 경우 내년 이후에는 하락세로 돌아설 개연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내년 부동산시장은 올해 같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지난해 8월부터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이가 늘었다. 내년부터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대출금리가 오르면 빚을 쉽게 낼 사람이 자연히 줄어들어 투자 수요도 사라질 것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주택거래량이 감소하고, 버티는 기간(대출을 견디는 기간)이 지난 뒤 급매물이 쏟아지면 주택매매가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부동산 매입을 추진한 이가 많았던 점에 대해 선 소장은 “일차적 책임은 개인이 아닌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언제까지나 부동산시장을 떠받쳐줄 것처럼 각종 정책과 규제 완화 조치를 쏟아낸 것이 문제다. 임기 안에 성과를 보려 했던 이들의 정치적 욕심이 지금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셈이다. 그 파장은 내년이면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