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꽃과 싹눈.
자식을 위한 특별한 생존 전략
그 특별한 생존 전략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보통 달래 하면 봄나물인 줄 알지만, 달래는 한 해 두 번 자란다. 봄에 자라고 여름에는 잎이 졌다, 가을에 다시 잎이 돋아 ‘나 여기 있소!’ 한다. 달래만의 지혜라고 할까. 달래잎은 가늘고 여리기 짝이 없다. 그나마 한두 장. 이 상태로는 다른 풀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넓적한 잎과 큰 키, 그리고 왕성한 곁가지를 갖는 풀이 얼마나 많나.
그러니 달래는 다른 풀이 미처 뻗어가지 않을 이른 봄에 얼른 잎을 내밀어 생장과 1차 번식을 한다. 온갖 풀이 왕성하게 자라는 여름에는 잎을 말려 쉰다. 그러다 그동안 왕성했던 풀들이 시들어 말라가는 늦여름부터 다시 슬그머니 싹을 내밀고 두 번째 생장을 한다.
달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을 파보면 동글동글 달걀 모양의 비늘줄기가 있고, 이 비늘줄기에 하얀 수염뿌리가 길게 뻗어 있다. 이 비늘줄기와 뿌리는 추위에 아주 강하다. 영하 20도에도 얼어 죽지 않는다. 우리 땅에 잘 맞는 작물이다.
그럼, 달래는 어떻게 번식을 할까. 가장 확실하게는 땅속 어미 비늘줄기 곁에 새끼 비늘줄기를 만들어 키운다. 어미 비늘줄기를 모구(母球), 새끼 비늘줄기를 자구(子球)라 한다. 충실한 어미들은 3월 중순 정도면 땅속에 새끼 달래를 두어 개씩 키운다.
하지만 어미가 자식을 옆구리에 끼고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좁은 땅을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니 자식을 여럿 둘 수 없다. 달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식을 남긴다. 지상부에 길게 꽃줄기를 올려 그 끝에 싹눈(主芽)을 만든다. 싹눈이란 2차 비늘줄기를 말한다. 그 모양새는 글자 그대로 구슬 같은 눈이다. 싹눈이 다 자라면 긴 꽃줄기가 시나브로 땅으로 기울어 거기서 새로운 달래가 자라기 시작한다.
꽃줄기 끝에서도 길게 자라는 달래 싹눈. 달래는 뿌리째 다 먹을 수 있다. 새끼를 멀리 보내고자 기다랗게 자라는 달래 꽃줄기(왼쪽부터).
달래는 꽃도 피운다. 역시나 꽃줄기 끝에서 6월 초부터 한 달가량 핀다. 달래꽃은 작지만 보랏빛이 섞여 참 단아하고 예쁘다. 가끔 곤충도 날아들어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그런데 나는 이 꽃을 10여 년 보아왔지만 아직까지 씨앗이 맺은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왜 꽃을 피울까. 생물학에서는 예기치 않는 환경 변화에 대한 진화적인 몸부림이라고 설명한다. 자구는 확실한 번식이요, 싹눈은 덤이며, 꽃은 만일에 대비한 훈련과정이랄까.
달래 덕에 혀, 코, 눈이 즐겁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제대로 설명이 다 안 되는 거 같다. 하나의 꽃줄기 끝에 싹눈만 달리기도 하지만 싹눈과 더불어 꽃을 피울 때도 많다. 때로는 두어 송이, 때로는 수십 송이. 씨앗도 맺지 않으면서 싹눈 틈을 비집고 지극정성으로 꽃을 피운다. 이런 달래 속을 누가 알리요. 사람 처지에 빗대 추측해보자면 비늘줄기와 싹눈으로 자신을 그대로 빼닮은 자식을 여럿 남기는 달래로서는 크게 아쉬울 게 없지 싶다. 어쩌면 달래는 꽃을 피우는 연애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달래가 가진 재주 덕에 우리 사람은 행복을 누린다. 달래가 좁은 땅에서도 번식을 잘하니 사람은 잘 먹을 수 있어 좋다. 비늘줄기는 물론 긴 뿌리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다. 향은 또 얼마나 은은하고 깊은가. 여기다 덤으로 고운 꽃까지 보게 해주니 말이다. 재주 많고 지혜로운 달래 덕에 우리 사람은 혀와 코와 눈이 다 즐겁다.
향기롭고 맛난 달래 주먹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