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의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높이 2.4m, 기원전 150~기원전 50년께, 로마 바티칸미술관 소장.
이처럼 그리스군이 고전을 면치 못할 때 누군가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병사들을 숨긴 채 트로이 성문을 통과하자는 책략을 내놓습니다. 당시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이러한 그리스군의 계획을 간파하고 트로이 사람들에게 절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늘에서 이 상황을 내려다본 신들은 라오콘 때문에 트로이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이 좌절될까 봐 바다에서 거대한 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공격하게 합니다. 라오콘이 죽자 목마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고 트로이는 함락됩니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신화 속 이야기로만 남을 뻔한 트로이는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로 실재했음이 밝혀집니다.
라오콘의 최후를 묘사한 이 조각 작품은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어떤 회화와 조각보다 뛰어난 작품’이라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실물은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1506년 로마의 한 농부가 포도밭을 파다 우연히 발견했고, 발굴 당시 사라졌던 오른팔이 1905년 로마의 한 석공 작업장에서 발견돼 그로부터 한참 뒤 현재 모습과 같이 복원됩니다.
이 작품 중앙에는 라오콘이 있고 양쪽에 그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두 아들은 다 큰 성인임에도 라오콘에 비해 눈에 띄게 작습니다. 고구려 벽화처럼 고대미술에서는 중심인물을 크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며 온몸을 비트는 라오콘과 아들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들을 친친 감고 있는 뱀이 얼마나 거대한지 오른쪽에 있는 아들 다리를 타고 올라와 라오콘과 왼쪽 아들 다리를 동시에 휘감고, 왼쪽 아들 팔을 다시 한 번 휘감은 뒤 라오콘의 뒤로 돌아 라오콘의 옆구리를 물고 있습니다. 라오콘은 왼손으로 뱀의 머리 가까이를 잡고 오른팔을 위로 든 채 몸을 뒤로 젖히고 있습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꺾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고통과 공포 그 자체입니다. 뱀이 두 다리를 감아버린 왼쪽 아들은 안간힘을 쓰며 벗어나려 하지만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른쪽 아들은 자신의 발목을 휘감은 뱀의 꼬리 부분을 떼어내려 하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조각 작품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표정과 동작에 담았습니다. 비록 고통받고 죽어가는 모습이지만 라오콘 삼부자의 육체는 아름답습니다. 인간 신체를 중요하게 여긴 그리스 미술답게 완벽한 근육질로 묘사돼 있습니다. 2000년 전 신화 속 이야기를 두 눈으로 확인케 해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