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점에서 수거되는 빈 병은 회수용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주류회사로 옮겨진다. 환경부에 따르면 음식점에서 반환되는 빈 병의 경우 양호한 상태로 거의 전량 회수된다.
내 이름은 ‘빈 병’입니다. 어느 유리공장에서 태어났어요. 모래, 소다회, 석회석, 그리고 깨진 유리가 내 몸을 이루고 있지요. 깨진 유리는 나보다 먼저 부서진 내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평생 재활용되기 위한 존재들이거든요. 여러 재료가 용해로에 모여 1600도 온도에서 가열되면 끈적끈적한 유리물이 됩니다. 그리고 병을 만드는 틀에서 몇 시간 동안 잠을 자지요. 틀 밖으로 나오니 나는 예쁜 소주병이 돼 있더군요. 그리고 주류회사로 옮겨졌습니다. 내 몸은 투명한 술로 채워졌고 머리엔 뚜껑도 씌워졌어요. 그동안 네 번 재사용됐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 뚜껑이네요. 한국에선 빈 병이 평균 8회 재사용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쓰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술을 담아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요.
한 해 49억 병, 이동 중 다수가 깨져
빈 병인 나에게도 ‘몸값’이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빈 병 보증금’이라 부르지요. 소주병(360ml 기준)은 40원, 맥주병(500ml 기준)은 50원이에요. 음식점이나 가정에서 나온 빈 병을 슈퍼마켓이나 도매점에 반환하면 이 돈을 받아요.
그런데 요즘 내 몸값이 화제인가 봅니다. 환경부가 9월 3일 ‘빈용기보증금 및 취급수수료 인상안’을 입법 예고했거든요. 빈 병 보증금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같았는데 소주병은 100원으로, 맥주병은 130원으로 인상한다고 해요. 이 법안은 2016년 1월 21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환경부는 21년 동안 동결했던 빈 병 보증금을 왜 올린다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재사용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보증금을 올리면 개인이 소매점에 빈 병을 반환하는 비율이 높아질 테고, 그래야 빈 병이 덜 깨져 오래 쓸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쓰레기장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깨진 우리 친구들을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어떻게 쓰이고 반환되고 다시 태어나는지 좀 더 설명해볼게요.
2014년 국내에서 출고된 소주·맥주병은 49억4000만 병. 이 중 31억6000만 병이 음식점에서, 17억8000만 병이 가정에서 소비됐어요. 가정에서 소비된 경우 개인이 빈 병을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 반환하는 경우는 24.2%에 불과합니다. 빈 병 보증금이 높지 않을뿐더러 무거운 우리를 운반하기도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소비자는 대부분 가정에서 나온 빈 병을 분리수거함에 넣죠. 그러면 공병상이 수집해 고물상이나 도매점 또는 제조사에 반환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공병상이 반환하는 빈 병의 17%는 정상 품질이 아니어서 재사용할 수 없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분리수거함에 던질 때 이미 상처가 납니다. 공병상이 마대에 빈 병을 가득 넣어 운반할 때도 금이 가지요. 나도 며칠 동안 분리수거함 안에 있을 때 날아오는 유리병에 여러 번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내 몸에도 얇은 균열이 있어요.
음식점에서 반환될 때는 안전하게 이동해 큰 문제가 없답니다. 빈 병 회수용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지거든요. 주류 도매상이 음식점에 새 술을 배달하고 우리를 트럭에 실어 주류회사로 돌아가지요. 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플라스틱 상자가 아닌 종이상자나 비닐봉지에 20~30개씩 담겨 이동하기도 합니다. 어느 비 온 날에는 종이상자가 젖어 우리가 한꺼번에 상자 밖으로 쏟아졌답니다. 운전사는 화를 내면서 우리를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던졌지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친구가 다치고 깨졌습니다.
주류회사로 반환되면 기계로 안전성 검사를 받습니다. 특히 주둥이에 흠집이 나기 쉬우므로 이 부분을 꼼꼼하게 확인받아요. 그리고 세척기에 돌려집니다. 재사용 허가를 받은 빈 병은 새로운 술로 채워집니다. 허가를 받지 못하면 우리가 태어난 유리공장으로 돌아가지요. 이곳에서 우리는 무참히 깨지고 다른 재료와 섞여 새로운 유리병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순환 과정이에요.
보증금 몇 푼으로 안전 반환?
환경부는 빈 병 보증금을 올리면 개인의 빈 병 반환율이 늘어나 우리가 더 안전한 상태로 회수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반환한 빈 병의 파쇄율은 2%에 불과해 상태가 양호한 편이거든요. 현재 빈 병의 재사용률은 전체 생산량의 85%인데, 95%까지 올라가면 주류업체가 451억 원의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환경부는 ‘보증금 회수는 소비자 권리’라는 인식을 확산해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고 자원도 절약하겠다는 계획이에요. 해외 선진국에서는 빈 병이 평균 20회 재사용되는데, 현재 국내 수준(8회)을 그만큼 끌어 올리자는 것이지요.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이 정책에 대해 주류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해요. 한국주류산업협회(주류협회)는 10월 22일 환경부에 ‘빈용기보증금 및 취급수수료 인상안’ 철회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류협회는 주류 가격 인상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시행되면 우리의 ‘취급수수료’도 올라갈 예정이거든요. 취급수수료란 제조원가에 포함되는 것으로, 제조사가 도매점이나 음식점으로부터 빈 병을 회수할 때 지불하는 금액입니다. 소주병은 16원에서 33원으로 106%, 맥주병은 19원에서 33원으로 74% 오를 예정인데요. 이렇게 되면 소주 출고가는 1002원에서 1097원으로 9.5%, 맥주는 1129원에서 1239원으로 9.7%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주류협회는 “식당의 경우 보증금 인상 등을 이유로 지금보다 500~1000원 비싸게 판매할 수 있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이번 인상안이 국산 주류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수입 주류 가격이 꾸준히 낮아지는 상황에서 국산 주류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국산 소주와 맥주를 더욱 외면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수입 주류 빈 병은 해외까지 반환하는 물류비용이 커 재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 정책은 국산 주류에만 해당합니다. 게다가 분리수거정책이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증금을 몇십 원 올린다고 소비자들이 빈 병을 대형마트까지 들고 가는 습관을 들이지는 않아 정책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환경부는 “보증금 인상분만큼 주류 가격이 오르기는 하겠지만, 이는 빈 병을 반납하면 환불받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기존과 달라진 점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보증금 인상 때문에 식당에서 주류를 500~1000원씩 더 비싸게 판매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업소용의 경우 거의 전량 회수되고 있어 보증금 인상과 주류 가격 변동은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있어요.

‘빈 병 사재기’ 발생 혼란도
환경부의 이번 정책으로 각종 혼란도 일어나고 있어요. 최근 ‘병파라치’라 부르는 사람들이 빈 병을 사재기해 쓰레기장에서 빈 병이 줄었다고 합니다. 빈 병을 대량으로 모아뒀다 내년 보증금이 오르면 현 보증금보다 비싸게 받고 반환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데요. 주류협회에 따르면 9월 3일 입법 예고한 후 빈 병 반환율이 10~20% 줄어들어 일부 주류업체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상되는 보증금은 내년 1월 21일 이후 판매되는 병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빈 병 사재기는 효익이 없습니다. 환경부는 “법 시행일 전 구매한 병은 헌 병 보증금이 지급되고, 차익을 위해 헌 병을 새 병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나 폭리를 목적으로 빈 용기 반환을 기피하면 관련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주류업계는 “매일 약 2000만 개의 빈 병이 제조사로 회수되는데 헌 병과 새 병을 일일이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며 환경부의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환경부와 주류업계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빈 병 재사용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 걸까요. 먼저 우리가 버려지고 회수되는 과정이 안전하면 재사용률은 훨씬 높아질 텐데요. 공병상은 우리를 고물상에 가져다줘도 “어차피 일부 파손된 것”이라는 이유로 보증금을 100%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를 더 거칠게 다루기도 하고요. 소비자도 우리를 깨끗하게 다뤄줬으면 합니다. 빈 병에 담뱃재, 오물, 휴지를 넣으면 빼기 정말 힘들거든요. 분리수거함에 대충 던져 넣으면 우리는 깨질 수밖에 없어요. 환경보호와 자원 절약, 좋은 목표예요. 하지만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운반되는 상황에서 보증금 약간 올린다고 우리가 더 귀하게 다뤄질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다시 주류 제조사로 되돌아왔네요. 그동안 균열이 온몸에 퍼져 곧 부서질 것 같았는데, 기계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나도 세상과 작별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태어난 유리공장으로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용해로 너머로 다른 회사에서 온 소주병들이 보이네요. 우리는 재사용되기 위해 규격이 표준화돼 있어 담는 술도, 붙이는 스티커도 여러 번 바뀌거든요. 나도 매번 다른 라벨을 붙이는 등 여러 브랜드의 소주병으로 사용됐으니까요. 내 몸은 이제 깨어지고 다른 친구들의 몸과 섞여 새로운 빈 병으로 태어나겠지요. 또래 친구들은 8회 정도 쓰였는데, 나는 횟수의 절반을 이제 겨우 넘겨 아쉽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덜 험하게 다뤄지고 오래 쓰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