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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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한 반복 연습과 준비

성공적인 의전 수행법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gmail.com

    입력2015-10-19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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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단한 반복 연습과 준비

    4월 박근혜 대통령 중남미 4개국 순방 당시 칠레의 의전 모습.

    ‘의전’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 간의 공식의례에 통용되는 예법’이다. 의전은 권력의 배분 상태와 상하관계를 드러내고 이를 재확인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여기에는 국기, 국가원수, 서열, 국제회의, 축의와 조의, 상훈 등의 하위 요소가 뒤따르며, 정부기관에는 의전과 관련한 별도의 텍스트가 있어 업무 관련자가 이를 학습해오고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뿐 아니라 격식과 절차를 갖춘 다양한 조직이 의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의전은 그저 행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향후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질서가 마련된다는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의전 업무 담당자들은 내외 귀빈들이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의 문제 하나를 놓고도 머리를 싸맨다. 이러한 의전 업무에 활용할 만한 군사작전의 원칙이 바로 ‘계획수립의 일반원칙’이다.

    의전 업무의 기본 정의와 환경을 고려해볼 때 의전에서 중요한 최우선 과제는 철저한 계획수립이다. 따라서 계획수립의 일반원칙을 참조한다면 복잡하고 생소한 의전 업무의 실타래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대응하며 계획수립

    먼저 이 계획수립의 일반원칙을 다루고 있는 가장 상위 교범인 미 육군 교육회장 5-0, ‘작전 절차(The Operations Process)’(2012)를 보자. 교육회장(Reference Publication)이란 ‘참고서’다. 야전교범의 하위에 있는 교범으로, 현재 연구 중이지만 중요해 미리 야전에 알릴 필요가 있는 내용이나, 알아두면 좋지만 야전교범에 담을 정도로까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작전 절차’는 전자에 해당하는데, 말하자면 군인들의 ‘국·영·수’와 같은 것이다. 분대장급 이상 리더는 모두 이를 교과서로 사용해 학습하고 평가받는다. ‘작전 절차’ 이론과 실습 과목에서 합격하지 않으면 진급하기 힘들다. ‘작전 절차’에서는 계획수립의 일반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일반원칙은 ‘지휘관을 중심으로 수립한다’이다. 지휘관을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계획에 지휘관 의도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지휘관 자신이 작전 이론과 실제에 가장 정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6·25전쟁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결사반대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이들을 일본 도쿄로 초청해 직접 설득에 나섰다. 그는 인류사에 결정적이었던 전투 20개 장면을 사례로 들고 인천에 상륙해야 하는 전술적, 작전적, 전략적 타당성을 약 45분 동안 설파함으로써 두 참모총장을 감복게 했다. 이처럼 지휘관이 많이 알수록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가시화할 수 있으며, 명확하고 가시화된 지휘관 의도는 전쟁의 안개를 헤쳐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된다.

    둘째는 ‘계획수립이 지속적 과정이라는 것’을 항시 염두에 두는 것이다. 계획수립에는 완성이 없다. 완벽한 계획은 없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 변화하는 상황을 주시하고 이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들은 10년 넘게 발전시켜온 작전계획을 맹신했다. 그리고 그 맹신은 처참한 시행착오를 낳았다. 적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곳으로 주력부대를 보냈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우회했다. 단지 작전계획에 그렇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계속 보완, 재수립되지 않는 계획은 적이 심어놓은 스파이보다 더 무섭게 돌변한다.

    셋째는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구상하라’이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구상했다는 살수대첩의 작전개념은 대담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수적 열세를 극복한 대표적 사례다. 청천강의 물을 둑으로 막았다 수나라 군대가 지나갈 때 터뜨려 기동을 방해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1400년 전 작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새삼 기발하다. 그런데 강물을 이용한다는 을지문덕 장군의 아이디어는 그가 해당 지형의 특징을 잘 알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부단한 반복 연습과 준비

    미 육군 교육회장 5-0, ‘작전 절차(The Operations Process)’(201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 패튼 장군의 일화도 이와 유사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마주한 패튼 장군은 지체 없이 신속하게 강을 건너 공격한다면 적을 심리적, 물리적으로 기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다른 장교들은 강이 너무 깊고 유속이 빨라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패튼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내 바지를 보게. 허벅지까지 젖어 있지? 지금 내가 중간까지 건너갔다 왔어. 안 깊어. 공격해.” 결과는 대승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계획수립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실제 의전 업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뽑아봤다. 첫째는 리더의 준비된 의전은 더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리더가 직접 고민한 만큼 정성을 쏟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필자는 펜타곤과 워싱턴사령부 등지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미군 장군들이 의전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수도 없이 순서지를 확인하고 거울에 복장을 비춰보며 인사말을 쓴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연습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참석자는 물론 배우자 이름까지 외우려고 애썼다. 시간이 부족하면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럴 시간조차 없으면 중간에 메모지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하기도 했다. 미국 측 주요 인사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중한 언행, 감동을 자아내는 세심한 배려는 부단한 반복 연습과 준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준비된 의전이 주는 감동

    둘째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대처하라는 것이다. 오래전 들은 일화다. 아시아 국가의 A장군이 하와이에 있는 미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했다. A장군은 공항 도착부터 회의 참석, 일과 후 시내관광까지 사령부 대외협력장교의 세심한 준비에 적잖이 감동받았다. 귀국을 앞둔 A장군은 그동안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물어봤다. “태평양사령부 근무복장은 원래 전투복인가요? 사령부 복장 기준은 근무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자 대외협력장교가 대답했다. “A장군께서 아침에 전투복을 입고 호텔에서 나오시기에 사령부에 연락해 전 인원이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겁니다.” 깜짝 놀란 A장군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그냥 근무복을 안 가져와서 이걸 입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외협력장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장군님이 저희 사령부에 귀빈으로 오신 이상 사령부의 기준은 장군님이죠. 복장을 통일하면 유대감도 깊어지고요.” A장군이 귀국한 이후 양국 간 군사협력이 더 긴밀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셋째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반드시 중간에 ‘잠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래전 연례적으로 실시해온 한미 간 회의 실무를 맡은 적이 있다. 양국에서 번갈아 실시하는 이 회의는 두꺼운 바인더로 된 참고 매뉴얼이 있어서 최초 연락부터 식당 예약까지 명시된 지침을 그대로 따르면 됐다. 그런데 준비 도중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일환으로 8년 넘게 고정돼 있던 식당과 메뉴를 바꾸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스운 참극이 벌어졌다. 우리는 정통 불고기를 취급하는 한국식 기와집 형태의 식당을 선택했는데 미국 측 참석자의 80% 이상이 자리에 앉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앉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양반다리는 일종의 요가자세였다. 급한 대로 방석을 20개씩 쌓아줬지만 모양새가 너무 우스워 식사 내내 서로 민망했다. 만일 누군가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며 문제점이 없는지 확인했더라면, 현장에 직접 가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꼼꼼함이 있었더라면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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