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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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내부자료 해킹 모습 드러낸 ‘게임의 속살’

김관진-한민구 알력, 韓·美 군 당국 갈등, 비선 보고와 인사 개입?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10-19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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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내부자료 해킹 모습 드러낸 ‘게임의 속살’

    4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 접견을 앞두고 배석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폭탄이 떨어졌지만 아무도 폭탄이라 말하지 못하는 형국.’ 10월 중순 한 안보당국 관계자가 남긴 촌평이다. 10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종합감사장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해킹 문건’ 사건이 남긴 파장. 지난해 원전반대단체 ‘WhoAmI?’가 정부 주요 기관을 해킹해 확보한 국방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 관련 문서가 뒤늦게 공개되면서 관련 부처 핵심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측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발 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지만, 군 당국 주변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개된 문건 가운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크게 세 가지. 익명의 필자가 지난해 7월 김관진 실장을 수신인으로 작성한 ‘편지’라는 파일명의 메모가 첫 번째다. ‘상황이 급하니 표현이 거칠더라도 용서하십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위기의식 속에서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로 끝나는 이 메모는, 당시 군 내부에서 은밀히 도마에 올랐던 몇몇 사건을 거론하며 ‘실장님의 용퇴설이 확산될 것 같다’는 우려를 전한다.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의 주요 직위와 하마평에 오른 주요 군 지휘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기회주의적인 속성’ ‘업무에 천착하지 못한 것 같다’ ‘빨리 교체하는 것이 좋다’ 같은 표현으로 사실상 인사 문제를 조언하는 내용이다.

    ‘방사’라는 파일명의 두 번째 문서는 아예 ‘방사청장 VIP 두터운 신뢰, 국방장관은 계파 갈등’이라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작성자와 수신인이 모두 명확지 않은 문서는 전형적인 개조식 정보보고서 형식으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과 영관급 장교 인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지난해 12월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장 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어려운 점이 있거나 국방부와의 업무 협의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언제든 전화하라고 격려했다는 게 주요 골자. 이와 함께 당시 진행된 국방부 인사와 관련해 ‘○○는 ○○○의 인맥’이라는 요구를 한민구 장관이 수용했다며 한 장관의 우유부단함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도 선정적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을 옮기는 사람들”



    가장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세 번째 문서의 파일명은 ‘NIS’(국가정보원의 영문 약칭). 2011년 8월 진행된 한미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관련해 작성된 이 문서는, 연습 기간 중 진행된 북한의 포격 도발 대응 시나리오에서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군의 신중한 대응’을 요청하며 ‘자위권 적용에 있어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적고 있다. 한국군의 적극적 대응으로 긴장이 고조될 것을 우려해 한국군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

    이와 함께 문서는 ‘미 본토로부터의 증원 전력 전개는 소홀히 진행된 반면 미군 측은 한국 내 미국인들의 철수작전에만 관심을 집중했다’며,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반격이 진행되는 시나리오 중에도 미국은 당초 설정된 공격작전 대신 ‘영변지역 핵시설에 미군의 주전력을 집중해 핵시설 제거·반출·통제에만 중점을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한국군 합참의장이 두 차례에 걸쳐 연합사령관의 관심을 촉구했지만 지속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 이와 함께 북한 지역을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네 나라가 분할해 통제하는 방안을 중국 측이 제안해왔다는 설정 하에 이를 함께 논의하자는 미군 측 요청이 있었다는 내용도 상세히 담겨 있다.

    이들 문서가 안보당국 내부 관계자의 개인용 컴퓨터(PC)나 e메일 계정에서 해킹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은 청와대와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등 주요 기관이 모두 인정하는 바다. 상당수 문서에서 김관진 실장이 수신인이나 발신인으로 돼 있고 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 직함이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김 실장을 오랜 기간 수행해온 측근 인사가 보관 중이던 자료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 특히 김 실장에게 은밀히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담기 어려운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이 외부 비공식라인으로부터 인사 문제나 군 내부 동향에 대한 의견을 상시적으로 청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에 충분했다는 뜻이다.

    국방부 내부자료 해킹 모습 드러낸 ‘게임의 속살’

    19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정작 정부 관계자들은 이들 문서의 파괴력이 날카로웠던 이유를 그간 ‘공공연한 비밀’에 가까웠던 김 실장과 한 장관 사이의 알력을 시사하는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군 당국 주변에서 ‘안보실이 옥상옥(屋上屋) 노릇을 하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사안의 민감성 탓에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다는 것. 이를테면 그동안 굳게 잠겨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해킹 문서를 계기로 열리면서 설왕설래로만 이어지던 내용이 공개석상으로 떠오른 셈이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한목소리로 파장 최소화에 나선 것 역시 사안의 민감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측은 “김 실장은 해당 문서를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한민구 장관 역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실장과 저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라며 “주변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말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는 게 참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10일을 전후해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시점이다 보니, 국민에게 안보당국의 양대 핵심축이 알력을 빚고 있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정무적 판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안도 실패, 대응도 실패

    그러나 양측의 발 빠른 행보에도 후폭풍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보당국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에 생채기를 낼 공산이 크다는 점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반복된 인사 패턴을 통해 박 대통령은 군 내부에서 뒷말이나 자리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해킹 문서로 입길에 오른 안보당국 내부의 긴장관계가 결국 수뇌부 모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10월 중순 대통령 방미에 동행하는 한민구 장관이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 기술 도입 문제와 관련해 미 국방부 측과 ‘마지막 담판’을 벌일 것이라는 소식이 일제히 전해진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마저 나온다.

    민감한 내용의 문서가 해킹된 사실 자체도 문제지만, 국방부와 청와대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한계가 분명했다는 비판 역시 만만치 않다. 당초 국방부 측은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공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지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과의 사전협의를 통해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조율을 끝냈다며 낙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핵심 직책을 역임한 한 전직 인사의 말이다.

    “정부 부처 사이에도 긴장이 있을 수 있다. 들여다보면 어디나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가 수뇌부 측근들을 통해 옮겨지다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사실이며, 미리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야말로 안보당국 책임자들이 이들 문서를 진짜 보고받았는지 여부보다 더 곤란한 부분 아니겠나. 한창 연말 개각설이 떠도는 시점에서 이번 불씨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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