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극 중 피어슨(패터슨) 역을 맡은 배우 장근석.
생전의 조중필 씨 모습.
용의자 두 명 모두 무죄 혹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면서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은 용의자인 패터슨이 9월 23일 국내로 송환되며 새 국면을 맞았다. 패터슨은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 심리로 열린 10월 8일 첫 공판에서 자신은 무고하다며 리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담당 형사는 사망, 담당 검사는 사직
검찰은 다 잡은 범인을 놓쳤다는 오명을 이번 재수사로 씻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당시로 돌아가 보자.
1997년 4월 3일 오후 10시쯤 대학생 조중필 씨는 서울 강남 국기원 도서관에서 공부한 뒤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 이태원으로 갔고, 근처 패스트푸드점 1층 화장실에 들렀다. 그때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조씨는 휴대용 칼로 오른쪽 목 부위 세 곳, 가슴 부위 두 곳, 왼쪽 목 부위 네 곳이 찔린 채 피투성이로 발견했다. 119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과다출혈로 숨진 뒤였다.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락권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1팀장, 박재오 서울중앙지검 검사, 부검의였던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
4월 10일 경찰의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리와 패터슨은 서로 “범인은 내가 아니라 저 친구”라며 엇갈린 주장을 했다.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조씨와 눈이 마주치자 ‘뭔가 보여주겠다’며 뒤따라 들어가 살해했다”고 주장했고, 리는 “뒤따라 들어온 패터슨이 칼로 조씨의 목을 수차례 찔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두 사람의 친구는 사건 직후 “이들이 재미 삼아 사람을 찔렀다고 얘기한 걸 들었다”고 진술했다. 현장검증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무방비 상태의 조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점이었다.
수사를 담당한 김락권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1팀장은 이들을 ‘공동정범’(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공동으로 실행한 2인 이상의 사람 또는 그 행위)으로 판단하고 검찰에 기소했다. 서울 금천경찰서 강력5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 10월 13일 김 형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흉기를 소유한 것, 하수구에 버린 것, 피 묻은 옷을 없애려고 시도한 것 등 여러 정황으로 미뤄 패터슨에게도 살인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패터슨과 리 모두 살인사건과 관련해 공동정범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하지만 검사는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형사는 2013년 3월 17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담당한 박재오(57·사법연수원 22기) 검사의 생각은 달랐다. 법의학적 소견(서울대 법의학교실 부검 결과)과 거짓말탐지기 결과 등을 근거로 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1997년 4월 26일 박 검사는 리에 대해서는 조씨를 살해한 혐의(살인죄)를, 패터슨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흉기를 소지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와 리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미8군 영내 하수구에 버린 혐의(증거인멸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박 검사는 춘천지방검찰청(지검), 전주지검 정읍지청, 서울중앙지검, 청주지검 등에서 8년간 검사로 재직하다 2000년 사직했다. 검사직을 내려놓은 데는 이 사건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고향 전북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변호사의 사무실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사무실 직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박재오 검사가 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데 확신을 준 건 부검의였던 이윤성(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소견이었다. 이 교수는 조씨 몸에서 칼에 찔린 목의 상처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고, 두 번 깊게 찌른 공격으로 목 가운데까지 관통하면서 혈관이 잘려 치명적이었으며, 피해자의 방어흔(가격당한 피해자가 이를 막다 생긴 상처)이 없는 것으로 봐서 상대는 피해자(176cm)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일 개연성이 크다고 봤다. 당시 패터슨은 172cm에 63kg으로 왜소한 체격이었고, 리는 180cm에 105kg의 거구였다. 대검찰청 법의학 자문위원회 소속인 이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라 언론과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 10월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리는 무기징역을, 패터슨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98년 1월 26일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에서는 리가 징역 20년형, 패터슨이 징역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용훈)는 98년 4월 24일 “에드워드가 직접 살해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단독범행으로 인정한 데는 위법성이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송기홍)는 98년 9월 30일 파기환송심에서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석방 이듬해인 1999년 3월 국내 한 대학에 입학한 리는 이후 결혼해 아들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렸으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살고 있다. 패터슨의 공판이 열리기 한 달 전인 올해 9월에는 국내로 들어와 아버지와 지내고 있다. 10월 8일 공판에 방청인으로 참석한 리의 아버지 이씨는 취재진에게 “검찰에서 (아들의) 증언을 요청한다면 당연히 하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터슨이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건 박상천 법무부 장관 때 일이다. 당시 조중필 씨 유족으로부터 직무유기혐의로 고소당한 김경태 서울지검 검사와 한동영 서울지검 검사. 이들의 상관이던 권재진 당시 서울지검 형사3부장(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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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정지 연장 깜박한 검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무부를 질책한 당시 새누리당 주광덕 의원(왼쪽). 패터슨의 소재를 파악하고도 범죄인 인도 요청이 지연된 건 이귀남 법무부 장관 때의 일이다.
리의 무죄가 확정되자 1998년 11월 9일 조씨 유족은 패터슨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냈다. 그러나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99년 8월 24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해 12월 24일 조씨 유족은 검찰이 출국정지 연장을 제때 하지 않은 바람에 패터슨이 미국으로 달아났다며 김경태, 한동영 검사를 직무유기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으나 무혐의 결정이 났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권재진(62·사법연수원 10기)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해 6월부터 형사3부를 맡은 권 부장검사는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아 용의자를 놓친 것은 잘못인 만큼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983년 서울중앙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2009년 서울고검 검사장으로 퇴임했다. 같은 해 이명박 정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고, 2011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제62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13년 6월 서울 종로구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권 변호사의 사무실로 당시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당시 권 부장검사의 형사3부 부하검사로 패터슨의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건 김경태(50·사법연수원 22기) 서울중앙지검 검사였다. 김 검사는 함께 일하던 수사관이 유흥주점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돼 충격을 받았고, 특수부 인사이동을 앞두고 인수인계에 바빠 출국정지 연장 신청을 하지 못했다. 1996년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광주지검 순천지청 부장검사와 수원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 부장검사, 청주지검 충주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춘천지검 강릉지청장으로 활동한 그는 3월부터 법무법인 민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듣고자 민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패터슨이 미국으로 떠나고 조씨 유족은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패터슨이 도주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유족에게 34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이인복)는 “검사의 위법한 직무 위반행위와 원고들이 진상 규명 기회를 잃어버리게 돼 얻은 정신적 고통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2006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9월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2009년 9월 10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했다. 배우 장근석이 피어슨(패터슨), 송중기가 피해자 조씨 역을 맡아 주목받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흥행보다 값진 건 이 영화로 잊혀져가던 사건이 재조명됐다는 점이다. 조씨의 유족은 홍 감독을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2009년 10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은 미 법무부로부터 패터슨이 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그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질의가 있기 전까지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당시 국회 법사위 소속이던 새누리당 주광덕(55·사법연수원 23기) 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법무부가 패터슨의 소재를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아직까지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1994~98년 검사 생활을 한 주 전 의원은 9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고 18대 국회의원,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이귀남(64·사법연수원 12기) 법무부 장관은 “(범죄인 인도 요청을) 최대한 빨리 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장관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제61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 퇴직한 이 전 장관은 LKN법학연구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 전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우범지대도 아니고 원한관계도 없던 창창한 젊은이가 햄버거 가게에 들어간 죄로 무참히 희생됐다는 점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공모공동정범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검찰에서 두 사람을 공범으로 기소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또 주 전 의원은 “패터슨이 사면이라고 했다 형집행정지라고 말을 바꾸거나, 리가 무죄를 받았는데 패터슨을 추가 기소하거나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사법당국의 무관심도 문제였다. 미국에서 찾을 수 없다던 패터슨의 소재도 인터넷상에서 발견했다. 사법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사건을 주시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 이태원 살인사건 재수사를 맡은 박철완 부산고검 부장검사. 패터슨의 변호를 맡은 오병주 변호사(왼쪽부터).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박윤해 부장검사)는 2011년 12월 22일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미 법원은 2012년 10월 22일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했으나 패터슨은 이와 별개로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했다. 패터슨의 청원은 2014년 6월 1심과 올해 5월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고 7월 재심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터슨은 이 과정에서 범죄인 인도 결정의 집행정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미국 범죄인 인도 관련법에 따르면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려면 범죄인 인도 집행정지 신청을 해야 하고, 각 심결 이후 2개월 내 이를 연장해야 한다. 패터슨은 1심과 항소심 직후에는 범죄인 인도 집행정지 신청을 했으나, 항소심에서 패한 뒤에는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범죄인 인도 집행정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런 패터슨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는 국내에 송환되지 못했을 것이다.
법무부는 미 당국과 협의 끝에 패터슨 송환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국제형사과 소속 검사 1명과 수사관 4명으로 구성된 인수팀을 미국으로 보내 패터슨의 신병을 넘겨받았다. 9월 21일 오후 11시 30분(현지시각) 법무부 국제형사과 이지형(39·사법연수원 33기) 검사는 패터슨이 대한항공 KE012편에 오르자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패터슨은 9월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011년 12월 당시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한 박철완(43·사법연수원 27기) 부산고검 부장검사를 재판에 투입했다. 사건의 공소유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철희)가 담당한다. 재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박윤해(49·사법연수원 22기)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이었고 박 부장검사는 부부장검사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검사에 대해 “검사라는 지위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는 스타일은 아니다. 진정성과 정의감이 있어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검사”라고 평했다.
한편 패터슨은 변호인 3명을 선임했다. 패터슨의 변호를 맡은 건 검사 출신인 오병주(59·사법연수원 14기) OK연합법률사무소 변호사다. 오 변호사는 행정고시(22회)에 이어 사법고시(23회)에 합격하고 대전지검 공주지청장, 대전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검찰에 22년간 몸담았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차관급)을 지냈다. 충청포럼에서의 인연으로 지난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오 변호사는 10월 8일 첫 공판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은 에드워드”라며 패터슨을 변호했다. 패터슨의 다음 공판 준비기일은 10월 22일로 예정돼 있다.
희생자는 있지만 살인자는 없던 사건. 리는 이미 살인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고, 패터슨이 설령 진범이라 해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두 사람 모두 무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당시 검찰은 에드워드를 진범으로 여기고 수사했다. 수사기관이 예단해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그 외 다른 증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는 사이 진범은 증거를 없애기 바쁘고, 나중에 진범을 잡아도 증거가 없거나 증거인멸죄로밖에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검찰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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