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국립극단]
고등학생 ‘다은’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폐기음식을 분석하는 1인 인터넷 방송을 만든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지만, 언젠가 건조기를 사서 뽀송뽀송한 옷을 입을 거라고 말하는 긍정적인 소녀다. 그런데 이 꿈 많은 소녀는 편의점 창고가 무너지며 그만 죽고 만다. 다은이 일하던 편의점 사장의 딸 ‘혜민’과 편의점 건물주 손녀 ‘한결’은 애써 자신들을 둘러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부정한다. 다은의 유일한 친구 ‘연주’는 학교 성적이 좋은 혜민과 한결에게 접근해 함께 과외를 받는다. 이렇게 성적이라는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슬픈 죄책감과 아픈 부채의식은 희석된다.
이처럼 ‘사물함’은 또래 집단의 파워게임 안에서 자신의 ‘살길’을 찾고자 분투하는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 내면의 자아를 날카로운 관점으로 조망해 속살을 형이상학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유나 사색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극이라고 반드시 교훈적일 필요는 없지만 ‘사물함’에는 우리가 왜 청소년기를 의미 있게 지나 어른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제시가 없다. 청소년이 이 청소년극을 보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찰하길 바랐는지 국립극단은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다리꼴의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케 하는 객석 배열로 등 돌려 연기하는 배우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시간을 넘나드는 장면 구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입체적인 무대와 협소한 음향의 비대칭은 관객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런웨이 무대 건너편 객석에 앉은 청소년들의 시선이 무대 밖으로 자주 움직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