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5

2015.09.14

400억의 사나이 손흥민이 간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이적료는 박지성의 5배, 역대 아시아 선수 최고 기록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9-14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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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억의 사나이 손흥민이 간다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9월 3일 경기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라오스와의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과거’가 박지성(34·은퇴)이라면 ‘현재’는 손흥민(23·토트넘 홋스퍼)이다. 손흥민은 2015년 한국 축구에서 가장 ‘핫’한 선수다.

    2005년 여름,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2015년 여름, 손흥민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을 떠나 프리미어리그 빅클럽 토트넘에 입단했다. 손흥민은 10년 전 박지성의 400만 파운드의 5배가 넘는 2200만 파운드(약 400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독일로 유학 떠난 축구 엘리트

    동북고 시절이던 2008년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난 손흥민은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뒤 2010년 성인팀으로 스카우트됐고,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5년간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손흥민은 데뷔 초부터 강렬했다. 2010년 10월 30일 쾰른전에 처음 나서 1-1로 맞선 전반 24분 역전골로 데뷔골을 장식하면서 유럽 축구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단숨에 함부르크의 주축 선수로 떠오른 그는 2012~2013시즌 33경기에서 12골·2도움을 올리는 등 거침없이 성장했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분데스리가 명문 팀 가운데 하나인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은 차범근(62)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현역 시절 몸담았던 팀.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뛴 두 시즌(2013~2014, 2014~2015) 동안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리그 61경기에 출전해 21골(2013~2014시즌 10골, 2014~2015시즌 11골)을 넣었고 함부르크 시절인 2012~2013시즌까지 포함해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손흥민의 분데스리가 통산기록은 135경기 출전에 41골·6도움. 또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통산 8경기에 출장해 3골·2도움을 기록했다.

    올여름 유럽축구 이적시장은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토트넘이 손흥민을 영입하기 위해 레버쿠젠에 지급한 이적료는 2200만 파운드. 그동안 프리미어리그를 밟은 12명 한국인 선수 가운데 이적료가 1000만 파운드를 넘어간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박지성이 10년 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 맨유로 갈 때 이적료가 400만 파운드였고, 기성용이 2012년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스완지 시티로 이적할 때 750만 파운드였다. 유럽 전체로 눈을 돌렸을 때도 2200만 파운드는 역대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 신기록이다.

    이적료 2200만 파운드는 2015년 여름 프리미어리그 9위에 해당한다. 인터넷 이적 전문사이트 ‘트란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 1부리그 등을 모두 합친 유럽 시장 전체 이적료 순위에서도 도글라스 코스타(바이에른 뮌헨), 카를로스 바카(AC 밀란) 등과 함께 공동 16위에 올랐다. 분데스리가에서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뒤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톱 클래스’ 선수로 인정받은 셈이다.

    400억의 사나이 손흥민이 간다

    9월 1일 경기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공개훈련에서 이청용(왼쪽), 손흥민 선수가 훈련을 하고 있다.

    2015~2016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레버쿠젠 프리시즌 때 골 소식을 전하지 못했고,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1라운드에는 징계로 결장했다. 기다리던 개막전, 호펜하임과의 분데스리가 1라운드에서도 60분밖에 뛰지 못했다. 이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구단과 매끄럽지 못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 결정타였다. 손흥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레버쿠젠은 이적에 반대했고, 손흥민은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 구단과 기나긴 줄다리기를 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SS 라치오(이탈리아)와의 UCL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전반 45분만 뛰고 교체 아웃됐다.

    줄다리기 끝에 8월 말 토트넘으로 전격 이적한 그에겐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9월 3일 경기 화성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라오스전은 확실한 반전 카드였다. 전반 11분, 후반 28분과 44분 잇달아 골을 터뜨리며 라오스전 8-0 대승을 이끌었다. 태극마크를 단 뒤 첫 해트트릭이었다. 9월 13일 선덜랜드전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예정된 그로서는 남다른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박지성을 넘어서라

    손흥민의 장점은 상대팀 공간을 활용하는 빠른 돌파에 이은 묵직한 슈팅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케 하는 무회전 킥도 갖춰 세트피스 상황에서 큰 무기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특히 공을 몰고 가면서도 좀처럼 스피드가 줄지 않는 드리블은 최대 강점이다.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이 많은 골을 터뜨린 것도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넓은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의 파괴력은 다소 미흡했다. 소속팀에서 활약보다 대표팀에서 활약이 부족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과 만나는 상대팀이 대부분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했고, 그러면서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는 분명히 분데스리가보다 수준이 높다.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도 유난히 상대가 밀집수비로 나섰던 라오스전에서 해트트릭을 뽑아낸 것은 새 도전을 앞둔 손흥민에게는 큰 의미였다.

    손흥민은 이미 유럽리그에서 박지성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장차 대표팀에서도 ‘우상’ 박지성을 넘어서야 한다. 박지성은 클럽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경력도 위대하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과 아시아선수 사상 첫 3연속 본선 득점을 기록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첫 16강 등 한국 월드컵 축구 역사를 새롭게 썼다. 대표팀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이유 중 하나가 박지성 같은 정신적 지주의 부재였다.

    이제 손흥민은 박지성의 대를 이을 한국 축구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그는 벌써 A매치 45게임을 뛰었다. 현 축구대표팀 멤버 중 5위권이다. 통산 득점으로는 14골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공동 1위다. 이미 주도적 구실을 해야 할 위치에 올라 있다.

    손흥민과 가까운 한 축구인은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손흥민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다. 무엇보다 승부욕이 남다르다. 그는 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세계 최고 무대라는 프리미어리그 정복과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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