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쟁으로 튀어 오른 불꽃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학출판사 두 곳에 불을 질렀다.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문학동네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두 출판사의 대응은 사뭇 달랐다. 창비가 신 작가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로 여론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은 반면, 문학동네는 ‘대표이사 및 1기 편집위원 동반 퇴진’ 보도로 여론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대표이사 및 편집위원 동반 퇴진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첫째, ‘동반 퇴진’이라고 한 언론보도와 달리 10월 주주총회에서 편집위원들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을 뿐이다. 둘째, 이번 ‘조치’가 퇴진 대상인 1기 편집위원 전원의 논의와 합의를 거친 것이 아니다. 퇴진 보도로 창비에 비해 우호적인 여론을 확보한 문학동네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의도적 표절 아냐” 주장했다 뭇매 맞은 창비
창비는 이번 표절 논쟁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신 작가의 1994년 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이후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개정 출간)를 낸 출판사다. 20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 신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도 창비에서 나왔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이후 첫 간행된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백영서 편집주간은 ‘문자적 유사성이 표절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의도적 베껴 쓰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바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론 반응만으로 본다면 창비의 대응은 악수의 연속이었다.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은 가을호의 내용이 많은 비판에 직면하자, 8월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이례적으로 장문의 글을 써 창비를 옹호했다. 백 편집인의 글은 창비를 여론의 십자포화에서 끌어내는 대신, 편집인 자신까지도 그 포화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는 9월 7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기고한 글을 통해 ‘창비와 백낙청은 표절 의혹을 깨끗이 정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문학을 비루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학동네는 비록 이번 표절 논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품을 내지는 않았으나 신 작가의 많은 작품을 간행하고 그에 대한 각종 대담과 리뷰 등으로 신 작가를 오늘날의 지위에 올리는 데 일조한 출판사다. 그 때문에 이번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논란 직후부터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해 비난 여론에 직면하고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던 창비와 달리 문학동네는 논란이 지속되는 내내 말을 아꼈다.
그러다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 발간을 앞두고 9월 1일 ‘한겨레’가 ‘이름을 밝히길 꺼린 문학동네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강태형 대표와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 6명이 주주총회를 통해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문학동네의 이와 같은 대처는 창비와 백낙청 편집인의 완고한 태도와 대비되며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 신 작가 표절 논란 이후 수차례 문학동네에 날선 비판을 던졌던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또한 이번 결정에 대해 “퇴진 결정 자체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주간동아’에 밝혔다.
“퇴진에 합의한 적 없다”
그런데 정작 퇴진 결정의 주체인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들의 말은 엇갈린다. 이즈음 편집위원직에서 물러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지만 9월 1일 ‘한겨레’ 보도에서 언급한 것처럼 10월 주주총회를 통해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합의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한 편집위원은 퇴진 결정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나는 그런 회의에 참가한 적이 없어 공식적인 발표 내용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다른 복수의 편집위원은 “물러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는 창간 20주년(2014년)부터 있어왔다”고 답변하면서도 “(퇴진 시점에 대해) 이번의 발표가 편집위원 전원의 논의와 합의에 의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편집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10월 주주총회가 없는데 왜 기사에서 주주총회를 언급했는지 모르겠다”며 “(1기) 편집위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며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 될지는 곧 논의될 것”이라고 답했다. ‘10월’이라는 시점과 ‘일괄 퇴진’이라는 방식조차 합의되지 않은 모양새다.
이에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이사는 “10월 주주총회는 정기적인 것이 아니며 주주들에게는 공지가 된 상태”라고 밝혔다. 주주가 아닐지라도 퇴진 논의의 당사자인 편집위원이 해당 사항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염 이사는 “어느 편집위원이 그렇게 말했는지 알지 못하고(기자는 재차 편집위원의 이름을 묻는 염 이사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정확한 맥락을 알지 못해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대표이사 및 1기 편집위원 퇴진’ 보도 직후 발행된 ‘문학동네’ 가을호를 읽어보면 문학동네의 결정이 진실한 반성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눈동자 속의 불안’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권희철 편집위원은 ‘분명히 말하자면, (신경숙의)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이다’라며 15년 전 정문순 평론가에 의해 처음 제기됐고 6월 이응준 작가의 기고문으로 다시 불거진 신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 인정했다.
그러나 같은 글에서 권 편집위원은 신 작가의 표절 논란과 함께 불거졌던 이른바 ‘문학권력’ 이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인했다. “만약 문학권력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학 그 자체의 힘이라는 뜻”이라는 것이 권 편집위원의 응답이었다.
자본과 비평 모두를 갖춘 대형출판사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특정 작가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행위가 한국 문단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학권력’ 논쟁의 골자다. 주류 문학계간지인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를 내고 있는 대형출판사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이 논쟁의 대상이다.
‘문학권력’ 문제를 제기해왔던 평론가들은 ‘문학동네’ 가을호에 대해 싸늘한 평가를 내렸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학권력 문제 제기에 대해 명백히 거부의 제스처를 드러냈다”고 평했다. 기자와 통화에서 이 교수는 문학동네의 대처에 대해 “근본적 변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을 두고 다른 평론가나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전략적 대처 같다”고 평가했다.
‘대표이사 및 1기 편집위원 퇴진’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높이 샀던 권성우 교수 또한 “‘문학동네’의 서문을 읽어보면 근본적 갱신과 자기 성찰 역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행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대표이사 및 편집위원 동반 퇴진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첫째, ‘동반 퇴진’이라고 한 언론보도와 달리 10월 주주총회에서 편집위원들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을 뿐이다. 둘째, 이번 ‘조치’가 퇴진 대상인 1기 편집위원 전원의 논의와 합의를 거친 것이 아니다. 퇴진 보도로 창비에 비해 우호적인 여론을 확보한 문학동네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의도적 표절 아냐” 주장했다 뭇매 맞은 창비
창비는 이번 표절 논쟁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신 작가의 1994년 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이후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개정 출간)를 낸 출판사다. 20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 신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도 창비에서 나왔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이후 첫 간행된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백영서 편집주간은 ‘문자적 유사성이 표절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의도적 베껴 쓰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바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왼쪽)과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이사.
문학동네는 비록 이번 표절 논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품을 내지는 않았으나 신 작가의 많은 작품을 간행하고 그에 대한 각종 대담과 리뷰 등으로 신 작가를 오늘날의 지위에 올리는 데 일조한 출판사다. 그 때문에 이번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논란 직후부터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해 비난 여론에 직면하고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던 창비와 달리 문학동네는 논란이 지속되는 내내 말을 아꼈다.
그러다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 발간을 앞두고 9월 1일 ‘한겨레’가 ‘이름을 밝히길 꺼린 문학동네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강태형 대표와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 6명이 주주총회를 통해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문학동네의 이와 같은 대처는 창비와 백낙청 편집인의 완고한 태도와 대비되며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 신 작가 표절 논란 이후 수차례 문학동네에 날선 비판을 던졌던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또한 이번 결정에 대해 “퇴진 결정 자체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주간동아’에 밝혔다.
“퇴진에 합의한 적 없다”
신경숙 작가.
한 편집위원은 퇴진 결정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나는 그런 회의에 참가한 적이 없어 공식적인 발표 내용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다른 복수의 편집위원은 “물러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는 창간 20주년(2014년)부터 있어왔다”고 답변하면서도 “(퇴진 시점에 대해) 이번의 발표가 편집위원 전원의 논의와 합의에 의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편집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10월 주주총회가 없는데 왜 기사에서 주주총회를 언급했는지 모르겠다”며 “(1기) 편집위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며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 될지는 곧 논의될 것”이라고 답했다. ‘10월’이라는 시점과 ‘일괄 퇴진’이라는 방식조차 합의되지 않은 모양새다.
이에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이사는 “10월 주주총회는 정기적인 것이 아니며 주주들에게는 공지가 된 상태”라고 밝혔다. 주주가 아닐지라도 퇴진 논의의 당사자인 편집위원이 해당 사항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염 이사는 “어느 편집위원이 그렇게 말했는지 알지 못하고(기자는 재차 편집위원의 이름을 묻는 염 이사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정확한 맥락을 알지 못해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대표이사 및 1기 편집위원 퇴진’ 보도 직후 발행된 ‘문학동네’ 가을호를 읽어보면 문학동네의 결정이 진실한 반성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눈동자 속의 불안’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권희철 편집위원은 ‘분명히 말하자면, (신경숙의)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이다’라며 15년 전 정문순 평론가에 의해 처음 제기됐고 6월 이응준 작가의 기고문으로 다시 불거진 신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 인정했다.
그러나 같은 글에서 권 편집위원은 신 작가의 표절 논란과 함께 불거졌던 이른바 ‘문학권력’ 이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인했다. “만약 문학권력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학 그 자체의 힘이라는 뜻”이라는 것이 권 편집위원의 응답이었다.
자본과 비평 모두를 갖춘 대형출판사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특정 작가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행위가 한국 문단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학권력’ 논쟁의 골자다. 주류 문학계간지인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를 내고 있는 대형출판사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이 논쟁의 대상이다.
‘문학권력’ 문제를 제기해왔던 평론가들은 ‘문학동네’ 가을호에 대해 싸늘한 평가를 내렸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학권력 문제 제기에 대해 명백히 거부의 제스처를 드러냈다”고 평했다. 기자와 통화에서 이 교수는 문학동네의 대처에 대해 “근본적 변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을 두고 다른 평론가나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전략적 대처 같다”고 평가했다.
‘대표이사 및 1기 편집위원 퇴진’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높이 샀던 권성우 교수 또한 “‘문학동네’의 서문을 읽어보면 근본적 갱신과 자기 성찰 역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행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