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6

2011.02.28

“국내는 좁다” 해외로 쏠린 눈

은행들 해외 진출 ‘도전과 의욕’…아직 성과 미미, 현지화가 성공의 관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2-25 1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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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는 좁다” 해외로 쏠린 눈

    2009년 9월 신한은행은 일본 현지법인인 SBJ은행을 열고 숙원이던 일본 현지 진출 첫발을 내딛었다.

    “해외 현지은행에 대한 자산 투자라는 점에서 무형의 투자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2008년 3월 KB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의 자산규모 6위 은행인 센터크레디트은행(BCC·Bank CenterCredit) 인수 계약을 발표할 당시 KB국민은행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일부 우려에도 국내 시중은행이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선다는 점에서 금융권 안팎으로 기대가 컸다. KB국민은행 측은 BCC의 예대율(금융기관의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금 잔액 비율)은 150.5%여서 카자흐스탄 상위 5개 은행 평균 예대율 250%보다 낮으며, BCC가 무리한 외형성장을 하지 않고 보수적인 경영을 한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BCC 인수 쓰디쓴 실패

    그로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아 금융권에선 KB국민은행이 BCC 투자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2009년 12월 16일부터 일주일간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검찰 조사를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사전검사를 실시하면서 실상이 낱낱이 공개됐다. BCC 인수 과정의 문제점과 투자 손실은 생각 이상이었다. 이 때문에 2010년 11월 8일 금감원이 KB국민은행 전현직 임원 88명에 대한 무더기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이 그동안 매입한 BCC 지분은 모두 9392억 원어치로, 금감원은 지분 부당 취득에 따른 손실이 3997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2010년 8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기준). 또한 금감원 검사 결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BCC를 인수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2007년 여름부터 글로벌 경제위기 조짐이 심상치 않았음에도 지분 매입 가격을 주당 1715~2269텡게(1만3300~1만7600원)로 매입했다. 이는 BCC의 수익성이 나빠질 경우의 예상 매입가격보다 2~3배 높은 것이다. KB금융지주(이하 KB금융)의 어윤대 회장이 “BCC 투자는 국내 금융사에 남을 실패 사례”라고 말했을 만큼 KB국민은행으로선 뼈아픈 실패다.



    물론 이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선 “금감원이 KB금융 회장 선임을 두고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강정원 전 행장을 밀어내려고 유례없는 검사를 벌였고, BCC 투자 손실도 과장한 측면이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자산가치가 폭락했는데,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BCC 투자를 실패로 규정한 것은 성급한 감이 있다는 것.

    KB금융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란 기본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BCC 사례를 교훈 삼아 문화적, 지리적으로 근접한 아시아 국가로 적절한 시기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KB금융 경영연구소에선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보를 계속 축적하며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KB금융 고위관계자는 “신흥시장 중에서도 KB의 우수한 상품, 서비스, 리스크 관리 등으로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은 해당 지역의 경기 사이클을 보고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진출하려 한다”고 밝혔다.

    비단 KB금융만이 아니다. 2011년 9개 국내 은행이 총 27개 해외 점포 신설과 31개 법인 소속 지점의 추가 설치를 추진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글로벌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어 능력이 우수하고 지역이해도가 높은 직원들을 선발, 여신·외환·국제금융 등 사전 업무연수를 거쳐 해당 지역에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은행의 해외 진출 타당성 검토와 전략 수립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국내는 좁다” 해외로 쏠린 눈
    점포 설립 아닌 지분 투자나 경영권 인수

    하나은행은 ‘홍콩-베이징-칭다오-선양-장춘-하얼빈’을 연결하는 중국 내 금융벨트를 구축 중이며, 특히 동북 3성을 집중 공략해 이 지역의 리딩뱅크로 자리 잡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에 인수를 앞둔 외환은행의 해외 네트워크 역량을 하나은행의 현지화 모델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은행들은 단순 점포 설립이 아닌 해외 은행에 대한 지분 투자나 경영권 인수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의 한 임원은 “이미 진출한 핵심 시장에서 수익모델을 개발해 자력 성장에 집중하는 한편, 현지은행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향후 2~3년 내 권역(Regional) 은행으로 집중 육성, 진정한 글로벌은행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011년 신한카드사와 공동으로 베트남에서 ‘카드사업 프로젝트’ 론칭을 준비하는 등 금융지주회사 내 자회사들과의 동반 진출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은행들의 해외 진출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은행을 목표로 부단히 해외시장 문을 두드려왔다. 2002년 103개였던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수는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0년 말 현재 130개에 육박한다(표 참조).

    국내 은행의 이런 움직임은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때문이다. 은행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익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핵심이익률([이자수익+수수료이익]/총자산)은 2004년 말 2.71%를 기록한 이후, 2009년 말 현재 2.01%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외화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필요성이 커진 것도 한몫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원은 “해외 진출을 통해 채권과 유동화증권을 현지에서 발행하고, 현지 외화 예수금을 수취하면 다양한 외화자금 조달 채널을 확보할 수 있어 신용 경색에 대한 내구성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는 성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의 총자산이익률(ROA·당기순이익을 총자산으로 나눈 수치)은 2008년 0.62%, 2009년 0.56%로 같은 기간 국내 은행 전체 점포의 0.5%와 0.4%를 상회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점포의 순이자마진(NIM·은행이 자산을 운용해 낸 수익에서 조달 비용을 차감해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은 국내 점포에 비해 낮으며, 특히 2008년에는 신용경색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급증으로 1.15%까지 축소됐다.

    더군다나 2010년에는 미국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우리아메리카은행이 236억80000만 원(2010년 6월 30일 기준), 아메리카신한은행이 719억43000만 원(2010년 9월 30일 기준)의 손실을 보는 등 미국에 진출한 은행의 현지법인들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010년 부실화된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을 대손상각하는 과정에서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것이며, 2010년 말 기준으로 부실대출 처리를 완료했으므로 향후 정상적인 영업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명했다.

    은행들이 해외 진출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지점, 사무소 등 해외 점포 설립 위주의 소극적인 공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현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6년 말 국내 은행 해외 점포의 거래처별 여신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기업 현지 상사(47%), 국내 거주자(20%), 교포 및 교포상사(17%) 등 국내 관련자가 84%에 달했다(그래프 참조).

    태생적 한계 극복 시급

    “국내는 좁다” 해외로 쏠린 눈

    2007년 12월 27일 하나은행(중국) 유한공사 개점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 행사를 하고 있다.

    해외 지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금융권 인사의 말이다.

    “글로벌 은행이라는 SC제일은행도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고전하는데 솔직히 국내 은행 해외 점포를 찾는 현지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미국의 경우 현지 은행과 거래하기 힘든 교포나 소수민족을 주로 상대하는데, 이들의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부실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로선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금융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이 진정 효과를 거두려면 현지법인을 통한 소매금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이 “앞으로는 한국계 기업 고객과 교포를 대상으로 하는 지점 형태의 영업 체제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현지법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지법인 신규 설립이 쉽지 않다면 신한비나은행(신한은행)이나 칭다오국제은행(하나은행)처럼 현지은행과 합작하거나, 하나은행의 인도네시아 PT Bank 인수처럼 현지은행을 인수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특히 현지은행을 인수하면 해당 은행의 현지 네트워크를 그대로 전수받아 네트워크 열세를 단숨에 극복할 수 있으며, 현지은행과 합작하는 경우와 달리 독자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이 BCC 인수에서 큰 손실을 봤음에도 그 기본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병호 연구원은 “제대로 실사를 하지 않고 비싼 가격에 BCC를 인수한 것은 잘못이지만 현지은행을 인수하려는 전략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며 “성공사례도 있는 만큼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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