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

스페셜 리포트 | 점입가경 정운호 게이트

네이처리퍼블릭, 최악의 베팅

법조 비리에서 회사 비리로…오너 리스크가 회사 존폐 문제로까지 비화

  • 장관석 동아일보 기자 jks@donga.com

    입력2016-05-10 11:18:2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억 원대 원정도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된 ‘승부사’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항소심 보석을 조건으로 부장판사 출신 최모(46·여) 변호사에게 건넨 50억 원은 결국 최악의 ‘베팅’으로 판명 났다. 정 대표는 보석 석방에 실패했고, 물밑에서 나돌던 정 대표의 여성 관련 이야기를 비롯한 각종 추문과 회사 차원의 비리 의혹이 폭로되면서 재차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정운호 게이트’의 서막

    검찰은 이미 정 대표의 ‘법조 로비’에 더해 네이처리퍼블릭의 횡령과 군부대 및 롯데면세점 납품 로비 의혹에 대한 대대적 수사에 나섰다. ‘오너 리스크’는 상장을 앞두고 있던 네이처리퍼블릭을 크나큰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정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첫 보도는 2015년 8월 4일 ‘동아일보’에서 나왔다. 당일 오전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실 무근이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정 대표는 정작 검찰 조사에서는 ‘시원하게’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 대표는 “반성 많이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승합차에 올라 타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언론에 공개된 정 대표의 마지막 모습이다.

    상장을 계획하던 정 대표는 수사 단계부터 줄곧 검찰 수사가 회사 차원의 ‘횡령’이나 ‘배임’ 이슈로 튀지 않도록 노심초사했다. 1심에서 예상과 달리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되자, 크게 실망한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도록 ‘강력한 베팅’을 시작한다. 정 대표와 부장판사 출신 최 변호사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양쪽은 문제가 된 50억 원의 성격을 다르게 이야기한다. 정 대표 측은 “최 변호사가 재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보석과 집행유예를 확실히 받아주겠으니 30억 원을 성공보수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30억 원을 건넸지만 실패해 돌려받은 일이 두 차례나 된다. 최 변호사에게 착수금 20억 원 중 절반이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최 변호사가 ‘보석이 확실하다’ ‘집행유예가 확실하다’며 30억 원씩 총 두 차례를 성공보수 명목으로 가져갔다 실패한 뒤 돌려받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변호사 측은 “나는 도박사건 1건만 맡은 게 아니다. 정 대표의 호텔 종업원 폭행 건 등 최소 9건의 민형사 사건에 대응해 변호인만 24명(자문 변호사 포함) 이상 동원됐다.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처럼 일했는데도 구치소에서 폭행당했다”며 정 대표를 고소했다.

    최 변호사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정 대표를 변호하면서 알게 된 그의 ‘은밀한 사실’을 폭로했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의 호텔 여종업원 욕설 사건과 관련해 합의금 등으로 8000만 원 넘는 돈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정 대표의 가족은 “욕설 의혹을 보도한 모 주간지 전체를 5500만 원을 주고 사들여 폐기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측은 “정 대표와 여성 연예인의 성관계 의혹이 제기되자 변호인 일부가 해당 연예인을 찾아가 확인받았다. ‘추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수천만 원을 지급한 증빙도 있다”고 했다. 나아가 정 대표의 1심 및 현 변호인단이 브로커를 통해 항소심 재판부에 로비를 했고, 검찰의 구형량 감소를 위해서도 전관을 동원해 로비했다고 밝혔다. 또 정 대표가 평소 관리해온 부장판사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물밑에서 나돌던 정 대표의 각종 추문과 비리 의혹, 경찰의 이권 요구 의혹, 법조계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브로커 이씨와 L부장판사

    최 변호사의 폭로대로 정 대표 측이 브로커나 인맥을 동원해 재판부에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안이 심각해졌다. 정 대표 측 브로커인 이모(56) 씨는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이 배당된 당일인 지난해 12월 29일 항소심 첫 재판장인 L부장판사와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사건을 청탁했다. 이씨는 정 대표의 경찰-검찰 수사 단계 변호를 맡은 검사장 출신 H변호사, 서울지하철 상가 입점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모 정치인과 고교 동문이다. 이에 L부장판사는 “과거에 다른 사람을 통해 이씨를 알게 됐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일 뿐”이라며 “이씨의 전력을 알지 못했다. 사건 청탁을 받고 바로 다음 날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브로커 이씨는 검찰에서 저축은행 관련 금융 브로커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2007년 코스닥 업체의 회사 돈 3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체포됐으나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 검찰청사를 도주했다 잡히기도 했다. 이씨는 2008〜2009년 제주 연동 일대에서 나이트클럽 등의 실소유주로도 등장했다. 이씨는 2009년 나이트클럽과 가라오케를 운영할 영업장을 빌렸다 임차보증금 잔금과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아 소송을 당했고 패소했다.

    이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이 서울지하철 구내에 화장품 상가를 입점하려고 로비를 벌인 혐의로도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이다. 정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지하철 상가 운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2010년쯤 서울지하철 관련 대관 업무를 하던 이씨에게 공무원 로비자금 명목 등으로 약 9억 원의 뒷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L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사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골프 강사’ 정모 씨와 같은 해 11월 미국 텍사스 골프여행을 다녀온 사실도 드러났다. 정씨는 골프관광 명목으로 피해자를 중국으로 유인한 뒤 바카라 도박으로 거액을 잃게 만들어 총 5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L부장판사는 “정씨와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로 해외여행을 간 것은 사실이지만 비용도 함께 부담했다. 현지에서 여행을 했고, 도박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정씨가 이런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지는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L부장판사는 사의를 표명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L부장판사가 이씨 등으로부터 청탁받아 비위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거듭 밝혔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L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보류했다. 제기된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 측은 재배당 사건을 맡게 된 다른 항소심 재판장인 J부장판사와도 접촉을 시도했다. 정 대표가 ‘○○형님’이라 부르는 수도권 ○○지법 K부장판사는 기자와 만나 “‘J부장판사에게 정 대표 사건을 잘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정 대표와 함께 알고 지내는 성형외과 의사 이모 씨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이를 (J부장판사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측은 “네이처리퍼블릭이 협찬하는 국내 미인대회에서 K부장판사의 딸이 입상하는 데 정 대표가 회사 임직원을 동원했다”는 주장도 했다.

    검찰도 의혹에 휩싸였다. 검찰은 1심 선고 형량이 낮다는 이유로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1심 구형량보다 6개월을 깎아주는 구형을 했다. 검찰은 또 항소심 재판 중 보석 신청에 대해 ‘적의 처리’ 의견을 냈다. 적의 처리는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검찰이 정 대표의 도박 사건을 수사할 당시 횡령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검사장 출신 H변호사

    서울지방경찰청이 2013, 2014년 진행한 정 대표의 도박 사건이 무혐의가 되는 데 검사장 출신 H변호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 대표가 2012년 6월 3〜7일 마카오 카지노 3곳에서 329억 원대 바카라 도박판을 벌였다는 의혹이지만, 2014년 7월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다.

    정 대표의 경찰 수사기록을 검토한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정 대표는 “홍콩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여권을 빌려줬다”며 본인은 카지노에 가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대표의 여권이 카지노에서 사용됐다는 점을 경찰이 확인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현지 경찰연락관 등의 회신 결과를 토대로 ‘타인 여권으로 도박장을 출입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수사 보고서를 만들어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논리를 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에서는 정 대표 사건이 경찰 내사 단계에서 정상 처리되지 못하고 일그러졌거나 검경이 사건을 관대하게 종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다 L씨 등 현직 경찰간부 2명이 정 대표 측에게 “수사 무마에 힘써줄 테니 지인 회사로 납품 이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꼬리가 잡혔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내사를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경찰관의 근무지와 이력,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들과 친분 등을 조사한 뒤 정 대표를 상대로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 대표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는 등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 유착 의혹을 받은 경찰관들을 형사처벌하지는 못했다.

    정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이 법원, 검찰, 경찰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회사 차원의 비리 의혹이 공무원, 군, 재벌가 인사로까지 확산되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1부(부장 이원석)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가 함께 전면 수사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의혹 관련자 전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촉구한 점도 검찰이 ‘강공모드’를 선택하게 된 요소로 작용한 듯하다.

    검찰은 특히 정 대표와 수임료 분쟁을 빚은 최 변호사, 그와 친분이 깊은 이숨투자자문 이사인 이모(44) 씨 등 사건 핵심 관련자들을 신속하게 출국금지했다. 네이처리퍼블릭 박모 부사장 등 핵심 임원들도 대거 출국금지됐다. 검찰은 5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네이처리퍼블릭 본사를 비롯해 최 변호사의 서초동 법률사무소와 자택, 관할 세무서 등 10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는 정 대표의 석방을 둘러싸고 벌어졌을 개연성이 큰 ‘법조 비리’가 한 축이고, 네이처리퍼블릭 회사 비리 의혹이 또 다른 한 축이다.

    검찰은 최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재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보석을 장담하면서 수임료 수십억 원을 받은 점이 입증될 경우 사기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강공모드’로 전환한 검찰 수사

    검찰은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와 친분이 깊은 이숨투자자문 이사 이씨가 깊이 연루된 단서를 잡고 그를 추적 중이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징역 4년 실형이 선고된 송모 이숨투자자문 대표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대가로 받은 변호사 비용 상당수가 이씨에게 흘러간 단서를 발견하고 최 변호사와 이씨 간 복잡한 돈거래 흐름을 정밀 분석 중이다.

    특히 이씨는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수사를 받자 타인 여권으로 중국, 태국으로 밀항했다 적발돼 강제 송환됐으며, 2012년 4월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인물로 밝혀졌다. 또 이씨는 자신을 검찰 수사관 출신이라 속이고 수사를 앞둔 금괴 밀수업자들로부터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8억 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기소됐다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씨가 당시 검사, 변호사, 검찰 수사관 등과 친분관계를 맺고 경찰관인 유모(여) 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수배 조회 등 편의를 제공받은 정황이 있다는 내용도 판결문에 적시됐다. 이씨는 최 변호사의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하면서 “고소인(최 변호사)의 사실혼 배우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이 네이처리퍼블릭 회사 비리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지난해 불거지지 않은 횡령 혐의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네이처리퍼블릭의 회계자료와 각종 내부 회의 문건, 세무조사 기록 등을 집중 분석해 횡령 혐의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에는 회사계좌에 입금된 정 대표의 개인자금(가수금)이 많아 횡령 혐의로 연결 짓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롯데면세점과 경찰 및 군 고위 인사에 더해 정치인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과 군부대 납품 로비 혐의로 브로커 한모 씨를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한씨와 친분이 있는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의 연루 단서를 확보했다. 검찰은 네이처리퍼블릭에서 신 이사장과 한씨 쪽으로 흘러간 자금이 총 3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네이처리퍼블릭은 한씨에게 3년간 수익의 3%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계약을 2012년 체결했다 2014년 돌연 해지했다. 그 대신 정 대표 측은 신 이사장의 아들 장모 씨가 운영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자다. 이에 한씨 측이 2014년 10월 네이처리퍼블릭을 상대로 ‘일방적 계약 해지로 입은 피해 6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 대표의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폭발력이 잠재된 정황도 감지된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와의 구치소 접견 내용을 보이스펜으로 대부분 녹음했고, 정 대표의 자필 메모까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의 녹취록에는 정 대표가 정치권 인사 P씨와 Y씨 등 2, 3명을 언급하며 정관계 인물들에게 로비했다고 말한 대목도 있다고 알려졌다. 결국 검찰이 정 대표와 최 변호사 등을 상대로 얼마나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정운호 게이트’의 전말이 드러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