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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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팀 첼시가 왜 이래? 문제는 포체티노의 용병술

[위클리 해축] 선수 적재적소 배치 안 돼 경기력 저하… 감독의 선수 파악 능력 의심

  • 임형철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3-12-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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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2023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12위를 차지한 첼시는 이번 2023~2024시즌에도 계속 두 자릿수 순위에 머물러 있다. 첼시는 한때 EPL(디비전1 제외) 5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으로 성공 신화를 썼지만, 2022년 9월 토마스 투헬 감독이 경질된 이후 부임한 그레이엄 포터, 프랭크 램파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22년 구단주가 토드 볼리로 바뀐 이후부터 연이은 감독 선임 실패, 과도한 유망주 영입에 따른 선수단 질 저하 및 돈 낭비가 겹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첼시 감독. [뉴시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첼시 감독. [뉴시스]

    무엇이 문제일까. 구단 운영의 방향성을 잡지 못한 볼리 이외에 수뇌부 주요 인물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팀을 이끌면서 별다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포체티노 감독도 문제가 상당하다. 포체티노 감독은 과거 사우샘프턴과 토트넘 홋스퍼를 이끌며 어린 유망주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좋은 팀을 만드는 능력을 보여준 지도자다. 첼시도 유망주 위주의 영입 전략을 펴면서 선수 육성 경험이 많은 포체티노 감독을 선임해 힘을 보탰다.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 아래에서 첼시 유망주들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첼시와 묶여 있는 7~8년이라는 긴 계약 기간뿐이다.

    선수를 왜 이렇게 써?

    포체티노 감독은 2015년 여름 토트넘 감독 시절 레버쿠젠에서 뛰던 손흥민을 영입해 그의 EPL 적응과 성공 신화의 문을 열어준 인물이다. 손흥민과 호흡이 좋았던 DESK(델레 알리, 에릭센, 손흥민, 케인) 라인 공격진을 만들어 토트넘을 막강 화력의 팀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의 활약이 절정에 달한 2018~2019시즌 토트넘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팀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하지만 이후 포체티노 감독은 리그 성적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에 책임을 지고 2019~2020시즌에 경질됐다. 그 후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MNM(메시, 네이마르, 음바페) 공격진을 보유하고도 부진을 면치 못해 또다시 1년 반 만에 경질되는 굴욕을 맛봤다. 그리고 이번 시즌 첼시에 와서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현재 첼시는 승리한 경기 수보다 패배한 경기 수가 더 많은 상황이다. 시즌 개막 이후 한 번도 한 자릿수 순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현재 중위권 승점 차가 촘촘해 자칫 연패에 빠지면 중하위권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2023년 첼시는 천문학적 금액을 여름 이적 시장에 투자했다.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등과 경쟁에서 승리하며 미하일로 무드리크, 엔소 페르난데스, 모이세스 카이세도, 로메오 라비아 등을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의 영입이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돈은 돈대로 썼지만 거둬들인 것이 없는 셈이다. 이들을 융화시켜야 할 포체티노 감독이 리그 절반이 지나도록 첼시의 경기 스타일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소 페르난데스. [GETTYIMAGES]

    엔소 페르난데스. [GETTYIMAGES]

    포체티노 감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애매한 선수 기용 방식에 있다. 아르헨티나 국적인 엔소는 후방에서 보여주는 패스 배급 능력이 일품이라 혼자만의 힘으로도 팀의 후방 패스 배급, 빌드업을 얼마든지 이끌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포체티노 감독은 엔소를 계속 상대 진영으로 전진시켜 전방에 가까운 미드필더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엔소의 후방 빌드업 참여 비중이 줄어들고, 공격 마무리 작업 시 해야 할 역할만 많아졌다.



    엔소와 성향이 반대인 코너 갤러거는 후방 3선으로 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활동량이 많은 갤러거는 활발한 침투와 훌륭한 슈팅 능력으로 상대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격 마무리에 가담하는 능력이 좋은 자원이다. 과거 크리스털 팰리스로 임대를 간 시절 EPL 전체에서 손꼽히는 활약을 펼친 적 있다. 그런데 공격을 잘하는 갤러거는 후방, 후방 빌드업을 잘하는 엔소는 전방에 배치하면서 포체티노 감독의 선수 파악 능력이 의심받고 있다.

    코너 갤러거. [GETTYIMAGES]

    코너 갤러거. [GETTYIMAGES]

    리바이 콜윌은 센터백 자리에서 공 운반, 다양하게 뿌려주는 왼발 패스에 장점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풀백으로 기용되면 중앙에 있을 때만큼 측면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전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낯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런데도 포체티노 감독은 이안 마트센을 아끼면서 콜윌 풀백 카드만 쓰고 있다. 그래서 첼시는 후방 빌드업 시 공을 잘 뿌려주는 엔소와 공을 끌고 올라가는 걸 잘하는 콜윌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리바이 콜윌. [GETTYIMAGES]

    리바이 콜윌. [GETTYIMAGES]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한 전술의 한계

    물론 앞서 지적한 내용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길 테다. 선수 한두 명이 제 위치에 기용되지 않는다고 빌드업이 막힐까. 정해진 빌드업 패턴, 어떻게 공을 전진시킬지에 대한 약속된 내용이 있다면 선수 한두 명에서 공백이 생겨도 팀 전술은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굴러갈 수 있다. 물론 주전이 있을 때만큼 원활하고 부드럽게 빌드업이 전개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톱니바퀴가 어째서, 왜 굴러가는지에 대한 콘셉트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첼시는 포체티노 감독 부임 후 시즌 절반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콘셉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첼시의 빌드업은 센터백 티아구 시우바의 롱패스, 콜윌의 운반 및 왼발 패스 능력, 3선에 배치되는 카이세도와 위에서부터 내려와 부분적으로 빌드업에 관여하는 엔소의 패스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첼시의 공격은 주전 선수들이 선택하는 대로, 풀어 나오는 대로 따라가기에 바빴다. 약속된 플레이 없이 주전 선수들이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와 움직임대로 팀의 전진이 이뤄진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패턴이 부족한 팀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갈수록 첼시는 공격 자원과 미드필더 자원의 합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그에 따라 경기 템포가 느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새로운 도화지에 선 하나도 안 그린 느낌

    포체티노 감독 입장에서는 전술을 펼치기도 전에 선수들의 부상 불운이 초반부터 너무 반복됐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프리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치며 핵심 자원이 될 것을 예고했던 크리스토퍼 은쿤쿠는 시즌 개막 직전 부상으로 전력을 이탈했다. 1·2라운드에서 은쿤쿠 대신 좋은 공격 재능을 보여준 카니 추쿠에메카도 바로 장기 부상을 당해 첼시에 고민을 안겼다. 엔소, 카이세도 대신 후방 빌드업을 풀어줄 자원으로 기대됐던 2004년생 라비아는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채 훈련 도중 부상으로 긴 시간 팀을 떠났다. 수비에서도 웨슬리 포파나, 브누아 바디아실, 벤 칠웰, 마르크 쿠쿠렐라, 리스 제임스가 부상으로 빠져 포체티노 감독을 고민스럽게 했다.

    결정력 문제도 심각하다. 첼시는 2023년 12월 24일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와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했다. 이날 전반 15분까지는 첼시가 더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톱으로 나온 니콜라 잭슨, 아르만도 브로야가 줄기차게 기회를 놓치며 선제 골 기회를 날렸다. 라힘 스털링은 울버햄프턴 골키퍼 조세 사와 일대일 기회에서 옆 동료에게 패스를 주지 않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득점 기회를 놓쳤다. 첼시 팬들은 발만 갖다 대면 골인 상황에서 터치 미스를 범한 잭슨을 보며 탄식했다.

    니콜라 잭슨. [GETTYIMAGES]

    니콜라 잭슨. [GETTYIMAGES]

    잦은 부상 불운과 선수들의 결정력 문제는 포체티노 감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남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포체티노 감독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리그가 절반을 향해 가기 전까지는 첼시 감독으로서 어떤 축구를 보여줄지 팬들에게 명확하게 콘셉트를 이해시켜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무색무취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이며 리그 순위도 여전히 두 자릿수를 맴돌고 있다. 지금 첼시를 보면 시즌 개막 후 펼쳐 든 새로운 도화지에 아직까지 선 하나도 안 그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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