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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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듣는 태연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3-12-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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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이 다섯 번째 미니앨범 ‘투 엑스(To. X)’를 발표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태연이 다섯 번째 미니앨범 ‘투 엑스(To. X)’를 발표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음악을 어느 정도 들어온 사람이라면 태연의 목소리를 못 알아듣기 어렵다. 그만큼 시그니처가 분명한 목소리다. 그는 서늘함과 뜨거움을 동시에, 그리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전달해낸다. 가창의 개성만큼이나 태연의 음악이 담는 정서도 독특한 결을 유지한다. 적어도 2017년 ‘FINE’부터, 조금 길게 봐도 2016년 ‘Why’부터 그는 사랑의 깨짐과 그 후에 대해 노래해왔다. 이별은 대중음악의 가장 흔한 소재이기는 하다. 그러나 태연이 어떤 독보적 지위를 갖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태연의 가사는 사랑의 어두운 면을 길어 올린다. 홀가분함을 노래할 때조차도 곧잘 숨 막히던 관계의 끝에서 작은 미련을 밟고 서 있다. 태연의 노래 속 연애는 집착과 지배, 나르시시즘, 소유욕, 고집 때문에 부딪치고 짓눌린다. 그러나 주인공은 2015년 솔로 데뷔곡 ‘I’의 화자처럼 큰 자아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관계에 환멸을 느낀다. 지치거나 화나거나 아련할지언정 그에게 사랑은 허무하지만 끊어낼 수 없는 정념이다. 그래서 상징과 일상이 어둑하게 섞인 연극적 언어 같은 가사는 독백,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하는 허탈한 방백이다. ‘Happy’라는 제목의 곡마저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가수 태연에게 대중이 느끼는 매료는 독한 정서를 탄탄하게 들려준다는 데 있다.

    ‘태연표’ 이별 이야기

    그런 디스코그래피를 염두에 둘 때 태연의 신곡 ‘To. X’는 제목만으로도 상상의 여지를 상당히 제공한다. 헤어진 애인(X, ex)에게 보내는 편지다. 화자는 관계의 끝을 본 이후일 것이다. 관계는 뜨거웠지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을 테다. 어쩌면 화자의 자아를 억누르려는 관계였겠고, 그 반작용으로 깨어졌을 것이다. 어조는 담담하고, 11월 말이라는 발매일에 어울리게 좀 쓸쓸하다. 그러나 때때로 상대방이 떠오르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워, 예를 들면 “이젠 너의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아”라고 선언함으로써 미련을 내비친다. 다만 실제 ‘To. X’는 이별을 선택하는 순간에 서 있다. 이 점이 모든 걸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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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 전체는 4마디의 기타 연주를 반복한다. 이따금 목소리 샘플이 끼어들지만 비트와 푸근한 신시사이저 하나, 그리고 태연의 보컬만으로 이뤄진다. 다만 쇠구슬 같은 퍼쿠션과 잘게 쪼개지는 하이햇이 기타와 함께 까슬까슬한 질감을 이룬다. 비교적 간출한 편곡은 들어오리라 예상되는 시점에 들어오고, 곡의 진행에 따라 빠져나갔다가 돌아오고는 한다. 청자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들었다 놨다 하려는 장치는 없다. 높은 일관성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이 이별이 달라진다. ‘To. X’는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헤어질 결심이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이다. 화자는 “둘 사이에 너만 보이는”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으면서도 내심 알고 있었을 법하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상대를 향한 불빛을 꺼버리기로 한다. 이미 “깜빡거리는 Light”였기에, 그 정도 행동으로도 이별은 이뤄진다. 태연이 천착해온 이별 후 씁쓸한 허무라는 주제는 그렇게 여기서 하나의 원점, 즉 이별의 순간으로 돌아와 결론을 내린다. 이 탁월한 가수가 6년의 여정으로 도달한 완성점이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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