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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作 왕자웨이 영화에 MZ세대가 녹아들다

‘화양연화’ ‘아비정전’ ‘중경삼림’ 연이어 리마스터링

  •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1990년대 作 왕자웨이 영화에 MZ세대가 녹아들다

‘열혈남아’ 오리지널 포스터. [네이버영화]

‘열혈남아’ 오리지널 포스터. [네이버영화]

하루에도 영상 콘텐츠 수천, 수만 개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가 있다. 19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 시대를 이끈 왕자웨이(왕가위·63) 감독의 작품들이다. 지난해 12월 재개봉한 ‘화양연화’를 시작으로 ‘아비정전’ ‘열혈남아’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등이 리마스터링되며 M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화양연화 리마스터링’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악조건을 뚫고 누적 관객 11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OST 바이닐 레코드는 중고시장에서 수십 배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왕자웨이 감독은 다섯 살이던 1962년 홍콩으로 이주, 홍콩이공대 미술설계과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1987년 ‘열혈남아’로 감독 데뷔를 해 1990년 ‘아비정전’, 1994년 ‘동사서독’, 1994년 ‘중경삼림’, 1995년 ‘타락천사’를 거치면서 거장 반열에 올랐다. 1997년 작품 ‘해피 투게더’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00년 ‘화양연화’로 절정기를 맞는다. 량차오웨이(양조위·59)와 장만위(장만옥·57)가 주연한 ‘화양연화’는 제53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기술대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 작품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화양연화’는 2016년 영국 BBC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위에 올랐다.

왕자웨이 감독 영화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퇴색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뮤직비디오식 시네마토그래피, 가슴 찌릿한 여운이 남는 내레이션 대사, 화려하면서도 감각적인 음악,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상실, 20세기말 홍콩 젊은이들의 허무와 고독…. 왕자웨이 영화는 이런 요소들이 뒤섞여 강렬한 감수성을 자아낸다.

#열혈남아 旺角卡門·1987

19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 시대를 이끈 왕자웨이 감독. [GETTYIMAGES]

19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 시대를 이끈 왕자웨이 감독. [GETTYIMAGES]

“한 번 더 말해봐요. 두 번 말하면 나중에 번복하지 못하는 거예요.”
( ‘아화’ 역의 장만위 대사 중)

왕자웨이 감독이 거장 반열에 오르는 시발점이 된 ‘열혈남아’. 대만에 살던 아화(장만위 분)가 홍콩에 있는 병원에서 진찰받기 위해 뒷골목 건달 소화(류더화 분) 집에 머물다 서로에게 이끌리는 이야기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지만 왕자웨이 감독은 그만의 감각적인 화면 연출로 눈부신 장면을 만들었다.



#아비정전 阿飛正傳·1990

‘아비정전’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아비정전’에서 장궈룽이 맘보춤을 추는 장면. [네이버영화]

‘아비정전’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아비정전’에서 장궈룽이 맘보춤을 추는 장면. [네이버영화]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 역의 장궈룽 대사 중)

왕자웨이 감독의 페르소나 장궈룽(장국영·1956~2003)의 연기 인생 절정기를 엿볼 수 있는 ‘아비정전’. 아비정전은 미국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이 홍콩에서 개봉했을 때 중국어 제목이기도 하다.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라는 인물을 장궈룽은 그만의 감성으로 승화시켰다. 장궈룽이 하얀 ‘난닝구’(러닝셔츠)와 트렁크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는 장면, 석양이 물든 아름다운 열대 낙원, 보슬비 내리는 홍콩 거리 등 멋진 장면이 가득하다. 영화는 아비가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위 분)을 찾아가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로 마음을 흔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경삼림 重慶森林·1994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경찰 663’(량차오웨이
분)과 ‘페이’(왕페이 분)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가 여운을 남기는 ‘중경삼림’. [네이버영화]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경찰 663’(량차오웨이 분)과 ‘페이’(왕페이 분)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가 여운을 남기는 ‘중경삼림’. [네이버영화]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약밀매상’ 역의 린칭샤 대사 중)

1990년대를 지나온 이들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중경삼림’. 가네시로 다케시(금성무·48), 린칭샤(임청하·67), 량차오웨이, 왕페이(52) 네 사람이 만들어낸 2편의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는 각각 홍콩 청킹맨션을 배경으로 마약밀매상 린칭샤의 이야기와 센트럴지구의 세계적 명물인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자리한 집에 사는 량차오웨이의 사랑 이야기로 전개된다. 식당 점원 ‘페이’(왕페이 분)가 짝사랑하는 ‘경찰 663’(량차오웨이 분)의 집에 몰래 들어가 집을 가꾸는 장면, ‘경찰 223’(가네시로 다케시 분)이 파인애플 통조림을 미친 듯이 먹는 장면, 페이가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에 맞춰 무표정하게 춤추는 장면 등 유쾌하고 근사한 순간이 넘쳐난다.

#타락천사 墮落天使·1995

‘타락천사’에서 ‘하지무’ 역을 연기한 가네시로 다케시(금성무). [네이버영화]

‘타락천사’에서 ‘하지무’ 역을 연기한 가네시로 다케시(금성무). [네이버영화]

“레인코트가 필요했을 때 그가 내 곁으로 왔다. 난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발’ 역의 모원웨이 대사 중)

린칭샤의 금발이 연상되는 모원웨이(막문위·51)의 금발, 파인애플 통조림, 청킹맨션 등 ‘중경삼림’이 연상되는 요소가 곳곳에 스며 있는 ‘타락천사’. 동업한 지 155주나 됐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킬러와 파트너의 이야기다. 공간을 뒤틀린 형태로 담은 연출이 독특하다. 플라잉 피켓츠의 ‘Only You’를 배경음악으로 가네시로 다케시가 오토바이를 타고 터널 안을 달릴 때 나오는 장면은 현실을 초월한 느낌마저 든다.

#해피 투게더 春光乍洩·1997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보영’(장궈룽 분)과 ‘아휘’(량차오웨이 분). [네이버영화]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보영’(장궈룽 분)과 ‘아휘’(량차오웨이 분). [네이버영화]

“우리 다시 시작하자.”
(‘보영’ 역의 장궈룽 대사 중)

왕자웨이 감독에게 제50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해피 투게더’. 두 남자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로, 1997년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수입 불가 판정을 내려 한국에서는 상영되지 못했다. 논란 끝에 결국 재심의를 받아 1년 늦게 개봉했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 폭포를 찾아 나선 ‘보영’(장궈룽 분)과 ‘아휘’(량차오웨이 분). 그들은 이구아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왕자웨이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화양연화 花樣年華·2000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차우’(량차오웨이 분)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는 ‘첸 부인’(장만위 분). [네이버영화]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포스터(왼쪽). ‘차우’(량차오웨이 분)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는 ‘첸 부인’(장만위 분). [네이버영화]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차우’ 역의 량차오웨이 대사 중)

왕자웨이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로 1960년대 홍콩 남녀의 사랑을 매혹적으로 표현한 ‘화양연화’.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첸 부인’(장만위 분)과 ‘차우’(량차오웨이 분)는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자신들의 배우자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불륜을 눈치 챈다.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가고 감정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무엇보다 21년이 지난 지금 봐도 눈부신 장만위의 치파오 패션은 뭇 남성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을 뜻하는 제목 ‘화양연화’처럼 영화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4050세대는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돌아보게 되고, MZ세대는 다가올 화양연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주간동아 1303호 (p4~6)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