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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들어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실패한 3가지 이유

현실 외면한 하향식 정책, 산업 위축에 비정규직 비중 증가, 경직된 고용구조에 정규직 감소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文정부 들어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실패한 3가지 이유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10월 27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의 36.3%가 비정규직 근로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8월 32.9%에 비해 3.4%포인트 늘었다. 통계청은 조사방식의 변화로 2019년 기간제 근로자가 35만~50만 명이 추가됐다고 했지만 문 정부가 초반부터 밀어붙였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실패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왜 실패로 돌아가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현장을 무시한 하향식 정책, 제조업 등 산업 위축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 경직된 고용구조에 의한 정규직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①“정치 구호에 불과한 정책”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분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민간 기업에서도 정규직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내려가는 하향식 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올해 6월 인천공항이 비정규직 직원 2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바꾸려다가 현장의 반발과 함께 ‘인국공’ 사태를 맞았다. 이 현장을 지켜보던 취업준비생들과 인천공항 밖의 정규직 근로자들까지 정규직 전환의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노동시장의 현실을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는 “특정 서비스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세금 지원까지 받는 공기업 등은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혜택이 없는 사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을 따라가기 벅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애당초 비정규직 제로는 경제 구호가 아닌 정치 구호”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노동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점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바뀔 전망이다. 플랫폼 노동과 비대면 노동 등이 등장하면서 노동시장이 매일같이 유연해지는데, 정치권이 이에 대비하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비생산적인 논쟁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시장의 현실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려면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노동 관련법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를 위한 논의가 겉돌고 있어 사회적 합의와 제도 개선은 요원한 실정이다. 야당이 노동법 개정을 꺼냈지만 거대 여당과 노조 모두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 2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을 방문해 노동법 개정에 의견을 내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안전망 강화는 국가의 근본적 책무이지 유연화에 대한 보상으로 거래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10월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이 거론하는 노동법 개정은 부적절하다’며 ‘이런 시기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은 노동자들께 너무도 가혹한 메시지다’고 못 박았다.

② “산업 위축에 임시직 비중만 늘어”

지난해 비정규직 증가를 이끌었던 △제조업(17만 5000명↑) △숙박 및 음식점업(11만 6000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14만 1000명↑)에서는 올해에도 전체의 32.6%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했다. 제조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 각각 비정규직 근로자가 6만 9000명, 7만 1000명 감소했지만 전년도 증가분을 상쇄하지 못했고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는 도리어 15만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었다. 

미중 무역 분쟁과 경기 침체가 이들 산업의 침체를 불러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국내외에서 불확실성이 커져 제조업 등이 불황을 겪는 가운데 정부의 한시적 일자리 지원 정책이 펼쳐지면서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노인 일자리 등이 추가로 늘어난 탓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산업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던 제조업 내에서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라인 등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며 “노동 자원의 배분 역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주요 요소인데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올해의 비정규직 소폭 감소는 경기 상황 악화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비정규직 비중이 0.1%p 줄었다지만 이미 비정규직 비중 자체가 높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일자리 자체가 줄면서 제조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의 비정규직 근로자 역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악화로 산업이 위축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경제 불안을 부추기는 문제가 산적한 만큼 앞으로도 정규직 채용 전망이 밝지 않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장기 침체는 물론 미 대선 등 여러 사안이 경기 불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앞날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는 이러한 시기에는 기업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정규직 채용을 더욱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③“경직된 고용구조로 정규직도 일자리 줄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 중구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비정규직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 중구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비정규직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스1]

불황을 겪는 기업들이 비용 부담이 되는 정규직 일자리 대신 비정규직 위주로 채용을 한 것 역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7년 8월까지 정규직 근로자는 매년 약 10만~30만 명씩 증가해왔다. 하지만 2018년 정규직 근로자는 3000명 늘어난 데 그쳤고, 다음 해인 2019년에는 오히려 정규직 근로자가 35만 명 감소했다. 올해 역시 정규직 근로자 감소세가 이어져 5만 8000명 줄었다. 

경직된 고용 구조는 이전부터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정리해고비용(116위), 고용·해고 관행(102위), 외국인 노동자 고용의 용이성(100위) 모두 100위권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쉬운 해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태윤 교수는 “비정규직 비중 증대는 두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우선 “경기가 하락해 인력 채용이 어려워진 가운데 기업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해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꼭 쉬운 해고를 의미하지 않는다. 호봉제 등 성과를 반영하지 않는 임금 체계 역시 경직된 노동시장 대표적 예다. 노동자의 생산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도 임금과 일자리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들의 ‘몫 나누기’ 없이는 ‘비정규직 제로’도 공허한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올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152만 3000원으로 통계가 집계된 2004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6~8월 평균 기준 비정규직 임금은 지난해보다 1만 8000원 감소한 171만 1000원이다.





주간동아 1263호 (p16~18)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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