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드라마 쓴 초선들, 정국 좌우할 주자로 떠올라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4-16 1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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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5 총선에서 반전 드라마를 쓴 초선 의원들은 21대 국회에서도 중대 고비마다 주인공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려운 여건을 극복한 뒤 앞으로 자신의 역사와 스토리를 일궈 나갈 당선자들을 소개한다.

    ‘MBC 왕따’에서 보수의 구원투수로
    ①서울 송파을 배현진(미래통합당)

    배현진 미래통합당 송파을 후보가 4월 16일 서울 송파구 선거사무소에서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이 확실해지자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뉴스1]

    배현진 미래통합당 송파을 후보가 4월 16일 서울 송파구 선거사무소에서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이 확실해지자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뉴스1]

    배현진(37) 서울 송파을 당선인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 가까운 긴 시간을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약했다. 역대 뉴스데스크 앵커 중 최장수 기록이다. 2012년 MBC 노동조합 파업 때 노조에서 탈퇴하고 방송에 복귀해 ‘미운털’이 콱 박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직으로 밀려났고, 홍준표 당시 당대표의 제안으로 MBC에서 퇴사한 뒤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배 당선인은 오랜 세월 음모와 오해의 바다를 떠다녔다. “배현진에게 피구 공을 던졌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는 일명 피구대첩, “수돗물을 틀어놓고 양치하는 배현진에게 한 마디 했다가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는 일명 양치대첩 소문이 지금도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 입당 후에는 “정치판에서 오래 못 버틸 것”이라는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해왔다. 그는 “집단이나 권력자의 의지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192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 아나운서가 됐다. 신입 시절 MBC 사내 소식지에 ‘보이시(boyish)하고 유머감각 있다’고 소개됐다. ‘장관 딸이다’, ‘재벌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본인은 아버지가 ‘구멍가게 같은’ 사업을 하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다고 설명한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의 배현진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인. [MBC 제공]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의 배현진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인. [MBC 제공]

    배 당선인은 2018년 6월 송파을 재보궐선거에 나섰다가 여당 중진인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맞붙어 두 배 가까운 득표 차로 낙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세가 역전됐다. 7만2000여 표를 쓸어 담아 6만5000표 득표에 그친 최 후보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배 당선인은 이번 선거기간 내내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단지를 거의 매일 찾았다. ‘종합부동산세 경감’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송파 중산층’의 마음을 흔든 전략이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 개표결과를 보면서 미래통합당이 아직 국민의 마음에 밀착해 다가가는데 부족함이 있다고 반성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4선 무너뜨린 ‘문재인 1번가’ 소통의 달인
    ②경기 성남중원 윤영찬(더불어민주당)

    4월 15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경기 성남중원 후보가 선거사무소에서 승리를 자신하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조영철 기자]

    4월 15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경기 성남중원 후보가 선거사무소에서 승리를 자신하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조영철 기자]

    “빼앗기 힘들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 신인의 당찬 출사표가 제대로 통했다. 경기 성남 중원구에서 4선 의원을 지낸 ‘터줏대감’ 신상진 미래통합당 후보를 제치고 윤영찬(56)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득표율 54.6%로 당선됐다. 신 후보 득표율(41.6%)을 10%포인트 넘게 앞서며 15년간 펄럭이던 ‘보수 깃발’을 시원하게 뽑아버렸다. 

    전북 전주에서 가난한 교사 집안의 다섯 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노태우 비자금 사건’, ‘김대중 납치 비화’ 등 특종을 터뜨렸다. 2008년 마흔 다섯의 ‘늦은’ 나이에 네이버로 자리를 옮겨 미디어실장, 미디어담당 총괄이사, 부사장을 지냈다. 

    2017년 3월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하며 ‘문재인의 남자’가 됐다. 문재인 캠프의 최대 히트작으로 꼽히는 정책 쇼핑몰 ‘문재인 1번가’를 주도적으로 기획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초대 국민소통수석으로 ‘국민과의 소통’의 최전선에 섰다. 오늘날 한국 사회 이슈의 중심에 항상 등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그의 작품이다. 청와대 시절, 원활한 조직 내 소통을 위해 국민소통수석실 직원들끼리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선 일화도 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시절의 윤영찬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인. [동아DB]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시절의 윤영찬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인. [동아DB]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려 깊고 다정다감한 한편으로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친형인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동생에 대해 “천성이 여유 있고 긍정적이다. 고생 많으시던 어머니를 항상 살갑게 대하는 막내”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윤 당선인은 성남의 역사·문화적 자산을 많이 가졌지만 지역개발 면에서는 뒤쳐져 있는 중원구를 부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주요 공약으로는 △대원천 복원 △지하철 위례~신사선 확장 △성남하이테크밸리 육성 등이 있다. “중앙정부와 성남 중원구를 잇는 소통 창구가 되겠다”고 당선 포부를 밝혔다.

    ‘드루킹’ 구설 이겨낸 청와대 실세
    ③서울 구로을 윤건영(더불어민주당)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을 후보가 4월 15일 오후 구로동 선거사무소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을 확정한 후 꽃목걸이를 걸고 기뻐하고 있다. [윤건영 당선인 캠프 제공]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을 후보가 4월 15일 오후 구로동 선거사무소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을 확정한 후 꽃목걸이를 걸고 기뻐하고 있다. [윤건영 당선인 캠프 제공]

    ‘진보 텃밭’ 서울 구로을은 윤건영(51) 당선인에게 너무 쉬운 결전지였다. 득표율 57%로, ‘3선 현역’ 김용태 미래통합당 후보(37.6%)를 2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누르고 무난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권을 이끄는 386세대의 선두주자다. 부산 출신으로 국민대 총학생회장(88학번)을 지냈다. 1998년 성북구 구의원에 출마, 최연소 기초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5년 내내 청와대를 지키며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지냈다. 19대 국회에서 문재인 의원(부산 사상구)의 보좌관으로 일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다. 

    윤 당선인의 별명은 ‘지퍼’. 오래 함께 일해 온 만큼 문 대통령의 생각을 잘 알지만, 가까운 기자들에게도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입이 무거운 점이 문 대통령이 그를 신뢰해온 이유로 꼽힌다. 2018년 3월 첫 대북특사단 방북 때 윤 당선인의 가방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문 대통령의 친서가 들어있었고, 지난해 김 위원장이 보낸 문 대통령 모친상 조문을 판문점에서 받아온 이도 윤 당선인이었다. 그가 ‘문재인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유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4월 7일 서울 구로구 구로2동 일대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후보 [뉴스1]

    4월 7일 서울 구로구 구로2동 일대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후보 [뉴스1]

    대통령과 너무 가까운 탓일까. 구설에서 자유롭지 않기도 했다. ‘드루킹’ 김동원 씨는 “청와대 권력서열 1위는 문 대통령, 2위는 윤건영 실장, 3위는 김경수라는 말을 김경수 측근으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도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백건우 전 민정비서관에게 “유 전 시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사람으로 나와도 가까운 관계”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윤 당선인은 구로와 깊은 인연은 없다. “청년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배 당했을 때 1년 넘게 저를 품어주셨던 곳이 구로”라고.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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