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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르네상스는 문화운동 이전에 정치운동이었다”

르네상스의 통념에 도전하는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

  • 청주=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르네상스는 문화운동 이전에 정치운동이었다”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 [청주=지호영 기자]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 [청주=지호영 기자]

‘카이사르인가, 브루투스인가.’ 

고대 로마의 불세출 영웅으로 공화정이던 로마의 체제를 제국으로 바꾸려 했던 카이사르와 그런 카이사르의 사랑을 담뿍 받았지만 공화정을 지키고자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기원전 44년에 발생한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만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 지식인들에게 중차대한 화두였다. 

이는 최근 번역 출간된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의 주요 화두이기도 하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역사학자 한스 바론(1900~1988)이 1955년 출간한 이 역사서는 문화운동으로만 이해되던 르네상스가 강렬한 정치운동이었음을 일깨운 명저다. 여기서 바론은 1380~1402년 공화정이던 피렌체와 전제정을 채택한 밀라노 사이에서 벌어졌던 패권투쟁을 다루면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를 둘러싼 르네상스 지식인들 간 논쟁의 변천을 추적했다. 

이 책을 번역한 임병철(51) 한국교원대 교수를 만나 예술의 부흥이 아니라 정치의 부활로서 르네상스를 바라본 ‘바론 테제’와 한국 사회에 미칠 함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국내 극소수인 르네상스사 전공자로서 이 책을 포함한 ‘르네상스 3부작’을 기획하게 된 취지를 들어봤다.


르네상스는 왜 피렌체에서 꽃폈나

1493년 하르트만 셰델의

1493년 하르트만 셰델의 '연대기'에 수록된 14세기 피렌체 전경을 담은 그림의 채색도. [도사출판 길]

“르네상스 연구사에서 부르크하르트가 19세기 최고봉이라면 바론은 20세기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바론을 ‘20세기의 부르크하르트’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런 바론의 대표작이 두 세대나 지나서야 번역된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르네상스관이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있다는 방증입니다. 부르크하르트와 바론 모두 르네상스를 근대의 출발점으로 본 점은 같습니다. 다만 중세의 빗장을 풀고 근대의 문을 여는 열쇠를 부르크하르트가 ‘개인주의의 탄생’에서 찾았다면, 바론은 공화주의적 정치관(시민적 휴머니즘)의 재발견으로 찾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피렌체를 빼놓을 수 없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같은 문인,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같은 건축가가 피렌체 출신이다.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핀 이유를 한국인은 대부분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후원에 돈을 아끼지 않은 메디치 가문에서 찾는다. 하지만 바론의 눈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한 1420년대 이전으로 향한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15세기 전후 밀라노와 피렌체 간 건곤일척의 대결이었다. 

당시 밀라노는 잔갈레아초 비스콘티(1351~1402)라는 야심 찬 참주의 통치 아래서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북이탈리아(롬바르디아)의 도시국가를 차례로 굴복시킨 밀라노는 중부 이탈리아(토스카나)의 주축 국가인 피렌체와 20여 년의 세월 동안 대결했다. 당시 양상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등에 업은 밀라노의 노련한 외교와 압박으로 피렌체가 점차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었다. 한때 피렌체와 동맹관계이던 베로나, 파도바, 페라라, 만토바, 페루자, 볼로냐 같은 도시국가가 하나 둘 밀라노의 속국이 되면서 공화정의 양대 버팀목이던 베네치아마저 외면해 피렌체는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다. 

그런 정치적 국면에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에 대한 일대 인식 전환이 발생한다. 그 전까지 피렌체는 브루투스보다 카이사르를 높이 샀다. 피렌체의 자랑인 단테와 페트라르카 때문이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카이사르는 연옥에 머무는 반면, 그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더불어 지옥을 떠도는 것으로 그렸다. 페트라르카는 젊은 날에는 공화정 시대를 로마 최고 전성기로 규정하며 후대의 로마황제를 맹비난했다, 말년에는 황제정의 씨앗을 뿌린 카이사르를 보편군주제를 확립한 영웅으로 그렸다. 젊은 시절에는 공화주의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몽군주만이 이탈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 

“중세적 보편군주관의 산물입니다. 유일신이 하늘나라를 주재(신의 군주정)하듯 지상에서도 역시 한 명의 군주가 통치하는 것(인간의 군주정)이 신의 섭리에 부합한다는 거죠. 피렌체 트레첸토(1300년대)의 이런 전통은 콰트로첸토(1400년대)가 되면서 카이사르를 비판하고 브루투스를 영웅화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브루투스는 마르쿠스 브루투스만 말하지 않습니다. 초기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공화주의의 영웅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더해진 ‘이중의 브루투스’입니다. 밀라노의 전제주의에 맞선 공화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의 산물이라는 것이 바론의 분석입니다.”


시오노 나나미 vs 한나 아렌트

'암브로초 로렌체티의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알레고리‘ 중 나쁜 정부(전제정)를 묘사한 부분(위)과 좋은 정부(공화정) 부분. [영국 랭커스터대 러스킨 도서관]

이런 바론의 분석에 따르면 ‘카이사르-밀라노-제국주의-왕당파’가 한 축을 이루고 그 반대편에 ‘브루투스-피렌체-공화주의-자유파’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이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하다. 카이사르 같은 탁월한 영웅이 등장해 국가를 이끄는 것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카이사르파는 21세기에도 막강한 세력을 과시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 아베 신조 같은 스트롱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 찬가를 부르며 로마제국의 등장이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강변하는 시오노 나나미 같은, 영웅사관에 젖은 역사저술가에 포획된 사람들이다. 

한스 바론은 그 대척점에 선 역사학자다. 바론은 르네상스 시대 창조력의 원천을 자유와 자치의 가치에 눈뜬 피렌체 공화주의에서 찾는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자의적 지배를 받는 것보다 인민의 공동통치를 우위에 둬야 한다고 역설한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찬가’와 ‘대화’를 자신의 책에서 중심 텍스트로 고른 이유다. 

콰트로첸토 지식인의 선봉장이던 브루니는 브루투스와 키케로만 부활시킨 것이 아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명상적 삶을 운위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 중세적 가치관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공동체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헌신하는 ‘활동적 시민의 삶(vita activa civilis)’까지 부활시키는 데 일조했다. 

“국내에선 휴머니즘을 인문주의로 번역합니다만, 르네상스 시대 휴머니즘이란 그리스·로마시대 고전 내지 원전에만 투철한 사상, 태도를 지칭했습니다. 그러다 콰트로첸토 시대가 되면서 로마 공화정 당시 ‘활동적 시민의 삶’의 의미에 대해 눈뜨게 됩니다. 이탈리아 휴머니스트 가운데 브루니는 최초로 그리스어 원전에 접근한 학자였습니다. 인간은 정치에 참여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직시하게 된 거죠. 바론이 말한 ‘시민적 휴머니즘’의 핵심입니다.” 

이는 바론과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사상과 공명한다. 바론보다 6세 아래인 아렌트는 고대 아테네와 로마 공화정에 참여한 시민들의 참여적 정치관을 현대에 부활시켜야 파시즘,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바론 전공 역사학자와 아렌트 전공 정치학자 간 공통된 의견입니다. 비슷한 체험을 한 동시대인으로서 공명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르네상스를 개인주의의 발화로 본 부르크하르트는 개인주의 성장이 가져올 핏빛 결과를 예감한 듯 ’미친 군홧발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르네상스 연구를 통해 부르크하르트가 근대의 질병을 예감하고 진단했다면, 바론은 그 질병의 치유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보다 관계를 중시한 르네상스

피렌체 공화국의 자부심이 표현된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공화국의 자부심이 표현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그렇다면 이런 바론 테제가 과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다비드(다윗)는 예술작품에서 도시국가 피렌체를 상징하는 단골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골리앗이 함께 등장합니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제목을 모르면 누군지 알기 힘듭니다. 투석기를 어깨에 메고 골리앗과의 전투를 기다리는 전사로만 그려졌으니까요. 그 대신 적이 누가 됐든 결연히 맞서 피렌체의 공화정을 지키겠다는 저항과 독립의 정신이 넘쳐흐릅니다. 4m 넘는 이 작품이 시청사였던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 앞 광장에 있었던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공화정을 유지했던 시에나 시청사의 벽화로 그려진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알레고리’도 있다. ‘일인지배의 통치’를 나쁜 정부로, 민중적 합의에 기초한 공화정부를 좋은 정부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중세의 보편 군주론에서 벗어나 공화주의 정치관에 기초한 미술품으로 꼽힌다.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 [청주=지호영 기자]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 [청주=지호영 기자]

임 교수는 르네상스의 정치적 측면만 강조하진 않는다. 그가 집필 중인 2권 ‘르네상스 정치사상사’와 이후 번역 예정인 3권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은 르네상스 시대가 창출한 다양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15세기를 거치면서 피렌체 역시 메디치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탈리아 지식인은 군주가 지배하는 궁정의 조신, 즉 궁정인으로 변하게 된다. ‘궁정인’을 쓴 카스틸리오네가 대표적이다. 

“인간은 단독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죠. 그걸 비단 정치 영역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6세기가 되면서 군주와 궁정인의 세련된 관계가 중시되는데 이 문화가 17, 18세기 유럽 절대왕정기 궁정문화로 발전되고, 여기서 서구 문명(civilization)의 징표가 되는 공공윤리(civility)가 확립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르네상스는 지금 현재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픈 내용이 있다. 밀라노의 침공으로 풍전등화 신세가 된 피렌체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1402년 9월 밀라노 공작 비스콘티가 이탈리아를 휩쓴 흑사병에 걸려 숨지면서 급작스럽게 종식됐다. 페스트균이 피렌체를 구하고 르네상스 전성기를 연 것이다.






주간동아 2020.03.20 1231호 (p46~49)

청주=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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