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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나 홀로 여행은 인생의 블록버스터

한의사 정이안이 들려주는 힐링 테마 여행…스트레스 해소와 재충전 위해 지금 떠나라

나 홀로 여행은 인생의 블록버스터

나 홀로 여행은 인생의 블록버스터

부탄 국민의 불심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큰부처를 향해 오체투지 하는 청년들.

정이안(정이안한의원 원장) 씨는 20년째 일 년에 두 차례 여행을 떠난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 설과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해 7박8일 또는 8박9일 스케줄을 짠다. 그렇게 20년간 37곳을 다녀왔다. 마흔 번을 채우지 못한 이유는 “2005년부터 2년간 MBA를 다녔는데 방학 때마다 해외연수가 있어 따로 개인 여행 스케줄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의원에 의사가 저 혼자라 장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 그러니 막연하게 여행이나 가볼까라는 생각으론 절대 못 가죠. 개원 초기엔 야간 진료, 토요일 진료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악착같이 일해서 짬을 냈어요. 금요일 밤 비행기로 출발하기 위해 오후 6시까지 진료하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업무를 처리한 후 곧장 비행기를 타기도 했죠.”

떠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이쯤 되면 일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지 여행을 위해 일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사실 그는 여행이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병원을 포기했다.

“학창시절부터 여행이 꿈이었어요.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가 1980년대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 설산, 당나귀, 야크, 고산마을 이야기를 들려줘서 나도 ‘언젠가는’ 가겠다는 꿈을 꿨죠.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거죠. 의사는 발이 묶일 수밖에 없거든요. 더욱이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할 때는 여행은커녕 하루도 내 마음대로 쉴 수가 없었어요. 개원을 결심했죠.”



5월 정 원장은 20년간의 여행 기록 중 열두 나라 이야기를 모아 ‘떠나는 용기’(이덴슬리벨)라는 책을 펴내고, ‘행복의 땅 부탄’이라는 사진전도 열었다.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치유로서의 여행이다.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여행지에 홀로 있으면 모든 것이 비워지고 홀가분해지면서 행복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마음속 가득 기쁨을 채워 돌아오면 떠나기 전에는 곁에 없었던 새로운 것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내 주위를 채우는 것이 신기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행 후 바뀐 것들은 내 주변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계획한 대로 밀어붙였다. 출국 직전까지 산적한 일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막상 비행기를 타면 고민들은 다 사라졌고, 오히려 귀국길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떠나면,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마음의 이정표를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지금까지 매번의 여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음을, 인생의 스승이었음을 인정한다.’

혼자 여행할 때 최대 고민은 ‘안전’이다. 특히 치안이 불안한 지역은 숙소와 차편 등 안전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조차 여행의 기대감을 이기지는 못한다.

“새로운 여행지를 고르면 어머니는 걱정부터 하는데 아버지는 ‘아, 재밌겠다’고 하세요. 그 순간 두려움이 싹 사라지죠.”

그에게 나 홀로 여행의 장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뜸 “말을 안 해도 되는 것”이란다.

“옆 사람과 얘기를 안 하면 화난 줄 알잖아요. 혼자라면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생각할 시간도 많죠. 또 혼자 가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훨씬 많아요.”

한솥밥 먹으면 누구나 친구

나 홀로 여행은 인생의 블록버스터

네팔을 여행하는 동안 거대한 석탑에서, 길거리 노점상 엄마의 등에 업힌 아이의 이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혜의 눈’. 제3의 눈, 영안, 통찰의 눈 등으로도 불리는 지혜의 눈은 인간의 마음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본다고 한다(위). 티베트 조캉 사원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는 여인.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때 일이다. 현지 여행사 소개로 포터를 고용해 함께 페디에서 출발해 첫날밤을 보내게 될 란드룩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은 후 유일하게 전깃불이 들어오는 식당에 모여 다른 여행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각자 포터를 데리고 제각각 도착했어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인 만큼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다음 날 오후 늦게 시누와에 도착했는데 포터가 급체로 고생하고 있는 다른 포터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정 원장이 비상용 침을 놓아주고 환약을 먹였더니 환자 상태가 금세 호전됐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 출발 준비를 하는데 전날 밤 침을 맞은 환자가 온 동네에 소문을 내는 바람에 숙소 식당에 새벽부터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병원이 있는 도시까지 가려면 걸어서 하루 이상 산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니 모처럼 의사가 왔을 때 치료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주민과 여행자, 가이드와 포터 등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침을 놓느라 출발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계단과 계곡과 구릉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말 못 할 성취감이 밀려왔다. 엿새 동안의 트레킹을 마치며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트레킹이 끝나는 곳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두 발로 움직여서 가보는 것이다. 스스로를 끝없이 격려하면서 말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네팔 카트만두에서 여유 시간을 보내다 무심코 펼쳐든 신문기사에서 중국 베이징 서역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달리는 칭짱(靑藏) 열차가 개통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당장 베이징 서역으로 가서 티켓을 구매했다. 그런데 평균 해발고도 4500m, 가장 높은 곳은 5072m(탕구라산)에 이르는 길을 기차로 48시간 달리는 동안 얻은 것은 고산병이었다. 반복되는 구토로 탈수 증상이 오고, 두통과 발열로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기차가 라싸에 도착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달려간 곳은 병원 응급실. 고압 산소마스크를 쓰고 링거를 꽂은 채 응급실 침대에 누웠는데 우연히도 옆 환자 두 명이 다 한국 여성이고 동갑내기였다. 이후 세 사람은 한 팀이 돼 티베트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15년 전 태국의 옛 수도 치앙마이에 갔을 때만 해도 정 원장은 여행 초보자였다.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까지 이어지는 산악지대에는 약 100만 명 넘는 고산족이 거주한다. 이 마을들을 방문해 고산족과 만나고, 코끼리를 탄 채 숲길을 걷고, 강에서 뗏목을 타는 ‘고산족 트레킹’이 유명했다. 대뜸 2박3일짜리 트레킹 코스를 신청했다. 30도가 넘는 고온에 습한 열대우림을 하루 5시간씩 걸으니 땀투성이에 녹초가 됐다. 그런데 마침 작은 폭포가 있는 웅덩이가 나타났다. 다들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드는데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는 물가에 앉아 발만 텀벙거려야 했다. 태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그가 한 일은 수영 강습 신청이었다.

나 홀로 여행은 인생의 블록버스터

뉴질랜드 남섬 해변. 거센 해풍에 바닷가 방풍림이 육지 쪽으로 휘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행은 평생 학교

“지금은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지만 원래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돼요. 관광이 아닌 체험 여행은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재밌거든요. 수영, 스키, 골프 다 여행을 계기로 배웠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혼자 평화롭게 골프를 쳐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실제 일본 홋카이도에서 앞뒤 팀 간격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대통령 골프’를 친 적도 있어요.”

명상으로 유명한 인도 푸네에 다녀온 뒤 요가를 제대로 배워보기로 해서 지금은 강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들어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매일 밤 클래식 콘서트를 찾아다니다 문득 어린 시절 배운 성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귀국하자마자 매주 일요일 저녁 한 시간씩 성악 레슨을 받은 지 5년이 됐고 얼마 전 동호인들과 함께 음악회를 했다.

여행을 통해 취미 가짓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성격까지 바뀌었다. 활달하고 말투도 시원시원한 정 원장을 보면서 한때 남한테 말도 잘 못 건네는 새침떼기 소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디 가서 밥 굶기 딱 좋은 성격이었죠. 그래서 저는 청소년들에게 여행을 권해요. 황당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면서 인생을 배울 수 있거든요.”

정 원장은 5년 전 그동안 쌓인 원고들을 정리해 책을 펴낼 준비를 하다 보니 사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길로 바로 사진작가 박상훈 씨를 찾아갔다. 이후 여행을 다녀오면 찍은 사진을 점검받고 다음 촬영에 코칭을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며 어느새 10번째 여행을 마쳤다. 사진전을 열고, 책을 펴낸 것이 그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살 수 있느냐고. 그의 답은 간단하다.

“필요할 때 머뭇거리지 말고 당장 시작하세요. 그리고 틈틈이, 꾸준히 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정이안의 여행 팁

완벽한 준비란 없다…A4 용지 2장이면 충분


△여행지 정하기 : 여행을 다녀온 뒤 다음엔 어디로 갈까를 생각할 때가 가장 즐겁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지만 그때그때 관심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정해놓은 버킷리스트 같은 곳은 없다. 여행을 통해 다음 여행에 대한 영감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설 연휴에 처음 다녀온 부탄이 무척 좋아서 추석 연휴 때 다시 갔다. 첫 번째와 같은 가이드, 운전사와 동행하고 코스만 바꿨다. 산을 넘다 자동차 축이 망가져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래도 후회 없는 여행이었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본 뒤 문득 쿠바에 가보고 싶어져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다녀왔다.

△사전 준비 : 숙소와 항공권만 마련하면 여행 준비는 절반이 끝난 셈. 목적지를 빨리 정할수록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다. 이후 출발 직전까지 관련 책과 영화를 보며 공부한다.

△여행 일정 짜기 : 일정은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는다. 꼭 봐야 할 것을 하루에 한 가지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해결한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먹을지는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간혹 같은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나 기차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정보를 얻어 일정을 변경하기도 한다. 7박8일 동안 숙소는 한 번 정도만 옮긴다.

△여행 준비물 : 지갑과 스마트폰, 관련 여행서. 국내 여행은 달랑 지갑만 들고 간 적도 많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해결한다. 주로 숙소 주인아주머니 신세를 진다. 젓가락 하나 들고 주인집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는 일도 흔했다. 그렇게 웬만한 국내 섬은 다 가봤다.

△필수 휴대품 : A4 용지 2장. 한 장에는 여행 일정과 비행기 시간, 숙소와 연락처 등을 기록하고 다른 한 장은 비상연락망을 적은 뒤 가지고 다닌다. 한국의 가족에게 관련 정보를 남겨둔다.




주간동아 2015.06.22 993호 (p68~70)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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