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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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의 교훈 ‘긍정의 毒’

최악의 시나리오가 최상의 시나리오보다 유용…파탄 가능성 높으면 당장 그만두라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5-06-22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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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초동대응 실패를 두고 정부 당국이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정부 당국의 초동대응을 보면서 ‘낙관주의의 함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환자 파악이 너무 늦었고, 파악 후에도 관리망을 너무 협소하게 짰다”고 한 말에서 의도치 않은 낙관주의의 함정이 엿보인다.

    극단적 사고방식의 유용성

    개인 차원에서 성격이 낙관적인 사람은 비관적인 사람에 비해 인간관계가 좋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어려움이 닥쳐도 잘 헤쳐나가는 경향이 있다. 행복감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심리학에서 말하는 효과적 낙관주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성격을 평가할 때 쓰는 것보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최상을 기대하고 최악에 대비하는 비상 계획이 있을 때 그 낙관주의가 효력을 발휘한다고 본다. ‘최상의 기대’와 ‘최악에 대비한 비상 계획’, 이 두 가지의 조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상의 기대에 비해 최악에 대비한 비상 계획은 소홀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최악의 상황이란 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 데다 부정적인 주장은 경고 목소리를 담고 있어 주류로부터 배격되기 십상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국가나 사회의 위험을 알린 위대한 선각자들은 늘 소수파였으며, 반대편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예가 그렇지 않았던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기업 같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오너나 최고경영자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M·A(인수합병)에 임원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그들이 강력한 제왕적 혹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최근 진행된 상당수 M·A가 ‘승자의 저주’로 끝난 데는 최상이 아닌 최악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참고로 M·A에 대한 연구들은 전체 합병의 3분의 1 이상은 실패로 돌아가고, 3분의 1 정도는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투자에서도 이런 현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집을 사든 주식을 사든 최상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최상의 결과는 높은 수익률이다. 복권을 사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확률적으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지만 한 번쯤 최상을 기대하고, 그것으로 심리적 위안을 삼는다. 반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 투자하면서 최악을 생각하는 비관주의를 실천하는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성공 편익-실패 비용 분석해야

    메르스 사태의 교훈 ‘긍정의 毒’

    ELS(주가연계증권)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구조지만, 현실에서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최악에 대비하려면 극단적인 사고방식의 유용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대개 일상에서 직면하는 극단적 사고방식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극우(극좌)민족주의와 이슬람국가(IS) 같은 원리주의자처럼 민족이나 종교 등의 이즘(ism)이 극단적 사고방식과 결합한 경우다. 이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극단적 아이디어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극단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가까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극단적 가정이 의사결정이나 행동 계획에 초깃값으로 설정될 경우 유용한 분야가 있다. 대표적으로 인간 생명이 달린 항공기나 배 같은 운송 분야, 메르스 같은 질병관리 분야, 그리고 투자나 비즈니스처럼 돈을 다루는 영역이 그러하다.

    그럼 돈의 세계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최악의 상황에 대한 비상 계획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첫 번째 질문부터 살펴보자.

    돈의 세계, 투자의 세계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다름 아닌 돈을 잃는 것이다. 더 최악은 돈을 다 잃었는데도 갚아야 할 돈이 남아 있는 경우다. 투자할 때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이 돈을 전부 날린다면 내 삶, 내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현재 삶이 파탄 날 가능성이 높다면, 당장 그 투자는 그만둬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투자로 인생의 어두운 골목을 배회했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한 번의 파국은 돌이키기 어렵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공 편익과 실패 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심적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균형감을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에게 주된 수입 원천인 일해서 버는 돈에 대한 비상 계획도 있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갑자기 구조조정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일 것이다. 여기에 재정적 소비계획도 마련해둬야 한다. 다른 일자리를 찾는 동안(약 6개월에서 1년) 쓸 생활비를 확보해놓고 있어야 한다.

    투자 세계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시장에서 기각되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때가 많다. 최근에는 ELS(주가연계증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ELS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구조인데, 현실에선 일정 수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도 대한민국 대표기업이 말이다. 이처럼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게 투자 세계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왕왕 거짓 희망으로 판명된다. 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생존을 보장한다. 무엇을 하든 일단 죽지 말아야 한다. 죽지 않아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패자 부활전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사람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사람의 수익률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생명, 돈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최선의 시나리오보다 더 유용하다. 메르스 사태가 투자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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