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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기자의 일본 종단 다이어리 ③ 삿포로~무라카미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들르는 곳마다 한류와 한류 드라마 팬 만나

  • 장원재 동아일보 기자 peacechaos@donga.com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여행을 시작하고 400km 넘게 달려 삿포로에 도착한 후에야 자전거 포크(붉은색 부분) 방향이 반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삿포로에서 황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일본 최북단 소야곶에서 자전거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고교 동창 한 명이 ‘포크 방향을 확인해보라’는 댓글을 단 것. 한 후배도 같은 글을 올렸다. 포크는 자전거 바퀴를 고정해 핸들과 이어주는 부분이다.

확인해봤더니 공항에서 급하게 조립하면서 실수를 했다. 포크 방향이 반대가 되면 자전거의 균형을 잡기 힘들고 타이어 홈이 진행 방향과 반대로 굴러가기 때문에 속도도 내기 어렵다. 그것도 모르고 400km를 넘게 왔으니…. 끝까지 모르고 완주했다면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일이었다. 황급히 포크 방향을 고치고 삿포로를 떠나 오타루로 향했다.

7월 14일 찾은 오타루는 인구 13만 명이 채 안 되는 홋카이도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연간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오래된 창고와 가스등이 늘어선 운하의 야경, 유리공방과 오르골 전시장으로 유명한 거리가 오타루의 명물이다. 하지만 오타루가 유명한 이유는 풍경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있다.

오타루는 먼저 영화 ‘러브레터’의 도시다. 여주인공이 눈 덮인 산에 올라 “오겐키데쓰카”를 외치는 장면은 오타루의 덴구산 중턱에서 찍었다. 필자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지만 여름이어선지 영화 속 풍경과 달라 야경만 보고 내려왔다. 그 밖에 도서관, 학교, 병원 등 영화의 주요 장면이 모두 이 도시에서 촬영됐다.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와 김범수의 ‘Memory’ 뮤직비디오 배경도 이곳이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 쇼타의 고향도 오타루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다른 관광객들처럼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에서 이영애가 일하던 오타루 오르골당에서 사진을 찍고, ‘초밥왕’의 고향에 온 기념으로 회전 초밥집을 찾았다. 날은 더웠지만 거리는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였다. 이것이 문화의 힘 아닐까.



일본 여행에 나서기 직전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대담에 기록 담당으로 배석한 적이 있다. 당시 아사히신문 주간은 “문화가 정치를 상대화하면 대립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쉬운 말로 하면 문화를 통해 서로의 처지에서 상대를 바라볼 때 싸울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일본과 한국에 더 많은 오타루가 생겨야 하는 이유다.

자전거를 가로막는 해풍

오타루에서 하코다테까지 오는 이틀은 지옥과 천국으로 갈렸다. 첫날 온천마을 오샤만베로 오는 길은 말 그대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산봉우리를 3개 넘었는데 하나같이 ‘끌바’(자전거 끌기를 뜻하는 속어)를 하지 않고 오를 수 없을 만큼 경사가 심했다. 동해를 끼고 달리는 길은 해풍이 너무 심해 페달을 밟아도 자전거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터널이었다. 산을 넘는 코스이다 보니 중간중간 터널이 있는데 가장 긴 곳은 길이가 3.8km나 됐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전조등을 켰는데도 중간쯤 가니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트럭이 지나갈 때는 귀가 울렸고, 지나간 후에는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10분 넘게 터널을 지나려니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어떤 터널은 갓길이 중간에 사라져 어쩔 수 없이 차선 중앙을 달려야 했다. 따라오는 차가 동전만한 후미등을 잘 봐주길 기원하면서. 이날 터널 14개를 통과했는데 길이를 다 합치면 10km가 훨씬 넘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봉우리를 넘기 전 사진을 찍으려고 자전거를 멈추다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패니어(자전거용 짐가방)를 고정하는 고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고리 하나로만 고정한 채 그물망을 묶고 불안한 마음으로 나머지 구간을 달렸다. 천신만고 끝에 오샤만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녹초가 돼 있었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반면 다음 날 오샤만베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길은 정반대였다.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길은 평탄했고 터널과 봉우리도 거의 없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날도 덥지 않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출발할 때 물병을 놓고 나왔는데 여관 주인 할아버지가 슬리퍼를 신은 채 전속력으로 달려와 가져다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필자가 드린 전단지를 읽었는지 “먼 길 가야 하는데 몸 건강히 가라”며 뒤에서 연신 손을 흔들었다.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진짜 필요 없는 물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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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는 유리공예로 유명하다. 관광객을 위해 직접 눈앞에서 제작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코다테에 도착하고는 자전거 가게부터 찾았다. 다행히 자전거에 맞는 패니어 한쪽을 살 수 있었다. 예전 것보다 약간 작았지만 700km 넘게 달리며 짐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을 절감한 터였다. 욕심 때문에 가져왔지만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해 도쿄에 있는 후배 집으로 보냈다. 거의 본 적 없는 지도책(일본 앱스토어에서 받은 자전거 내비게이션 앱은 정말 훌륭했다), 명함 한 통(나눠줄 일도 거의 없는데 왜 두 통이나 가져왔는지), 노트북용 무선마우스(터치패드 쓰면 되지)…. 옷도 자전거복과 평상복 한 벌만 남기고 다 보냈다. 5kg 가까이 덜어냈더니 자전거가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코다테 숙소에선 한국 드라마 ‘이산’과 ‘동이’를 좋아한다는 주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는 전단지를 보고 ‘좋은 취지’라며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자전거여행자. 일본어가 뛰어나고 일·한 우호를 원하는 기자입니다. 북해도를 끝내고 지금부터 남쪽으로 향합니다’라며 광고도 해줬다.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조성모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에서 이영애가 일하는 곳으로 나왔던 오타루 오르골당 본관.

그다음 날 하코다테 수산시장에서 아침을 먹고 혼슈 아오모리로 향하는 배를 탔다. ‘굿바이, 홋카이도!’ 손을 흔들고 객실에 누워 있는데 한국어가 들렸다. 가보니 승객들이 모여 일본 위성방송에서 틀어주는 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었다. 일본 근저에 퍼진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는 할머니를 만나 같이 드라마를 보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혼슈에 도착한 날 오후에만 80km를 달려 아오모리현을 통과하고 아키타현에 도착했다. 아키타현은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얼른 산악지형을 통과하고 싶은 마음에 다음 날 새벽길을 떠났는데 휴게소에서 일본의 ‘철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제지회사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나카타 키이치로(74) 씨는 14년 전 정년퇴직 후 ‘체력이 되는 한 모험을 즐기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미국, 호주, 대만을 혼자 자전거로 여행했다. 킬리만자로와 에베레스트 산, 안나푸르나를 등반했으며 철인3종 경기도 3번 완주했다니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지금은 자전거로 500km 가까운 거리를 여행 중인데 8월 열리는 철인3종 경기에 나가기 위한 준비 성격이었다. 그는 “은퇴할 때만 해도 영어를 못 했는데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영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아키타에서 만난 ‘철인 할아버지’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오타루에서 온천마을 오샤만베까지 이어진 길은 시련의 연속 이었다. 오르막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끌고가는 모습.

알고 보니 이날 할아버지와 필자의 목적지가 같았다. 휴게소에서 헤어질 때 어디까지 가느냐고 해서 유리혼조까지 간다고 했더니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145km에 달하는 거리를 하루에 달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필자가 도착한 지 30분 만에 호텔방 전화가 울렸다. 나카타 씨였다. 필자로서도 여행 후 가장 긴 거리를 주행한 것이었는데 정말 놀랄 만한 체력이었다.

같이 맥주 한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나카타 씨는 일본의 살인적인 더위에 대처하는 법 등 각종 여행 노하우를 전수했다. 고마운 마음에 도와줄 게 없느냐고 했더니 “자전거를 타고 한국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4대강 자전거길을 안내했다.

혼슈 북부 지역에선 일본인의 친절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길가에 앉아 쉬고 있을 때는 건너편에서 아주머니 한 명이 음료를 들고 뛰어와 건넸다. 전봇대 옆에 잠시 서서 동행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91세 할머니가 “타이어 펑크가 났으면 도와주겠다”며 손수레를 밀고 다가와 놀라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감정도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편의점에서 만난 나카지마 아키오(55) 씨는 전단지를 읽고 “내용이 좋다. 주변 사람들에게 복사해 나눠줄 것”이라며 “한국에 두 번 갔는데 아주 좋았다. 양국이 힘을 합쳐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다. 야마가타현에서는 숙소 여주인이 음료수 두 병을 들고 방에 찾아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달라”며 악수를 청했다.

14개 터널…콧노래 주행…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네

배를 타고 홋카이도를 떠나면서 찍은 사진. 홋카이도는 광활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멋진 여행지다.

야마가타의 한국 며느리들

일본 첫 ‘고려관’…시집 온 10여 명이 담근 김치 명성


일본 혼슈 북부 산간지역인 야마가타(山形)현. 항구도시인 사카타에서 기차를 타고 40km가량 내륙으로 들어가면 인구 6600명의 도자와 마을이 나온다. 이 작은 마을을 찾아간 것은 일본에서 처음 세워진 한류 테마파크 ‘고려관’ 때문이다.

야마가타현은 이름처럼 산이 많고 외진 지역이라 지역 총각들이 배필을 찾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국제결혼이 일찍 시작됐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까지 발 벗고 나선 결과 1980~90년대 상당수 한국 여성이 이곳에 정착했다.

도자와 마을에도 한국 여성 10여 명이 시집을 왔고, 이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김치가 마을 특산품이 됐다. 여기에 지역 명소를 만들려는 지자체의 의도가 결합해 1997년 ‘고려관’이 탄생했다. 11만8800㎡(약 3만6000평)에 고려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며 한국 식당, 한국 전통문화 체험장, 한국 특산품 판매점 등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야쿠와 유리코 씨는 “성수기에는 하루에 300~400명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매영(54·일본 이름 아베 우메코) 씨는 1990년대 초반 아는 언니 소개로 야마가타현에 시집온 한국인 며느리다. 김치를 만들어 시댁 친척들에게 나눠줬는데 평가가 좋자 용기를 얻어 96년 ‘우메짱 김치’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지금은 김치공장 1곳, 식당 2곳, 판매점 2곳을 운영하며 26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사장님’이자 지역 유지다.

김씨는 “야마가타현에만 한국인 결혼이주자가 700여 명 있다”며 “5년 전까지도 드문드문 시집온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인 며느리 중에는 김씨 외에도 유서 깊은 여관의 안주인이 되는 등 성공 사례가 적잖다. 소수지만 잘못된 기대를 안고 왔다가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이혼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주간동아 948호 (p64~66)

장원재 동아일보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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