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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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 정 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동네

부천 원미동의 소박한 밥상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06-23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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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음식 정 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동네

    경기 부천시 원미동 조마루 고개.

    경기 부천시 원미동(遠美洞)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였다. 양귀자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로 많은 사람이 원미동을 기억하고 있다. 원미동은 주변 원미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산을 중심으로 언덕들이 있는 이 아름다운 동네는 서울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 많이 정착했다.

    원미산으로 가는 고개 조마루에 사람이 몰려들고 원미구청이 들어서자 상가들이 생겨났다. 조마루로 가는 언덕 입구 사거리에는 거대한 감자탕집이 두 군데 있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자탕 체인점 ‘조마루해장국’본점과 ‘청기와뼈다귀해장국’ 본점의 긴 건물이 길을 마주하고 서 있다.

    서민에게 인기 있는 감자탕은 감자가 들어 있는 감자탕과 감자가 없는 뼈다귀해장국으로 나뉜다. 살코기를 발라낸 뼈를 저가에 구매해 국을 끓여 먹는 방식은 한국인의 탕 문화 산물이다. 쇠뼈와 그 부산물이 설렁탕으로 재탄생했다면, 돼지뼈를 활용한 것이 감자탕이다. 오랫동안 국내산 돼지뼈와 수입산 돼지뼈는 구별이 쉬웠다. 국내산 돼지뼈에는 살코기가 거의 없고 외국산 돼지뼈는 살코기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감자탕용 뼈를 따로 만든다.

    ‘청기와뼈다귀해장국’은 ‘조마루해장국’보다 유명도에서 조금 밀리지만 1988년 ‘조마루해장국’보다 1년 먼저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 안에는 ‘뼈해장국’‘뼈전골’ 같은 메뉴가 붙어 있다. 돼지뼈 원산지는 덴마크나 호주다. 뼈전골을 시키면 풍성한 돼지뼈 위에 들깨, 다진 마늘, 양념장, 깻잎과 우거지가 수북이 쌓인 전골이 나온다. 그 속에 감자는 없다. 국물은 된장을 기본으로 한다. 구수한 된장국물에 뼈와 채소, 양념이 섞이지만 다른 감자탕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고 편하다.

    ‘청기와뼈다귀해장국’에서 조마루 언덕을 몇 발자국 오르면 사람들이 줄을 서는 식당이 나온다. 8년 전 개업한 화교 중식당 ‘태원’이다. 50년간 중화음식을 만들어온 고수의 손맛을 보려고 11시 30분 식당 문을 여는 순간부터 사람이 들어차고 이내 문밖으로 줄을 선다. 테이블이 적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중화요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인기 있는 요리는 ‘옛날짬뽕’이다. 보통 백짬뽕이라 부르는데 신선하고 푸짐한 해물 밑으로 하늘거릴 정도로 얇은 최상의 면발이 닭과 돼지뼈를 섞은 하얀 국물 속에 담겨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짬뽕국물은 지금처럼 붉은색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짬뽕이란 말을 사용한다. 짬뽕의 원조 나가사키 짬뽕도 돼지뼈와 닭으로 우린 하얀 국물이다. 하지만 한국의 하얀 짬뽕은 월남고추가 들어가 진한 고깃국물맛과 함께 매콤하다. 진한 국물과 매콤한 면발이 정교한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정확하고 섬세한 맛을 낸다.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이 더해진 일반 짬뽕은 ‘오징어짬뽕’으로, 오징어 특유의 시원함이 더해진다. 볶음밥도 인기 메뉴다. 불기운이 살아 있는 고슬고슬한 밥과 달달한 짜장의 조화는 한국화한 중국 음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볶음밥 위 두툼한 달걀프라이는 센 불에서만 가능한 중국식이다. 작은 실내에는 원탁 3개와 사각 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원탁은 모르는 사람들이 합석하기 좋은 구조다. 저녁이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요리를 먹으려고 즉석에서 원탁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다. 원미동 조마루에 가면 사람 냄새 나는 식당을 만날 수 있다.

    맛있는 음식 정 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동네

    경기 부천시 원미동에 자리한 ‘청기와뼈다귀해장국’의 뼈전골, 중식당 ‘태원’의 볶음밥과 옛날짬뽕(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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