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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l 조두순 사건 5년 01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인터뷰 | 끔찍한 폭력피해 후 5년 나영이 아버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2012년 9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성범죄자 처벌 강화 촉구 집회에서 한 시민이 생각에 잠겨 있다.

“아이가 올해 중학교 2학년이에요. 요즘 ‘중2병’이라는 말이 있죠. 우리 애도 한창 그런 증세를 보여서 눈치를 많이 보고 있어요.”

아이 근황을 묻자 ‘나영이’ 아버지는 멋쩍은 웃음부터 지었다. “집에 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뭘 물어봐도 ‘응’ ‘아니’밖에 안 한다”는 이 소녀는 우리가 아는 나영이다. 2008년 겨울 등굣길에 끔찍한 폭력을 당했던 아이. 이제는 가해자 이름을 붙여 ‘조두순 사건’이라 부르는 그 사건 피해자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이는 어느새 열다섯 살이 됐고, 또래 아이들처럼 사춘기를 겪고 있다.

“주변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 실감”

최근 나영이라는 이름이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5년 전 사건을 다룬 영화 ‘소원’(이준익 감독)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원이는 술 취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크게 다친다. 대수술 끝에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지만 배변주머니를 달고 살아가게 된다. 나영이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이 영화는 관객 수 26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영이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마주 앉은 아버지는 “이준익 감독이 영화 찍기 전 나를 만나러 왔더라. 바로 이 자리에서 세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며 “우리 가족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영화 제작에 동의했다. 따뜻한 작품을 만들어줘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나영이 아버지의 말대로 영화는 따뜻하다. 소원이의 이웃들은 사건 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를 다시 웃게 하려고 힘을 모은다. 아빠의 직장 동료와 그의 아내, 소원이 학교 학부모와 친구들, 심지어 경찰까지 소원이를 둘러싼 모든 이가 나눠주는 배려와 사랑 안에서 아이는 마침내 밝은 웃음을 되찾는다. 아버지는 “많은 사람이 그 영화를 본 뒤 ‘한 편의 동화 같다’거나 ‘판타지’라고 하더라. 영화를 보면서 나도 새삼 나를 둘러싼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여전히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5년 전 사건 당시 나영이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외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안과 치료를 하면서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 법원은 “검찰이 (나영이를) 소환조사 하면서 성폭력범죄 전담 검사를 배치하지도 않고 영상물 녹화장치 조작 미숙 등으로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아동에게 2시간에 걸쳐 4번씩이나 피해 사실 진술을 반복하게 했다”며 국가 배상 판결을 내렸다.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2009년 9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나영이 가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나영이는 네 번에 걸친 검찰 진술 뒤 법원에 나가서 또다시 증언을 해야 했다. 그토록 모진 재판 끝에 범인에게 내려진 벌은 징역 12년.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는 “그 시절 몸이 채 회복되지도 않은 아이를 데리고 경찰, 검찰, 법원을 다니며 행정기관의 몰이해와 무배려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때마다 우리가 다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건 주위의 보통 사람들”이라고 했다. 특히 “아이가 다니던 학교 교장·교감 선생님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고 떠올렸다.

“사건이 난 뒤 경찰이 학교에 왔다 갔다 하고 기자들도 오가니까 소문이 자꾸 나잖아요. 그때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대요. ‘나영이가 우리 학교에 다니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우리 학교 근처에서 일어난 걸 보면 그 아이가 우리 주위에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너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라도 들으면 얼마나 상처를 받겠느냐. 우리 학교에서는 더는 그 사건에 대해 말하지 말기로 하자. 학교 밖에서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모두 조심하자’고요.”

교감과 각 반 담임교사도 학부모 모임과 조회 및 종례 등을 통해 여러 번 주의를 줬다. 술렁임은 곧 멈췄고 아이들은 나영이가 누군지 구태여 알려 하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아이들은 보이지 않게 친구를 도왔다. 아버지의 얘기다.

“사건이 난 뒤 한동안 치료를 받느라 아이가 학교에 못 갔어요. 웬만큼 몸을 회복한 뒤 오랜만에 교실에 가니까 반 친구들이 ‘너 왜 그렇게 오래 안 왔어’ 하고 물었다더군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한 친구가 불쑥 ‘너 그러니까 평소에 엄마가 주시는 반찬 골고루 먹어야지. 편식하니까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잖아’라고 했대요.”

중학교 2학년 정상적인 성장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나영이 가족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 ‘소원’의 한 장면.

몇몇 친구가 “아, 그랬구나”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나영이는 배 아파서 병원에 다니느라 학교를 빠진 걸로 정리가 됐다. 아버지는 “그런 일이 이후에도 몇 번 있었다. 나영이가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 몇몇 친구가 나서서 도와줬다.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행동에서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메시지를 읽고 아이가 무척 든든해했다”고 말했다.

“아마 부모님들이 집에서 잘 말씀해주셨던 게 아닐까 해요. 그분들에게 드러내고 인사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까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가 참 아름다웠다고 했죠. 정말 그랬습니다.”

많은 이의 배려 덕분에 나영이는 구김살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키도 많이 컸다. 아버지는 “지금 159cm에 40kg”이라며 “조금 마르긴 했지만 친구들하고 비교해도 작지 않다”고 활짝 웃었다. 그가 딸의 키와 몸무게까지 공개하며 자랑한 이유는 사고 후 한동안 아이가 자라지 않아 속앓이를 했기 때문이다. 나영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140cm가 채 안 됐다.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아이에게 성장장애가 오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나영이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다. 사고 이후 아이 치료와 뒷바라지에 매달리느라 가계 수입은 더 줄었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던 어느 날 서울 유명 한의원 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영이에게 한약을 지어주고 싶다는 전화였다. 그 원장은 이후 2년간 줄곧 약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분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 덕에 아이가 잘 자라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울산에 사는 김경희 씨 얘기도 했다. 여러 병원을 오가느라 학교 수업을 자주 빠지는 나영이가 걱정된다며 가정용 학습지를 시켜준 이다. 아버지에 따르면 이렇게 아이에게 꼭 필요한 정성을 보내준 이가 많다. 영화 ‘소원’을 제작한 필름모멘텀 변봉현 대표는 야구장 입장권과 아이돌그룹 2NE1 콘서트 표를 선물해 나영이를 들뜨게 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에 다녀온 뒤 한동안 그 얘기만 했다. 옛날에는 ‘아빠’ ‘아빠’ 하고 나를 따라다녔는데 요새는 친구만 좋아한다”며 짐짓 질투를 했다.

“이웃 돕는 어른으로 잘 자랐으면…”

“가슴 따뜻한 이웃들이 무너질 때마다 손잡아줬다”

영화 ‘소원’에서 성폭력 피해 어린이 소원이는 주위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웃음을 되찾는다.

“사실 부모도 잘 모르잖아요. 아이에게 뭐가 필요한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그런데 주위 분들이 알아서 먼저 해주셨어요. 우리 아이를 웃게 해주고, 끔찍한 범죄와 부실한 사회 시스템 때문에 받은 상처를 많이 아물게 해줬습니다.”

아버지의 말이다. 물론 아직 힘든 점도 많다. 나영이는 여전히 5년 전 입은 상해 후유증으로 병원에 다닌다. 심리적 고통도 남아 있다. 사건 당시 나영이의 신경정신과 주치의였던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10월 초 아이를 만난 뒤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진단했다. 나영이는 한동안 중단했던 심리치료를 다시 받게 됐다. 아버지는 “사춘기가 되면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고통받는 자식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이의 도움으로 조금씩 아픔을 치유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든든한 지원군이 버티고 있는 것도 그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한다.

2010년 나영이의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을 해줬던 한석주 연세대 의대 소아외과 교수는 여전히 나영이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아버지는 “얼마 전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두 시간도 안 돼 뛰어오셨더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나영이가 ‘경찰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이승은 경장은 사건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시로 아이와 연락하고 만나며 친언니처럼 돌봐주고 있다. 심리치료를 맡았던 신의진 의원, 나영이 가족의 국가 상대 소송을 도왔던 이명숙 변호사도 여전히 나영이의 ‘친구’다. 아버지의 바람은, 그사이 몸도 마음도 많이 단단해진 딸이 이런 고마운 분들과 함께 이번 고비를 잘 넘기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요리사가 되고 싶다던 나영이는 사고를 당한 뒤 “나처럼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 지난 달 치른 중간고사에서 100점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이가 꼭 의사가 되지는 않더라도 이웃을 돕고 따뜻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계속 잘 돌보겠다”고 했다. 다시 5년이 더 흐르면 나영이는 스무 살이 된다. 그때 아이는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주간동아 913호 (p14~1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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