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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사람 잡는 만성통증

“칼로 살을 베는 고통 차라리 확…수백 번 생각”

원인 불명 통증에 수년간 병·의원 전전 “불청객 천형, 삶이 무너져”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칼로 살을 베는 고통 차라리 확…수백 번 생각”

“칼로 살을 베는 고통 차라리 확…수백 번 생각”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6년간 고생한 김재우 씨가 통증 부위를 가리키고 있다. 상자 안은 다리 통증이 가장 심해졌을 때의 발 모습.

‘아픈 데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때문일까. 이 세상에 권력과 전쟁이 생긴 후부터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 통증을 만들어내는 고문이 자행돼왔다. 아무리 잘 참는 사람도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통증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통증을 평생 달고 사느니 죽는 게 낫다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도 인간에게 통증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것인지를 방증한다.

사람은 흔히 신체 각 부위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장기 또는 조직에 병이 생겨야만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통증 대부분이 그럴 뿐,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아프기도 하고 장기나 조직에 질병이 없어도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거꾸로 장기나 조직에 질병이 생겼는데도 아프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뇌와 신경의 반란

우리 몸은 신체 각 조직이나 장기에 이상이 생기면 문제가 발생했으니 대책을 세우라는 경고신호를 신경세포나 신경조직 등을 통해 뇌에 보내는데 이것이 바로 통증이다. 그래서 신경이 없는 곳은 톱질을 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대표적인 조직이 뼈다. 간에도 신경이 없어 간암 말기가 될 때까지 간 자체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눈에 황달이 생기거나 기력이 없어지고 얼굴이 검게 변하는 것은 간에 병이 들어 대사 작용을 못 한 결과다.

그렇다면 아무런 자극이나 질병이 없는데도 통증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이는 신경전달 체계 자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뇌의 통증 인지 체계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손이 절단돼 없는데도 손이 아프다고 느끼는 경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뇌의 통증 인지 체계가 망가져 극심한 통증에 무디거나 아예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극단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통증은 신체 이상을 뇌에 알리는 중추신경계보다 심장 박동이나 신장 대사 작용, 반사 작용처럼 우리 의지와 무관한 운동에 관여하는 자율신경계(교감신경, 부교감신경) 이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통증 자체가 질환이 된다.



문제는 어떤 자극이나 기저 질환 없이 발생하는 통증 대부분이 만성적으로 지속되고 통증 정도도 극심한 데다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원인 불명의 만성통증이라고 해서 이를 ‘무지(無知) 통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언제 나을지도 알 수 없으며, 오직 아는 것은 통증이 있다는 사실 뿐. 통증 형태나 통증이 생긴 계기, 통증이 생긴 부위에 따라 병명만 부여할 뿐이다.

원인 불명의 만성통증을 앓는 사람은 대부분 우울증, 자살 충동, 불면증 같은 신경정신과적 질환과 증상을 같이 겪는다. 병명을 알기까지 몇 년씩 걸리는 데다 통증이 너무 심하고 언제 통증이 찾아올지도 모르며, 설령 제대로 된 통증클리닉을 찾아 통증 치료와 관리를 시작한다 해도 완치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온갖 병·의원과 사이비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동안 직업을 잃고 가산을 탕진하면서 삶이 무너진다. 그들에겐 자신을 괴롭히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더 큰 고통이다.

만성질환의 대표적 질환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 rome·CRPS), 섬유근육통, 기능성 위장장애, 척추수술 후 통증 증후군 등이다. ‘주간동아’는 대한통증학회의 도움을 받아 이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 또는 환자의 부모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질환에 대해 소개한다. 원인 불명의 만성통증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편견 때문일까. 인터뷰를 한 환자 대다수는 실명 공개를 꺼렸다. 이들은 수년간 질병명도 몰라 고생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통증이 사라졌거나 줄어들어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에 속했다.

정신을 잃는 아픔

“칼로 살을 베는 고통 차라리 확…수백 번 생각”

신경차단술로 척추수술 후 통증증후군을 치료 중인 의료진.

“얼마나 아프면 정신을 잃겠습니까. 통증이 잡히지 않으니까 전신마취제를 놓아버리더군요. 신경을 못 다스리니까 아예 의식 자체를 없애버린 거죠.”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재우(36) 씨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늦깎이 대학생활을 마쳐 가던 2006년 12월 무렵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고, 뒷자리에 앉았던 김씨는 앞으로 튕겨나가면서 발꿈치를 바닥에 심하게 부딪혔다. 이후 다리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를 심하게 손으로 조이고 집어 뜯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6개월 후부터는 다리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부어올랐다.

“‘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칼 수백 개로 다리 살을 베는 듯한 통증이 오더군요. 손을 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10cm 근처까지만 오면 미친 듯이 아팠습니다. 겨울에 찬바람이 불면 고통의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왼쪽 골반부터 다리까지 뻗치는 통증은 그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햇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라이터나 가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계속돼 외출조차 하지 못했던 것. 밤에는 신경이 더 예민해져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통증 때문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그때부터 김씨는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병명도 원인도 모르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전신마취제를 써서 그의 의식을 잠시 없애주는 것뿐이었다.

“은사의 도움으로 대학을 어렵사리 졸업했지만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각 병·의원을 1년 넘게 전전하면서 엄청난 양의 진통제를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통증 원인은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었어요. 무작정 진통제만 먹은 거죠. 그래도 통증이 잡히지 않았어요.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우울증이 생긴 거죠. 지금까지도 수면제와 항우울제는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온갖 병·의원을 전전하다 병명을 알아낸 것은 버스 사고 1년 후인 2007년 12월 말이다. 병명은 말도 어려운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이 질환은 신체기관이 잘릴 때보다 더한 고통을 유발하며 흔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환자 2만여 명이 학계에 보고됐지만, 정확한 원인과 발병 기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실제 환자 수는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환자가 이 질환으로 진단받기까지 평균 30개월이 걸리고, 그 기간에 의사 4.8명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수술 후나 외상을 입은 후 발생하지만 특이한 동기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김씨는 의사를 수십 명 만날 때까지 병명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CRPS로 진단받은 후 한 3년 동안 조금씩 통증이 줄어들긴 했지만 일상생활이 어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양한 약물치료를 했지만 그때뿐이었어요. 2010년 말쯤 일주일에 1~2회씩 신경차단술을 받은 후부터 확 좋아지기 시작해 배 속에 전기자극기삽입술을 한 다음에는 통증이 많이 줄어 일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극적인 치료 효과를 보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것은 통증클리닉을 찾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난 이후부터다. 주치의인 심금만 한림대강동성심병원 통증클리닉 교수는 김씨에게 약물치료와 함께 문제를 일으키는 신경을 차단하는 시술, 전기자극으로 통증을 조절하는 시술 등을 시행함으로써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했다.

“아직도 간헐적으로 통증이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통증이 올라오면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 주사를 맞고 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정말 지난 6년을 돌이켜보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과거 진저리나는 통증과 설움이 생각났는지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저녁에도 그는 통증이 올라온다며 응급실을 찾았지만 그다음 날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CRPS 환자 대부분이 고통 속에서 살지만 진단을 일찍 받아 완치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다. 한고은(14·가명) 양이 그 주인공. 한양은 하굣길에 좌측 발목을 접질려 4주간 반깁스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깁스를 풀고 며칠 지났는데 무릎 아래 전체가 칼로 자르고 불구덩이에 들어간 것처럼 아팠어요. 발바닥이 뭔가에 살짝 닿기만 해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죠. 다리도 퉁퉁 부었고요. 이후 학교를 포기했습니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한양은 그 후 두 달 동안 대학병원 2곳을 찾았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각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에서 2개월간 치료했지만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부종도 악화됐다. 세 번째 찾은 대학병원의 정형외과와 통증의학과에서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 의심스럽다”고 판정한 후 다른 대학병원 통증의학과에 치료를 의뢰했다. 당시 한양의 주치의였던 양종윤 전 아주대병원 신경통증클리닉 교수(현 굿모닝통증의학과의원 원장)는 당시 치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원 당시 발과 발목 부위 염좌(좌섬)는 회복된 상태였고, 이학적 검사를 했더니 CRPS로 진단됐습니다. 한 달간 입원시키고 요부 교감신경 치료와 약물 치료, 초음파 유도 하지신경 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 후 휠체어에서 일어나 일상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재활의학과와 협조해 운동 치료와 통증 치료를 병행했는데, 먹는 약과 치료를 중단할 만큼 좋아져 지금은 그냥 정기적으로 관찰만 하는 상태입니다. 조기에 발견하고 일찍 치료를 시작한 게 큰 몫을 한 것 같습니다.”

“정말 아픈데 병은 모르고, 꾀병이라고?”

“칼로 살을 베는 고통 차라리 확…수백 번 생각”

신근만 대한통증학회 회장(한림대강동성심병원 통증클리닉 교수)이 통증이 일어나는 기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주부 이희숙(37·가명) 씨는 지난 2년 6개월간을 생각하면 긴 악몽을 꾼 것 같다.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온 통증은 그의 가정생활을 파탄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목 주위가 조이듯 아프고 허리가 뻐근한 증상이 시작됐어요. 그래서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정형외과에 가서 약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물리치료도 했고요.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어요. 좀 더 지나니까 하는 일 없이 몸이 천근만근이고 힘도 빠졌어요. 한의원에 갔더니 만성피로라며 또 침을 놓고 한약을 지어주더군요. 그런데 오히려 잠이 안 오는 증상이 나타났어요. 조금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심해지는 일이 반복됐죠.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쓴 돈이 아마 1000만 원도 넘을 거예요.”

병·의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는 사이 이씨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목과 허리 통증, 만성피로,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찾아온 것.

“묵직한 느낌 있잖아요. 머리가 아파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일이 빈번해졌죠. 집 안 청소는커녕 애들 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런데 X레이, MRI, 혈액검사 등 할 수 있는 검사를 해도 뚜렷한 이상이 없었어요. 확실한 진단명이 안 나오니까 저 스스로 꾀병을 앓고 있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생기고, 가족 눈치도 보여서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런데 몸은 말을 안 듣고 통증은 더 심해가니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아 우울증 약도 한 움큼씩 먹었습니다.”

2년 6개월간의 방황 끝에 이씨가 받은 진단명은 섬유근육통(섬유근통). 섬유근육통은 현재까지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한 질환으로 30~50대 여성에게서 주로 나타나고, 신체 여러 부위의 관절통과 근육통은 물론, 수면장애, 우울증, 두통 등을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의학계에선 전 인구의 2% 정도가 이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실제 이 질환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는 극소수다. 외부자극이 뇌에 전달되는 신경체계가 여러 요인으로 변화해 뇌에서 가벼운 자극도 통증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당시 아주대병원 교수였던 양 원장은 이씨에게 뇌에서 통증을 제어하는 물질의 생산을 순조롭게 해주는 약물을 투여하는 한편, 증상에 따른 신경치료 시술을 진행했다. 스트레칭과 걷기 같은 낮은 강도의 운동 치료도 병행했다.

“지금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없어졌어요. 약은 꾸준히 먹고 있고, 의사선생님 말대로 매일 가볍게 운동하니까 불면증도 많이 나아졌어요. 무엇보다 가족이 내 병이 진짜 아픈 병이란 걸 알게 돼서 고맙고, 늦게나마 주부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 정말 좋아요.”

원인 모를 복통, 기능성 위장장애

위염이나 위궤양과 증상은 비슷하지만 아무리 검사해도 위장에서는 형태학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고통받는 이도 많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영(34·가명) 씨는 지난 6개월간 내과 병·의원을 전전하며 복통 관련 검사를 모두 받았지만 원인을 알지 못해 소화제로 연명하다 기능성 위장장애로 진단받은 경우다.

“6개월 전 대리로 승진한 후 업무와 회식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정말 피곤한 나날이 계속됐죠. 그랬더니 조금만 신경 쓰면 속이 쓰리고 위장이 있는 명치 쪽에 꼬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칫솔질을 하다 그러는 것처럼 간혹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했고요.”

병명을 찾고 치료를 받으려고 김씨는 동네 내과의원을 거쳐 대학병원 소화기내과를 차례로 찾았다. 병·의원 측에서 초기엔 진단서를 끊어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복부 초음파, 복부 CT 등 모든 검사를 섭렵했지만 결과는 가벼운 지방간 외에는 이상 소견이 없었다. 각 병·의원의 소화기내과 전문의들은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며 휴식과 식습관 개선을 권했고 소화제 등을 처방해줬다. 하지만 휴가까지 받아가며 약을 열심히 먹었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병가를 내려 해도 병명이 있어야 내죠. 주변 사람들은 남 속도 모르고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고 하고…. 나는 정말 아픈데 말이죠.”

김씨는 힘든 나날을 보낼 때쯤 다니던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전문의로부터 “통증의학과를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위장질환에 통증의학과를 가보라는 것이 의아했지만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통증의학과를 찾았다. 결국 많은 검사를 통해 통증의학과에서 내린 진단명은 기능성 위장장애. 이 질환은 위염이나 위궤양 등 복통을 일으키는 특별한 기저 질환 없이 속 쓰림, 소화불량, 오심과 구토, 통증 등이 지속되는 증상을 보이며,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위장관 운동을 조율하는 자율신경계의 부조화, 위장 운동과 음식물 흡수 기능 장애,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통증의학과 전문의는 증상을 줄여주는 약물 치료를 6개월간 받은 점을 감안해 위 통증을 뇌로 전달하는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치료를 시작했다. 이 치료법은 소화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자율신경을 간단한 시술로 끊음으로써 통증이나 증상을 없애는 것이다. 김씨는 차단술을 받은 직후부터 증상이 많이 개선돼 지금은 회사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주간동아 909호 (p36~39)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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