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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1 >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이러다 평생 정규직은 못 하는 게 아닐까

인턴과 비정규직 전전하며 경력 쌓지만 취업 문턱 여전히 높아

이러다 평생 정규직은 못 하는 게 아닐까

이러다 평생 정규직은 못 하는 게 아닐까

직무 경력을 쌓아 정규직이 되겠다는 목표로 많은 청년이 인턴에 도전하지만 취업난 때문에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REX]

“취업 특강을 들으러 가면 ‘취업은 꿈이 아니라 수단이다. 취업 후를 생각하며 회사에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취업도 안 돼 전전긍긍하는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죠.”

2년간 영상제작 관련 업계 취업을 준비했던 윤모(30) 씨의 말이다. 대부분 기업이 직무 역량으로 지원자를 평가해 선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많은 청년이 경력을 쌓으려고 인턴이나 비정규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해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인턴과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며 ‘나이는 들어가는데 취업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한다. 그러나 ‘공채 시 우대’라는 말 때문에라도 인턴 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은 경험보다 학벌이 중요?

윤씨는 올해 취업준비를 그만두고 부모 가게에서 일하는 것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회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인턴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아왔지만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업은 없었다. 그는 “꿈이라며 고집을 부려왔지만 나이 드신 부모를 봐서라도 이제 포기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취업준비를 그만둔 심경을 밝혔다.

윤씨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영상콘텐츠 제작 업계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광고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공모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이 아니라는 약점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 4학년 방학 때부터 작은 콘텐츠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첫 출근 때만 해도 이곳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대형 광고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첫 인턴 근무지에서 카메라나 편집 프로그램을 거의 건드려보지 못했다. 그곳에선 거의 허드렛일만 했다. 윤씨는 “월급 30만 원을 받으며 하는 일이라곤 청소나 간단한 심부름, 촬영 장비 나르기 등 아르바이트생에게 시킬 만한 것들이었다. 간혹 편집 프로그램을 만질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단순 작업인 자막 붙이기 등이었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도대체 내가 2개월간 거기서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졸업 후 윤씨는 대형 콘텐츠 업체의 6개월 인턴 과정에 합격했다. 그는 “대형업체에 입성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게다가 인턴 업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추후 공채에서 우대하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일찍 사무실에 나갔고, 정규직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6개월 뒤 공채에서 윤씨와 인턴 동료들은 전부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거는 데 실패했다. 윤씨는 “그해 공채에서 관련 직군 채용 인원이 4명이었는데 전부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나 유학파 출신이었다. 당시에는 채용 결과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학벌의 부족함을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회사의 인턴 모집에 다시 응시해 합격했다. 당시에는 조금만 더 성과를 내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쓰고 버려도 또 하겠다는 사람은 많으니”

인턴생활 세 번째 만에 윤씨에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왔다. 인턴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단번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던 것. 조건이 파격적인 만큼 지난 두 번의 인턴보다 업무 강도가 셌다. 그는 “콘텐츠 기획부터 섭외, 촬영, 편집 등 전 과정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야근이 잦았다. 안 그래도 적은 인턴 급여에 업무시간까지 길어져 한밤중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아 임금은 거의 교통비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근무조건이지만 그 인턴 자리라도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말했다.

윤씨 외에도 꽤나 많은 인턴이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온라인 취업 사이트 사람인이 인턴 경험이 있는 구직자 5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41.7%(복수응답)에 달했다. 무급으로 일한 경우도 11.2%나 됐다.

그래도 당시 윤씨는 불만보다 기대에 차 있었다. 일하는 내내 회사 직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 그는 “이번에야말로 취업이 되려나 보다 생각했다. 특히 회의에서 내가 낸 기획안이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는 정규직이 코앞에 있는 듯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또 취업에 실패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턴은 명문대 출신이었다.

취업 실패보다 윤씨를 더 화나게 한 것은 회사의 행태였다. 윤씨는 “인턴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기획안대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에 업로드된 해당 콘텐츠의 광고가 내 기획안과 똑같았다. 적어도 불합격자의 아이디어를 쓰려면 허락을 받는 게 이치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전화로 항의해봤지만 인턴 기간에 낸 기획안은 회사에 귀속된다는 해명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여행사 인턴을 했던 정모(27·여)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턴 과제로 발표한 여행상품 기획이 회사 정식 상품으로 채택됐지만 정규직이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한국에서 취업준비생이 인턴을 하다 보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턴이 ‘인간을 턴다’의 약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대부분 기업이 인턴을 채용하는 이유가 휴지처럼 쓰고 부담 없이 버리기 위해서다. 성추행 등 형사소송감이 아니라면 ‘인턴생활이 다 그렇지’ 하며 넘어간다”고 말했다.

정씨가 부당한 대우를 참아가면서도 인턴이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 보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반면 인턴으로라도 일하고 있으면 취업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든다. 이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면서도 인턴 기간이 끝나면 메뚜기처럼 또 다른 회사의 인턴에 지원하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구직자 중 과반은 자신을 ‘티슈 인턴’(티슈처럼 한 번 쓰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인턴)이라 여기고 있었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대학생 16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4%가 스스로를 티슈인턴으로 평가했다.


이러다 평생 정규직은 못 하는 게 아닐까

4월 16일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에서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를 보고 나오는 응시자들. 정규직 전환 조건이 아니라면 인턴이 끝나고 다시 지난한 공채시험을 통과해야 정규직 취업이 가능하다. [동아일보]

“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부 청년은 인턴 경험을 아무리 쌓아도 정규직이 되기 어려운 현실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4월 24일 정씨처럼 인턴만 전전하던 한 청년이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청 별관에서 인턴 A(28)씨가 투신한 것.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근거로 “사고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1년 대학을 졸업한 뒤 구직활동을 하면서 국토연구원, 의왕시청, LH(한국토지주택공사), 국가기록원 등 공공기관 4곳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정규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공공기관에서 수차례 인턴 경력만 쌓아오던 그는 최근 주변 동료들에게 “이번 경기도청 인턴이 끝나면 다음에는 어디에서 인턴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는 말을 자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경찰은 A씨가 구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취업준비생은 계속되는 정규직 전환 실패에 신입 공채 대신 경력 공채를 노려보겠다며 작은 회사의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방송국 PD가 되는 것이 꿈인 이모(32) 씨는 현재 중소 규모의 외주제작사에서 계약직 PD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지방 사립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2년간 방송국 공채 준비를 하며 인턴 과정도 거쳤지만 좁은 채용의 문을 뚫지 못해 외주제작사행을 택했다.

지금 회사의 급여에 대해 이씨는 “용돈 수준이다.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작은 제작사의 급여는 말 그대로 ‘열정페이’다. 새벽부터 촬영장에 나가 준비하고 밤새워 촬영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월급은 160만 원 남짓이다. 하루에 적어도 11시간 넘게 일하고 있으니 급여로만 따지면 편의점에서 최저시급(시간당 648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했다.

적은 급여 외 불안정한 고용 형태도 이씨를 답답하게 한다. 그는 “보통 프로젝트 팀에 소속돼 일한다. 이 때문에 당장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나 같은 계약직 PD는 거취가 불분명해진다”고 밝혔다.

그래도 이씨는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사실 웬만한 중소기업이 이 업계보다 대우는 더 좋다. 조건만 따지면 당장이라도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7.05.24 1089호 (p28~30)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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