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2010.05.17

지방선거 盧風이냐, NO風이냐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 본격적인 득표전 흥미진진 관전 포인트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rcmlee@hanmail.net

    입력2010-05-17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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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盧風이냐, NO風이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향 대신 타다 남은 담배꽁초와 재가 수북하다.

    멋있다. 제갈공명은 정말 멋있다. 누가 뭐래도 ‘삼국지’의 최고 스타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오우삼 감독이 그리는 공명의 동남풍은 기가 막히다. 그 동남풍이 대세를 갈랐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제갈공명 칠성단에 동남풍 기다리듯.’ 무언가 잔뜩 기다리는 모양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야권, 특히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의 기대가 딱 그렇다.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풍(盧風)’이 공명의 동남풍이 될 수 있을까?

    선거가 코앞에 닥친 지금, 희한한 꼴이 벌어지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여당이 더 공세적이다. 역대로 선거 성패는 수도권 승부로 가려졌다. 바로 그 수도권에서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데도 호들갑 떠는 건 여당이다. 이른바 ‘검사 스폰서’ 사건으로 검찰개혁 요구가 드센 탓인지 심지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엄살일 수도 있고, 방심 불허의 제스처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 말하듯 ‘김 빼기 쇼’일 수도 있다. 여론에 호응하는 척하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 몰라라 할 것이라는 분석에도 일리가 있다. 과거 숱하게 그랬기 때문이다. 과연 검찰개혁에 나설 힘이나 동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MB정부 평가받는 ‘중간선거’?

    대저 앞선 후보는 조용한 선거를 원한다. 긁어 부스럼 만들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정책선거를 외친다. 반면 뒤처지는 후보는 시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선거문법’의 기초다. 이런 공리에 비춰보면 한나라당이 ‘낮은 포복’을 하는 이유가 짚인다. 간명하다. 봉은사 외압 시비, 제주지사 후보 돈봉투 파문 등 악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악재가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 즉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이 본질이다.

    그람시가 그랬던가. ‘과거는 현재의 한 요소이자 미래의 전제’라고. 과거의 선거 경험을 보면 선거 법칙의 일단이 보인다. 대통령 선거에서 멀어진 선거일수록 여당이 불리하다. 딱 부러지게 기간이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 선거 뒤 1년 안에 치르는 선거를 흔히 ‘신혼선거(honeymoon election)’라고 한다. 다음 대선을 1년 남짓 남겨놓은 채 실시하는 선거는 ‘황혼선거(counter-honeymoon election)’라고 한다. 미국처럼 임기 중간에 실시하는 선거는 익히 알려진 대로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같이 실시되는 것은 ‘동시선거(concurrent election)’다.



    미국의 경우 동시선거에서는 여당이 유리하다. 대신 중간선거에서는 야당이 유리하다.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대통령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불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간선거에 가까웠던 2000년 총선에서 여당은 패배했다. 하지만 임기 초반에 치른 2004년의 선거와 전형적인 신혼선거인 2008년 총선에서는 여당이 승리했다.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이준한 교수의 설명이다. “지방선거 수준에서는 선거 시점과 대통령 소속정당의 선거이득 사이에 비교적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네 번의 지방선거 중 일반적인 경향에 부합하는 사례가 세 번, 그렇지 않은 사례가 한 번 있었다. 중간선거로 분류되는 1995년의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대통령 소속정당인 민주자유당을 이겼다. 황혼선거인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야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휩쓸었다.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실시한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대통령 소속정당은 2위도 아닌 3위로 처졌다. 다만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치른 1998년의 지방선거에서는 신혼선거답지 않게 대통령 소속정당이 압승을 거두지 못했다.”

    요컨대 중간선거에 근접할수록 여당이 불리하다. 그러니 여당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2009년 있었던 재·보궐 선거의 패배도 반면교사다. 그때도 후보 지지율은 앞섰으나 졌다. 10월의 재·보궐 선거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어선 상태였는데도 맥없이 무너졌다. 그러니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게 마땅하리라.

    야당이 조용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복잡한 세력구도, 당내 리더십이나 공천 잡음 등도 원인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천안함 사태다. 천안함 사건 자체가 아니라, 여권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관리할 수 있는 ‘이슈’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이슈로 다른 이슈는 묻히고 가려져버렸다. 마치 정치와 선거를 두꺼운 차단막으로 가리는 것 같은 일종의 ‘가림효과’다.

    이런 점에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가 발휘할 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다른 변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동원 가능한 카드에서 야당은 언제나 불리하다. 결정권이나 집행력을 여당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풍이야말로, 아니 어쩌면 노풍만이 야당의 유일한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노풍은 태풍일까 아니면 미풍일까?

    여당은 공세적, 야당은 조용

    지방선거 盧風이냐, NO風이냐

    5월 6일 6·2지방선거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한명숙 전 총리가 손을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가늠하기 쉽지 않다. 몇 가지 단서를 잡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노풍이 부는 쪽으로 작용하는 요인을 보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 경선이 많이 이뤄졌다. 그중 야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발견된다. 응답자에게 후보를 소개할 때 ‘노무현 관련 이력’을 말해주면 그 후보의 지지도가 엄청 높아진다는 것이다. 10~20%포인트 상승했다. 물론 야권의 경선 조사였기 때문에 응답자가 야권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반화는 힘들다. 하지만 ‘노무현 효과’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징이다.

    또 하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그와 관련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다. 물론 독서층의 한계나 노무현 마니아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많이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던지는 메시지가 그리 간단치 않다. 500만 명이 넘는 추모인파에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상황불변론이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를 추모하게 만든 상황이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다. 단순히 노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가치와 정서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다. 기대나 나름의 관점이 섞인 것도 사실이지만,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다.

    ‘노풍 없다’는 주장의 대표적 사례는 그의 후계자라는 유시민 전 장관의 언급이다.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승패 결정된 과거와는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존재는 이제 많은 국민의 가슴속에서 정리돼가는 과정에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금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라는 번민, 고민, 성찰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서 ‘노풍’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노 전 대통령 하나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주장에 여론조사 결과도 동조한다. 5월 6~7일 에이스리서치가 지방선거 영향 이슈를 알아본 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는 4.1%에 불과했다. 이는 4대강 사업(25.1%), 무상급식(9.8%), 세종시 이전문제(7.2%) 등보다 낮은 수치다. 다른 조사도 있다. 4~6일에 실시한 SBS 등의 조사에서도 노 전 대통령 추모는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전교조 명단 공개, 천안함 사건보다 후순위였다. 4월 29일에 한 리얼미터 조사에선 5.4%였다. 이처럼 여론조사 추세만 보면 노풍은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미풍론의 근거로 대통령 지지율을 거론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시점에 비해 지지율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서거 한 달 전, 이명박(MB) 대통령의 지지율은 32.7%였으나 2010년 4월 현재 40.4%다. 이들은 MB의 지지율 회복이 친서민이나 중도실용으로 전환, 경제위기 극복 등 토대가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거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여당 지지율은 각각 32.7%, 31.4%, 30.6%로 별 차이가 없다.

    선거를 그냥 무심하게 보면 재미있는 스포츠다. 노풍 여부도 흥미를 돋우는 요소 중 하나다. 바람이 불지 안 불지, 축구팬이라면 마치 메시가 골을 넣을지 못 넣을지만큼이나 흥미롭다. 그러나 선거는 우리의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다. 누구도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선거를 볼 때는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노풍 여부를 가늠할 때도 이 주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우리 팀’이 이길 거란 기대를 전제로 분석한다. 그래서 어렵다.

    월드컵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역대 월드컵에서 우승후보가 예상대로 우승한 적이 몇 번이나 되려나. 축구공은 둥글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승부다. 이번 선거 역시 그렇다. 선거 시작도 전에 성패가 거의 결정된 과거의 예와 다르다. 지금 본격적인 게임이 진행 중이다. 소설 ‘삼국지’에 ‘무릇 병법의 최상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핵심은 공심위상(攻心爲上)이다. 동남풍이 불지, 누가 조조가 될지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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