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서해의 탄식과 눈물…남북관계 파국으로 치닫나

남북 정상회담 추진 결렬 이후 경색, 특단의 조치 등 한반도 긴장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04-07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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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의 탄식과 눈물…남북관계 파국으로 치닫나

    북한 해안포 진지. 올해 1월 27일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을 향해 해안포를 발사,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언론사 통일·외교·안보 분야 기자들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북한 개입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타전하느라 부산하던 3월 31일 오후 4시, 통일부는 천해성 대변인 명의로 대북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이 25일부터 일방적으로 시작한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 조사에 공식 항의하고, 다음 날인 4월 1일부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를 전제로 북한이 예고한 ‘특단의 조치’를 사전에 경계하는 내용이었다.

    천 대변인은 “우리 기업의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남북협력사업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앞으로 어떤 국가도 북한에 투자하거나 정상적인 상거래를 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는 기존의 남북 간 모든 합의와 이를 통해 마련된 제도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금강산관광의 재개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하루의 상황은 남북관계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했다. 북한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난해 말부터 예견된 것이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방중 임박’ 발언으로 가시권에 들어왔다. 통일부의 다급한 대북 성명은 북한의 ‘특단의 조치’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해군은 천안함 침몰 직후 이를 북한 반잠수정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다른 초계함인 속초함으로 대북 경계 작전을 펼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산과 서해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북·중 밀월은 남북관계의 추세적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남 유화공세 사실상 끝나

    실제로 남북관계는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 악화됐다. 지난해 8월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는 11월 7일 북한 개성에서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당국자가 만나 서로의 조건을 최종 확인한 끝에 사실상 결렬됐다. 결과론이지만, 지난해 7월 이후 북한이 펼친 대남 유화공세도 이즈음 끝난 것으로 평가된다. 정상회담을 통한 대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대로 남한에 성의를 다했다고 생각한 북한은 이후 태도를 바꿔 세 가지 흐름의 대남 공세를 시작했다. 바로 서해에서의 긴장 강화와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한 대남 위협, 그리고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남한의 여러 요인에 대한 공식 반발이다.



    첫째, 북한은 개성 회담 사흘 뒤인 지난해 11월 10일 돌연 대청해전을 감행했다. 북한 경비정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가 남한 해군 함정들이 쏜 함포와 해안포 4950여 발을 맞고 퇴각한 것. 북한은 즉각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무자비한 군사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11월 말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사령관을 경질하고 보복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1일 NLL 남측 수역에 평시사격구역을 선포하고 올해 1월 27일에는 NLL 인근 자국 해상에 해안포를 발사하는 등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의 배후라는 의심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서해의 탄식과 눈물…남북관계 파국으로 치닫나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둘째,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6일 우리 정부가 금강산관광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돌연 기관 명의로 담화를 내고 “남한 당국은 금강산관광을 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북한이 공식회담을 제의할 땐 수용하겠다”(12월 26일)고 밝히자 북한은 당국 간 실무 접촉을 제의(1월 14일)했으며, 남북 양측은 2월 8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그러나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속셈이 드러났다. 정부가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한국인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재발방지 약속, 한국인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의 제도화 등을 관광 재개 조건으로 내걸자 북한은 일방적으로 3월 개성, 4월 금강산 관광 재개를 통보한 것. 정부가 이에 불응하자 북한은 한 발 더 나아가 3월 25~31일 일방적으로 부동산 조사에 나섰다.

    침략선 수장(水葬) 위협 배경 있나

    셋째,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길로 나와야 한다”고 점잖게 말하던 북한은 1월 15일 돌연 남한 정부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에 대한 언론보도를 문제 삼으며 “(이 계획을 주도한)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 성전이 개시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을 냈다. 이후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는 2월 8일 연합성명을 내고 “최근 남조선 당국의 반공화국 체제 전복 시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며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와 나라의 안전을 해치려는 반공화국 광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것”이라며 위협을 계속했다.

    북한은 3월에는 세 가지 위협을 동시에 가했다. 3월 8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키리졸브’와 ‘독수리’를 극렬히 비난했다. 천안함 침몰 엿새째를 맞은 3월 31일에는 서해에서 훈련하고 있는 한미 해군을 ‘북침 침략선’에 비유하면서 천안함 침몰을 암시한 듯 이들을 수장(水葬)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금강산 부동산 북측 조사단은 남측 민간 사업자들에게 “(남측 정부가) 4월 1일까지 관광 재개에 응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은 3월 29일 담화를 내고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정부가 언론 등과 함께 추진하는 비무장지대(DMZ) 취재 계획을 비난하면서 “이 지대에서 인명 피해를 비롯한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11월 7일 개성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대남 공세로 돌아섰다’는 가정은 다소 우울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정부 내부에서는 2010년 초까지도 남북 정상회담 연내 개최와 남북관계의 극적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렀다.

    향후 북한이 대남전략의 ‘유턴’을 시도하고 있는지는 서해에서의 긴장 완화, 금강산 지구 등 남북 접촉면에서의 전략적 양보,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남한의 여러 요인에 대한 북측의 반발 감소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과 6자회담 복귀 등에 따른 대외관계의 변화가 그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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