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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부도 다른 姓을 사용하나

선택적 ‘부부별성’ 도입 논의 한창 … 양자·데릴사위로 가며 姓 바꾸기 다반사

일본 부부도 다른 姓을 사용하나

얼마 전 결혼한 일본인 지인의 아들이 ‘○○ 다이스케(大輔)’에서 아내의 성(姓)을 따라 ‘△△ 다이스케’로 바꿨다는 내용의 인사장을 보내왔다.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반대의 경우는 처음이어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주위 일본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법률상 얼마든지 가능하단다. 직장에서도 남자가 결혼하면서 아내의 성으로 바꾼다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본 민법 제750조는 ‘부부는 결혼할 때 정해진 바에 따라 부(夫) 또는 처(妻)의 씨(氏)를 칭(稱)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용어로는 ‘씨’이나 일본인들은 흔히 ‘묘지(苗字)’또는 ‘성’이라고 한다. 일본 민법은 결혼하면 부부가 동일한 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을 뿐, 남자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일본은 고대 이래로 한국, 중국처럼 부부가 각자의 성을 사용하는 부부별성(夫婦別姓) 제도였으나,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 부부동성(同姓)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일본 여성의 95%가 남편의 성을 따른다. 그러나 패전 후 제정된 현행 헌법(일본국 헌법)의 개인의 존엄과 남녀의 본질적 평등을 규정한 조항(제24조)에 따라 ‘남편 또는 아내의 성’으로 바뀐 것이다.

연예인·스포츠 선수들 결혼 전 성 유지

이처럼 150년 가까이 부부동성 제도가 정착된 까닭에 일본인 중에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몇 년 전 의료보험 문제로 아내와 구청 담당과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필자와 성이 다른 아내의 이름을 본 직원이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실례지만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어쨌든 현행 일본의 혼인법은 남편 성이든 아내 성이든 결혼하면 부부는 같은 성으로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자녀들은 그 성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5% 정도는 남자가 여자의 성을 택하기도 하는데 ‘무코이리(壻入り)’라고 하는 데릴사위가 되거나, 의붓아버지의 성을 가진 남자가 결혼을 계기로 새출발하는 뜻에서 성을 바꾸는 경우 등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부부별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업무 편의상 결혼 후에도 성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거나 딸이 집안의 이름(家名)을 계속 이어가게 하고 싶다거나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느냐 등의 의식 변화가 생겨 부부별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유명 여성들은 결혼 후 호적에만 남편 성을 따르고 대외활동에서는 결혼 전 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전 이름으로 형성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 관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나 우타다 히카루, 배우 히로스에 료코는 결혼 뒤에도 처녀 시절 성을 썼을 뿐 아니라, 공교롭게 세 사람 모두 이혼했는데, 그 뒤에도 결혼 전 성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요즘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이다. 부부가 같은 성을 쓰든 각자의 성을 쓰든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민주당은 야당 시절 여러 차례 이 같은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때마다 자민당 정권은 이를 부결시켰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민주당이 올해 상반기 중 국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2월 중순 법무성이 법률심의회 등의 의견을 종합해 작성한 개정안 시안에 따르면 별성 선택 후의 변경은 인정할 수 없으며, 복수의 자녀(형제자매)는 성을 통일해야 한다. 또 이미 결혼한 사람은 제도 도입 후 1년 안에 별성을 선택할 수 있다 등이다. 부부별성 허용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2월16일)고 했으나, 정부 여당에서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는 각료도 있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거기에다 메이지유신 이후 관습으로 굳어진 부부동성 제도를 바꾸려 하는 데 보수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필요에 따라 몇 번이고 바꿔

한국에서는 2008년 민법이 개정돼 부모가 이혼할 경우 어머니 성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해졌지만, 보통의 경우 성을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강력히 부정하거나, 어떤 일을 강조할 때 ‘성을 간다’라고 말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성을 바꾸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메이지유신 이후 얼마든지 성을 바꿀 수 있게 제도적으로 허용됐기 때문이다. 어릴 때 생모가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고, 자신도 데릴사위가 되어 여자 집안의 성을 가지게 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동창회 명부 등을 보면 여자들은 결혼 전 성은 구성(舊姓)으로 표기한다. 남자의 경우도 구성이란 표기가 많다. 양자로 가거나 여자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성을 바꿨기 때문이다. 최근엔 핵가족화 등의 영향으로 양자로 가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국과 같이 동성동본 집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양자로 가서 성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총리를 네 번이나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원래 이름은 하야시 리스케(林利助)였으나, 아버지가 머슴으로 일했던 이토(伊藤)가의 양자가 되어 이토 리스케(伊藤利助)가 됐다. 성뿐 아니라 이름도 촌스럽다며 선배 무사가 히로부미(博文)라는 이름을 지어주어 30대 이후부터 히로부미라 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전의 주한 일본공사로 시해에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도 어릴 때 양자로 가서 성과 이름이 시도 몬타(志道聞多)로 바뀌었다가 20대 초에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갔다. 1950년대와 60년대 각각 총리를 지낸, 형제 총리로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친형제이나 성이 다르다. 기시가 양자로 갔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과 가장 닮은 나라로 꼽힌다. 두 나라는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이란 지리적, 문화적 동질성에다 사람들의 외모와 체격도 비슷하고 근래에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닮아가고 있다. 그러나 닮은 듯하면서도 이처럼 서로 다른 점도 많다.

이종각 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2004년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주오대학 겸임강사로 재직하며 일본 신문과 잡지에 한국 및 한일관계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0.03.23 728호 (p66~67)

  • 이종각 jongga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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