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신화연구가 김원익의 ‘1박2일’ 교육대담

“父母者, 子女之形 부모가 모범 보여야죠” … “그리스 신화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죠”

  • 철원=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03-17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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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신화연구가 김원익의 ‘1박2일’ 교육대담

    김봉곤 훈장과 김원익 박사가 3월6일 오전 강원 철원군 한민족예절서당에서 시서루(詩書樓)를 지나며 대화하고 있다. 김 훈장 왼쪽 손에 회초리(回初理)가 들려 있다.

    지리산 청학동을 떠나 철원에 새 둥지를 튼 김봉곤(43) 훈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3월5일 오후 강원 철원군 근남면 잠곡2리 마을회관 앞 463번 지방도로에서 서당 진입로를 찾는 것도 어려웠거니와 도로 입구에서 서당까지 1.5km 남짓 비포장 언덕길은 문명의 이기(利器)를 거부하는 듯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탄력받아 스피디하게, 그리고 한 번에 올라오셔야 합니다. 아니면 (바퀴가) 헛돌아요.”

    휴대전화를 통해 김 훈장의 코치를 받고 다시 산길을 오르지만 족탈불급. 그가 말한 ‘탄력’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때쯤 기자는 차를 한 곳에 세우고 동행한 김원익(49) 박사와 산행을 시작했다. 발목까지 쌓인 눈길을 따라 1km쯤 걸어 오르자 저 멀리 나무와 기와로만 이뤄진 우복동(又福洞) 한민족예절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약 1만6500㎡(5000여 평)에 학당과 숙박시설 등 한옥 16채가 들어선 예절학교는 150여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단다. ‘지리산 청학동 훈장’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철원에 서당을 세운 이유가 궁금했다.

    “2005년 강원 화천군으로 와서 건물을 임대해 2년간 예절서당을 했어요. 그때 서당 지을 땅을 찾아 두루 돌아다녔는데 마침 이곳이 눈에 띄었지요. 예부터 동국삼승지(東國三勝地)로 지리산 청학동, 가야산 만수동, 속리산 우복동을 꼽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서당(한민족예절학교를 지칭) 좌우로 복두산(福頭山, 또는 伏主山·해발 1141.9m)과 복계산(福桂山·1057m)이 병풍처럼 둘러쳤어요. 산 이름에 또(又) 복(福)이 있는 곳이죠. 속리산은 아니지만 제가 명승지인 우복동이라고 지었습니다. 예절서당인 만큼 ‘예절 바른 사람은 복도 듬뿍 받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세요.” 그는 지인과 은행의 도움이 컸다며 귀띔했다.

    강원도 철원의 우복동 한민족예절학교



    한옥의 아름다움에 이곳저곳 구경하고 있을 때 불쑥 나타난 김 훈장의 설명이다. 그는 정중히 ‘배꼽인사’를 하고는 “손님이 오신다기에 장을 보고 왔다”며 기자 일행을 반긴다. 종이 태극기가 달린 회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요? 2월1일부터 매월 1일은 ‘회초리데이’로 정해 그 의미를 새겨보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회초리의 한자는 ‘처음의 이치로 돌아가라’는 뜻을 담아 제가 回初理로 정했죠.”

    장난기 가득한 눈빛과 바른 몸가짐, 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유학 경전 구절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 대신 한학을 한 김 훈장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능이버섯무침과 삼계탕으로 저녁을 먹고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가 일순(一巡)하자 김 박사와 김 훈장의 대담은 카세트테이프 풀리는 듯했다. 다음 날 오전에 국화차 마시자며 기자의 숙소를 찾은 김 훈장은 전날 밤 대화가 부족했던 눈치다. ‘신화, 세상에 답하다’의 저자이자 신화연구가인 김 박사와 청학동을 나와 다양한 방송·교육활동을 해 잘 알려진 김 훈장의 이틀에 걸친 대화는 그렇게 계속됐다.

    김원익 철원에 터를 잡으셨네요. 고즈넉한 서원 분위기입니다. 수도하기 안성맞춤입니다.

    김봉곤 하늘 아래 첫 동네(지리산 청학동은 해발 900m에 자리한다)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서당에서 글공부를 했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 부모님 말씀을 따라 도를 닦았죠. 유도(儒道)였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당행지로(當行之路)’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당연한 길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사셨고 저를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1993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지금도 죄스럽습니다.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신화연구가 김원익의 ‘1박2일’ 교육대담
    교육은 환경과 적기가 가장 중요

    김원익 1989년 서울 양재동에서 서당을 열었죠?

    김봉곤 한평생 청학동에 살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고집하셨던 아버지와는 좀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호흡하고 싶었죠.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왜냐? 어릴 적 집에서 농사지은 쌀은 반 년 지나면 떨어졌거든요. 그때는 산에서 약초나 나물을 캐 장터에 가져가 물물교환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챙겼어요. 칡도 많이 캤죠. 그러니 4남1녀 뒷바라지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오죽 많이 봤겠습니까. 처음 서울에 와서는 고생도 많이 했어요.(웃음)

    김원익 그리스 신화를 보면 태초부터 부자갈등은 아주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신들의 아버지 우라노스는 아들 크로노스와, 또 크로노스는 제우스와 심한 갈등을 겪지요. 훈장님도 경제적인 문제로 전통을 고집하신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습니까?

    김봉곤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를 항상 깊이 존경했고 지금도 저의 우상이십니다. 청학동을 나오기 전까지 아버지와의 갈등은 부자지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죠. 하지만 제가 청학동을 나가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오염’된다는 거였죠. 그렇다고 저를 심하게 꾸짖으셨거나, 제가 반항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와 저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없이 서로를 설득하면서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3년 만에 아버지의 ‘반승낙(묵인)’을 얻어 청학동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김원익 어쩌면 훈장님과 아버지의 경우가 동양의 전통적인 부자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부자간 갈등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갈등을 가슴에 담아둔 채 견디고 사는 것. 체념과 상호존중의 미학을 알았다고 할까요. 적당한 시간이 흘러 아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아버지가 못 이기는 체 져주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은 사뭇 달랐습니다. 부자간 갈등이 생기면 먼저 아들이 그것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경우처럼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납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김봉곤 그렇군요. 어쩌면 그래서 제가 서당(예절학교)을 운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당을 운영하다 보면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 자녀를 많이 보게 됩니다. 부모님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말을 안 듣는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달라’ ‘형제끼리 싸운다’ ‘편식이 심하다’ 등등. 저는 정작 애들은 잘못이 없다고 봅니다. 문제아라고 찍힌 아이들도 배경을 보면 부모의 문제가 커요. 제때 바로잡아주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요. 옛 서당의 훈장은 하루 종일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늘 관찰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았지요. 그러다가 상황을 봐서 타이르거나 격려해주고, 때론 마음이 아프지만 회초리도 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을까요. 그만큼 속이 타들어간다는 거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훈장이 아닐까요.

    김원익 듣고 보니 저도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반성이 많이 되네요. 자녀나 제자에게 잘못을 지적하려고 하다가도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귀찮아서 모른 채 넘어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봉곤 ‘부모자(父母者)는 자녀지형(子女之形)이요, 자녀자(子女者)는 부모지영(父母之影)이라, 형정즉영정(形正則影正)하고 형부정즉(形不正則) 영역부정(影亦不正)이라.’ 부모는 자녀의 형체이고 자녀는 부모의 그림자입니다. 형체가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고 형체가 바르지 못하면 그림자도 바르지 못한 법입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가정에선 부모의 형체가 큰 영향을 주죠. 교육은 환경과 적기(適期)가 중요합니다. 전인교육을 위한 최적기는 유치부와 초등학교 때입니다. 순수하면서도 스펀지처럼 무한 흡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이곳에서 초등생을 중심으로 서당을 운영합니다.

    김원익 자녀교육만큼 어려운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리스 신화에 이카로스가 등장합니다.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데, 아버지(다이달로스)가 ‘너무 높게 날지도, 낮게 날지도 말고 내가 선도비행 할 테니 나만 따라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결국 태양 가까이 높이 올라가 밀랍이 녹으면서 떨어집니다.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신화연구가 김원익의 ‘1박2일’ 교육대담
    고대 그리스의 조화와 균형은 유학의 배려와 관용 정신

    김봉곤 평소 이카로스가 아버지 말씀에 공손히 따르는 전인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비극적인 일은 없었을 겁니다.(웃음) ‘중용(中庸)’을 보면 ‘군자 이인치인, 개이지(君子 以人治人, 改而止)’라는 말이 나옵니다. ‘군자는 사람으로 사람을 다스리며, 고치면 그친다’는 얘기죠. 요즘 말로 치면 ‘이인치인’은 1대1 교육이면서 눈높이 교육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혹은 도리(以人)로서 그 사람에게 해주는 거니까요. 선생님이나 훈장은 의사와 같습니다. 정신병이나 마음의 병도 병이고 육체의 잘못된 버릇도 병입니다. 그걸 치유해야 하는데 말이죠.(그는 속이 타는 듯 국화차 두 모금을 연거푸 마셨다.)

    김원익 평소 훈장님은 ‘정지(正知)’ ‘정심(正心)’ ‘정신(正身)’이라는 ‘삼정교육(三正敎育)’을 강조하시는데요, 결국 공자님이 말씀하신 ‘인(仁)’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요? 훈장님의 교육철학은 무엇입니까?

    김봉곤 관용과 배려입니다. 관용과 배려는 인의 핵심이자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와도 상통하는 개념입니다. 저는 학생들을 대할 때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배려합니다. 학생의 입장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화를 내거나 혼내지 않습니다. 끝까지 인내를 갖고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몇 번이고 설명합니다. 배려인 거죠. 배려는 한자를 보면 ‘짝 배(配)’와 ‘생각할 려(慮)’입니다. ‘짝하는 생각’인데, 짝을 하려는 사람처럼 대하는 게 배려이자 예절입니다.

    김원익 그런데 훈장님께서는 매월 1일을 ‘회초리데이’로 정해서 행사를 치르시는데, 언뜻 보면 훈장님께서 말씀하신 배려와 관용의 정신과는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웃음)

    김봉곤 충분히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회초리는 그런 회초리가 아니라 자성과 반성의 회초리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반성과 겸양지덕의 회초리입니다. 요즘 세상이 자꾸만 험악해지는 것은 자기성찰이나 겸손할 줄 아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신들만이 최고이고 옳다고 오만을 떱니다. 신화에서는 어떻습니까?

    김원익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둡고 불투명한 세계를 배척하고 밝고 투명하고 확실한 세계를 지향했습니다. 절제와 중용, 조화와 균형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그것들과 대치되는 탐욕과 오만을 경계했지요. 그리스 신화에 탐욕과 오만에 빠져 파멸하는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가 많은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령 영웅 벨레로폰은 괴물 키마이라를 해치우지만 천마를 타고 우쭐한 나머지 신들의 궁전을 넘보다가 신들의 왕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추락해 절름발이가 됩니다. 이카로스의 얘기도 마찬가지죠.

    김봉곤 그리스 신화는 잔인하고 끔찍한 얘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벨레로폰, 이카로스 등의 얘기를 듣고 보니 아주 철학적입니다. 이카로스의 얘기는 특히나 유학에서 말하는 중용의 미덕을 설파하는 듯합니다.

    추운 겨울 지나면 봄 … 비행 청소년에게도 믿음 줘야

    김원익 저도 학부모입니다만, 요즘 학부모는 대학입시에 ‘올인’(다걸기)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제때 ‘치유’하지 못하는 것도 교육제도의 문제가 아닐까요?

    김봉곤 학문의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이냐 ‘위인지학(爲人之學)’입니다. 위기지학은 말 그대로 자신을 닦는 순수학문이고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머리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위인지학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국영수’ 학원만 살아남습니다. 지난해 사교육비가 21조6000억원이라고 하죠? 저는 국내 주요 대학의 입시요강만 바꾸면 이 문제도 풀린다고 봅니다.

    김원익 어떻게요?

    김봉곤 요즘은 내신과 수능 점수로 사람 서열이 매겨집니다. 그리고 기능적인 지식과 권력, 물질이 많으면 일류 인간이라고 해요. 그게 최고의 가치가 됐어요. 그런데 인간사회는 인간적인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효도 1등 한 학생은 사람이 아닙니까? 배려하고 예절 잘 지키는 학생은 또 어떤가요? 주요 대학이 착하게 사는 학생, 예절 바른 학생을 높이 평가하겠다고 입시요강을 바꾸면 됩니다. 그럼 초중고교에 예절교육이 강화되겠죠. 선생님들이 제대로 평가만 잘해주면 됩니다.

    김원익 ‘김봉곤식 입시요강’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졸업식 알몸 구타 사건’ 등 요즘 청소년 비행사건 뉴스를 보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김봉곤 청소년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행 청소년이라도 충분히 바뀔 수 있어요. 추운 겨울이 있으면 봄이 옵니다. 참고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믿음이죠. ‘여보적자 심성구지 수부중불원의(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라고 했습니다. ‘갓 태어난 자식 보살피듯 하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구하면 비록 얻지 못해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는 말입니다. 요즘 부모는 어떻습니까? 자녀나 제자는 계속 갓난아이처럼 보살펴야 합니다.

    김원익 말씀을 듣다 보니 저 역시 반성하게 되고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듯합니다. 요즘 주변에 유학을 찾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김봉곤 현대인은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스피디한 생활과 경쟁의 연속이지요. 유학은 생수 같은 존재입니다. 잊어버린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지 않습니까? 공맹(孔孟) 모두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仁)을 얘기합니다. 인을 구현하는 방법은 효제(孝悌)를 실천하는 것이죠. 가족애와 부모님에 대한 공경, 위계질서에서의 공손함도 모두 해당합니다. 물론 유(儒)는 공맹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공자님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며 ‘내가 기술했지만 지은 건 아니다’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 풍습과 전통윤리가 결합된 게 유입니다. 유 혹은 유자(儒者)는 상례자(相禮者·예를 도와주는 사람)라고 합니다.

    김원익 그리스 로마 문화와도 통합니다. 내세를 강조하면서 현세의 고통을 견디고 사는 게 아니라 그리스 로마 문화는 현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신들이 사랑을 하고 잔치를 벌이고 노는 것도 현실을 중시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균형과 조화, 절제를 강조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핵심이었죠.

    김봉곤 유학도 그렇습니다.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이상사회를 만드는 노력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일엽폐목 불견태산(一葉蔽目 不見泰山)’의 우(遇)를 범합니다. 나뭇잎 한 장이 눈을 가려 태산이 보이지 않죠. 유학은 현세에서 이런 나뭇잎을 떼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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