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8

2009.06.02

최고의 진주를 닮은 특별한 풍광

호주의 숨겨진 보석 브룸

  • 채지형 여행작가 www.traveldesigner.co.kr

    입력2009-05-29 12: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최고의 진주를 닮은 특별한 풍광

    석양이 진 케이블 비치에서 낙타를 타는 관광객.

    브룸(Broome)은 향기를 싣고 살랑 불어오는 꽃바람이다. 브룸은 피곤에 전 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석양이다. 브룸은 차근차근 걷는 거북이걸음이다. 그리고 브룸은 호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보석이다.

    브룸은 인구 1만6000여 명의 작은 도시지만, 호주 사람도 모두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인기 휴양지. 호주에서 발행되는 여행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여행사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면, 언제나 브룸 사진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에서 북쪽으로 약 2200km 떨어진 브룸은 아웃백인 서호주 북서부 지역, 킴벌리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진한 붉은색의 흙은 이들의 야생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화려하게 핀 부겐빌레아와 앙증맞은 프랑지파니는 브룸을 치장해준다. 여기에 파란만장한 진주조개 잡이의 역사와 붉은 사암 절벽이 보여주는 특별한 자연은 브룸만의 매력을 만든다. 한번 발을 디디면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브룸, 오늘은 그곳으로 떠나보자.

    해변에서 즐기는 ‘낙타 타기’

    브룸의 수많은 매력 중에서도 최고는 케이블 비치(Cable Beach). 여기서의 ‘케이블’은 재미있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블과 같은 뜻이다. 1889년 브룸과 자바 사이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했는데, 그 케이블이 지나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브룸 시내에서 약 6km 떨어진 이곳은 놀라울 정도로 길고 넓은 모래사장을 품고 있다. 길이가 무려 22km. 넓기는 또 얼마나 넓은지. 강아지와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자전거와 스쿠터를 타고 석양을 보러 오는 이도 많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일몰 즈음엔 사륜구동 차들이 해변에 줄줄이 선다. 그리고 낙타도 관광객을 태우고 해변을 찬찬히 걷는다. 온갖 네 발 달린 탈것과 동물, 사람이 모두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뛰어다닌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브룸에서 꼭 해야 할 것 하나만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케이블 비치에서 낙타 타기’를 꼽겠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 낙타를 타고 붉은 해가 뚝 떨어지며 세상을 물들이는 광경을 보는 맛이란! 넓은 모래사장에 드리워진 여행자들의 그림자는 하늘에서 온 순례자들의 그것 같다.

    낙타 타기와 함께 케이블 비치에서 유명한 것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누드 비치. 많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비치가 워낙 넓다 보니 중심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상당히 걸어야 한다.

    최고의 진주를 닮은 특별한 풍광

    <B>1</B> 넓고 고운 모래사장을 품은 케이블 비치. <BR> <B>2</B> 브룸은 세계 최고 품질의 진주를 생산한다. <BR> <B>3</B>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극장 ‘선 픽처스’.

    세계 최고의 진주가 생산되는 진주 양식장

    브룸을 여행하다 보면 자그마한 마을 크기와는 달리 국제적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퍼스에서 브룸으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루소 씨네만 해도 그랬다. 프랑스 사람인 루소 씨는 브라질 여인과 결혼해서 브라질 상파울루에 살고 있는데, 막내딸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막내딸은 사진작가인데, 브룸에 여행 갔다가 눌러앉았다고. 브룸에는 이렇게 자리잡은 세계 각국 예술가가 적지 않아, 다양한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브룸에서 여러 나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은 1860년대 시작된 진주 양식업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의 진주 양식업이 유럽 사람을 비롯해 중국, 일본, 말레이, 필리핀 사람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브룸의 역사는 진주산업의 역사라고 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진주 채취가 절정이던 20세기 초에는 세계 채취량의 80%까지 공급했다고 한다. 1900년대 초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잠수부로 활약했는데, 그들의 열악한 장비를 보면 가슴이 짠해진다. 헬멧만 해도 90kg. 신은 또 얼마나 무거운지. 배에 묶은 줄 하나에 의지해서 물속에 들어가 있었던 초기 잠수부의 힘겨운 생활이 다시 한 번 삶의 치열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브룸은 지금 세계 최고 품질의 진주를 생산한다. 그래서 브룸에 가면 진주 양식장을 둘러보게 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시내에서 38km 떨어진 윌리 크릭 진주 농장(Willie Creek Pearl Farm)이다. 이곳에서는 진주조개별 특징을 설명해주고 양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른 곳과 달리 경비원이 없다. 양식장 안에 사는 악어가 경비원 노릇을 하기 때문이라고.

    시내에는 바오밥나무가 즐비

    이제는 알콩달콩한 재미가 숨어 있는 시내로 들어가보자. 브룸 시내를 퍼스나 멜버른과 비교하면 안 된다. 시내라고 불러도 될지 의문이 들 만큼 아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시내의 숍 하나하나가 한 번 들어가면 한참 서성이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극장, 선 픽처스(Sun Pictures)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이 영화관은 1926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지금도 반짝이는 별빛 아래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물론 야외 영화관이기 때문에 낮에는 쉰다. 그렇지만 낮에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안에 들어가 90년 전에 사용한 오리지널 35mm 영사기와 설립 당시 사진들을 둘러보자.

    시내 구경을 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한가로움이다.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헬멧을 쓰고 자전거로 질주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하며 낮은 지붕의 건물들 앞에 서 있는 수많은 바오밥나무까지, 브룸은 그 자체가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낙타가 지나갈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신호등도 없다. 차가 적지 않음에도 신호등이 없는 것은 그만큼 여유 있게 운전을 한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런 여유를 상징하는 ‘브룸 타임’이라는 말도 생겨났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가방을 챙기면서 브룸에서 자주 듣던 한마디를 넣는다. 걱정할 것 없다는 ‘노 워리스(No worries)’. 일상에서도 부디 한 걸음씩 찬찬히 걸을 수 있게 말이다. ‘노 워리스’라고 읊조릴 때마다 브룸의 평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Information

    먹을 곳 맷소스 브룸 브루어리(Matsos Broome Brewery)는 망고 비어, 바나나 비어, 진저 비어 등 여러 가지 맛의 재미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 브루어리의 생생한 분위기와 야외 테이블의 발랄함이 특징. 올드 주 카페(Old Zoo Cafe)도 인기 있는 레스토랑. 동물에게 사료를 주던 곳이었다는 이 카페는 빨간색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캥거루와 에뮤 등 다양한 재료의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한국에서 서호주까지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이 홍콩을 거쳐 퍼스에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브룸에 가기 위해서는 퍼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2시간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콴타스를 비롯해 버진블루 등 여러 항공사가 브룸으로 취항한다.
    여행 팁 서호주관광청 02-6351-5156 www.kr.westernaustralia.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