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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슬근슬근 자급자족, 슬렁슬렁 보물찾기

쑥 밟고도 쑥 모르는 자연맹(盲) 아이들

‘자식 덕 보기’ ④

쑥 밟고도 쑥 모르는 자연맹(盲) 아이들

쑥 밟고도 쑥 모르는 자연맹(盲) 아이들

1 아이가 냇가에서 잡은 가재.
2 도시에서 온 아이가 논에서 올챙이를 잡으며 신기해한다.

한동안 우리 부부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부모야 자신들이 좋아 시골에 산다지만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요?”

이 말에는 도시에 선택의 기회가 많으며, 보고 배울 게 더 많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런가? 며칠 전 20대 연인 한 쌍이 우리 집을 들렀다. 귀농을 준비한단다. 오기 전에 전화로 묻는다.

“저희가 내려갈 때 혹시 필요한 거 없나요?”
이럴 때 나는 흔쾌히 ‘그냥 오라’고 하지 않는다.
“응, 많아. 건강한 몸 그리고 요리 한 가지 익혀오기. 그 다음 너희의 구체적인 꿈!”

일하러 오겠다는 젊은이들이지만 안 해본 농사일을 얼마나 하겠나. 그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슬렁슬렁 일하다 맛나게 요리해 먹고 가면 그게 남는 거니까. 그리고 젊은이들의 계획이 궁금했다. 우리 집에 도착한 다음 일하겠다고 옷도 갈아입고, 신발도 갈아 신고 옥수수 모종을 들고 밭으로 갔다. 옥수수를 심어나가는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곧이어 소나기가 되어 쏟아지니 그냥 철수.

계절 모르고 철 모르니 앞날이 불안



“너희가 준비한 메뉴가 뭐니?”
“달걀말이 밥이요.”
“그래? 어디 맛 좀 보자.”

우리 식구 처지에서는 색다른 요리. 맛나게 먹기는 했다. 그런데 음식 재료가 주변에 널려 있지만 이를 활용할 생각을 못한다. 아내가 그런다.

“서울에서 자취하면 다 돈이잖아? 여기 쑥이 지천이니 많이 뜯어가. 쑥국도 좋고 데쳐서 뭉쳐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래 먹을 수 있어.”
그런데 놀랍게도 한 친구는 쑥을 모른다. 그나마 다른 친구는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보다. 밖에 나가 한참 있다가 돌아오더니 묻는다.
“이게 쑥 맞나요?”

아니, 정말로 쑥을 모르다니! 냉이나 달래는 모른다 쳐도 그 흔한 쑥을 모르다니…. 삶이 되지 못하는 배움은 세월 속에서 잊히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실 나물 가운데 쑥만 한 게 없다. 들과 산은 물론 길가에도 곳곳에서 자란다. 쑥은 3월부터 단오 무렵까지 먹을 수 있다. 또한 단오 무렵 쑥은 베어서 말려두면 차로 끓여 마시기도 하고, 민간약으로도 요긴하다. 쑥뜸을 뜰 수도 있고, 말린 쑥을 목욕할 때 넣으면 쑥탕이 된다.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지식으로 알려줄 수가 없다. 아니, 골치 아프게 배울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삶이 자연과 동떨어지면 ‘자연맹’이 되어 쑥이 뭔지조차 모를밖에.

자연맹이 어찌 쑥 하나에만 해당할까? 나무, 새, 벌레. 으름이 뭔지조차 모르는데. 으름꽃이 얼마나 예쁜지, 으름이 얼마나 맛난지를 알지 못한다. 덩달아 혀는 고유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화려한 양념 맛에 길들여진다. 봄에 짝을 찾는 온갖 새소리를 듣지 못하니 누군가 자신을 절실히 원하더라도 그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벌레 한 마리의 생명 에너지를 모르니 친구 사이 따돌림이나 어른에 의한 아이들 학대가 흔하게 일어난다. 계절을 모르고 철을 모르니 앞날이 불안하고 삶이 쉽게 흔들린다.

문맹을 가난이 낳은 사회 병폐라 한다면 자연맹은 현대사회가 낳은 또 다른 병폐다. 자발성이 담보되지 않은 학습은 대부분 시험 치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렇게 당위의 학습에 짓눌리다 보면 정작 자신에게 소중하고 쓸모 있는 배움에는 무지하다. 예전에는 낫 놓고도 기역자를 몰랐다면 이제는 쑥 밟고도 쑥을 모르는 세상이 된 셈이다.

아이들, 미래 희망 아닌 현재의 힘

나 역시 산골살이 10년이 넘었지만 일에 매이다 보니 모르는 게 많다. 이럴 때 동네 아이들이 선생님이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눈도 안 뜬 핏덩이인데도 어느 것이 암놈이고 수놈인지 금방 아는 아이가 있다. 또한 냇가의 가재는 언제 어떻게 새끼를 낳고 키우는지도 잘 안다. 아이가 다슬기를 잡아 된장국을 끓이기도 한다. 놀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 그 힘 때문인지 아이들은 우리 집에 들렀을 때 달라진 모습이 있으면 귀신처럼 알아낸다. 새로 산 책 한 권조차 알아본다. 이렇게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먼 미래의 희망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어른들에게 힘을 준다.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들꽃 하나를 큰아이가 따서 꽃병에 꽂아뒀다. 이름이 지칭개란다. 길을 지날 때 흔하게 보았지만 별로 눈을 유혹하는 꽃이 아니기에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식물. 그런데 이 꽃을 꽃병에 꽂아두니 집안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지칭개는 이름도 좋지만 먹을거리나 약재로도 쓰임새가 많단다. 이렇게 자연은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에게는 더없는 풍요로움을 준다.

쑥 밟고도 쑥 모르는 자연맹(盲) 아이들

3 아이가 부엌 창틀에 놓은 지칭개. 소박한 야생화 하나가 집안 분위기를 살린다.
4 손님이 달걀말이 밥을 하고 있다.
5 자연맹은 두려움이 많다. 그래서 자신을 열어두기보다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집에 왔던 연인 한 쌍은 당분간 도시에서 돈을 번 다음 내려오겠단다. 20년 이상을 도시에서만 살다가 이제 와서 새롭게 흙에서 시작하려니 얼마나 두려움이 많겠는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삶이 설렘이 되기보다 두려움 덩어리로 뭉쳐 있다. 과연 이 젊은이들이 돈 때문에 진정 자연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

우리 부부가 도시 부모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을 되돌려본다. 부모야 자기 좋아 도시에 산다지만 아이가 자연맹이 되는 건 어찌할 것인가?



주간동아 2009.06.02 688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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