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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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통념 뒤집어 보기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01-07 18: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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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통념 뒤집어 보기

    신장섭 지음/ 청림출판 펴냄/ 416쪽/ 1만5000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올해 경제는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없었다”고. 하지만 그도 2008년만큼은 심각성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2008년은 정확히 경제 암흑기였다. 전 세계를 대공황 공포 속으로 밀어넣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주가 대폭락은 우리 국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누군가의 은퇴자금이, 누군가의 미래자산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2008년은 갔고 2009년이 왔다. 새해에도 희망을 말하는 이들은 없다. 경제 예측은 어둡기 그지없다. 게다가 분석과 예측이 어려운 용어로 가득해 이해도 쉽지 않다. 우리 경제는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또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보통 사람들이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때 믿을 만한 경제학자가 제시한 한국 경제의 현실과 방향에 한번 기대어 보고 싶다. 알기 쉬운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의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는 요즘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저자 신장섭은 장하준 교수와 함께 작업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눈에 잡힌 바꿔야 할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기존의 경제 통념을 뒤엎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많이 엿보인다. 저자는 시장만능주의를 비롯해 정경유착, 재벌, 금융, 경제학 수치 등 경제학 상식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한국을 현실에 맞게 재설정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시도는 읽는 이의 흥미를 끈다. 1997년 금융위기 사태에서부터 우리 경제의 방향을 재설정하려는 저자의 시각에 주목하게 되는데, 저자는 IMF 프로그램을 성실히 따름으로써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일반의 해석을 강하게 부정한다. IMF 프로그램은 한국 경제에 고금리와 구조조정, 해외투자 확대를 뿌리내리게 한 독(毒)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IMF 이후 정부 주도하에 정착된 영미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확대는 해외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동시에 저자가 주목한 것은 IMF 사태의 주범으로 몰렸던 기업들이다. 그는 이들에게 찍힌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낙인을 지워낸다. 그리고 2000년 이후의 경제 회복 단초를 세운 것이 이들 기업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새로운 관점의 근거는 이렇다. 한보철강, 대우, 기아자동차 등이 90년대 벌인 대대적 시설장비 투자와 해외시장 진출 등의 장기적 투자를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외국 금융자본이 과잉투자라고 판단함으로써 IMF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2000년 이후에는 이들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빛을 보며 경제 회복의 주춧돌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우리는 IMF 프로그램의 결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재설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벌에 대한 시각 또한 기존과는 달라 보인다. 저자는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비판받아 온 가족경영과 그룹경영을 오히려 옹호하고 나선다. 가족경영이라는 것은 전 세계 기업의 보편적 모습이며, 경영의 지속성 보장 등의 효율성이나 장기투자 가능성 면에서도 재벌이 갖는 강점은 전문경영인 기업보다 훨씬 많다고 지적한다.

    정경유착에 대한 태도도 기존의 통념에 위배된다. 저자는 정경유착의 폐해만 곱씹지 말라고 말한다. 영국 미국 등 경제발전을 선점한 국가와는 달리 후발주자로 나선 싱가포르 일본 홍콩의 경우,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냈음을 상기시킨다. 결국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정경유착을 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는 이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이 책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책에서 말한 대로만 우리 경제가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책 읽는 내내 과거 우리 경제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깨끗한 정경유착,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균형을 통한 경제성장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동시에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사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진행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과거의 경험을 비춰볼 때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책을 통해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소리는 확연히 들린다. 기존의 편견과 외국 사례만을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주체적으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외침을 흘려듣지 않고 반드시 반응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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