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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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나누는 행복한 봉사

백혈병 환자에게 이식 통해 새 삶 기회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 잘못된 인식 사라져야

  •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입력2008-09-29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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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나누는 행복한 봉사

    지난 5월 조혈모세포 기증 수술 직후 김한신 씨(왼쪽)와 가족.

    오전 7시 반.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김한신 씨(푸르덴셜생명 라이프플래너)의 방에 수술실로 향할 이동침대가 들어왔다. 그가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그냥 걸어서 가자”고 했지만 병원 측에선 무조건 침대에 누워서 가야 한단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가노라니 긴장했던 마음은 차츰 가라앉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환자 쪽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8시 수술을 시작하고, 9시에 내 수술이 끝나면 내 혈액이 그쪽으로 바로 이동되겠지? 그럼 그 아이는 12시나 1시쯤 수술에 들어가겠구나. 그 아이의 부모님은 어제 잠을 잤을까? 그렇게 기다리던 골수가 온다니 날아갈 것처럼 좋아하겠구나. 참 눈물나게 감사한 아침이다.’

    완치된 수혜자의 감사편지 받고 눈물 글썽

    조혈모세포란 혈액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가진 혈액세포다. 골수, 말초혈, 제대혈(태반혈)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골반뼈에서 골수액을 채취해 조혈모세포를 추출하기도 하고, 말초혈액이나 제대혈 등에서 추출해 이식하기도 한다.

    백혈병(혈액암) 환자는 기증자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HLA의 적합률은 형제자매간 25%, 부모지간 5%다. 비혈연 간에는 0.005%밖에 안 돼 혈액난치병 환자들은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어렵게 하는 것은 ‘골수 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골수 기증’이라고 하면 일단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아픈 주인공을 떠올리며 기증 역시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큰일했다, 고생했다 하는데 전 그런 말이 민망할 정도로 말짱했어요.(웃음) 금방 체력을 회복하고 한 달 만에 소백산 등반도 하고, 지리산도 2박3일로 다녀왔는걸요. 주위에서 너 정말 기증한 사람 맞냐며 놀라시던데요.”(기증자 한지명 씨)

    한지명 씨는 2006년 2월 ‘말초혈’로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그는 골수로 기증하든, 말초혈로 기증하든 상관없이 ‘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기증할지는 수혜자의 건강상태를 우선으로 결정된다.

    한지명 씨는 기증 등록을 한 지 2년 만에 일치자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공여자와 수혜자를 연결해주는 조정기관에서 기증 의사를 거듭 확인하며 충분히 생각한 뒤 다시 연락하자고 했다. 중요한 결정의 시간이었다. 기증하겠다 해놓고 나중에 마음을 바꿔버리면 3개월간 수술을 준비해온 수혜자의 생명은 되돌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한지명 씨의 부모님은 막상 딸이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안 낳았는데 하지 말라며 잠깐 반대도 했다. “내가 (조혈모세포를) 못 주면 그쪽은 살 수가 없는데, 안 주면 평생 후회하지 않겠어요?”라는 한지명 씨의 설득에 부모님도 곧 동의하셨다고.

    “저는 수혜자의 개인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게 돼 있어요. 생명을 되찾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는데, 어느 날 이름 없이 보내온 편지 한 통을 받았어요. 완치됐다고, 5년 후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고 써 있더군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그 편지를 눈물 흘리며 읽었죠.”

    지금 한지명 씨는 결혼도 했고, 배 속에 6개월 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한지명씨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도 막연한 후유증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증 등록에 많이 참여했다.

    “촉진제는 좀 아파요.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에 비하면 견딜 수 있는 아픔이죠.”(한지명 씨)

    김한신 씨도 처음엔 ‘나는 이런 거 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그의 회사인 푸르덴셜생명의 사회공헌재단이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을 진행하며 기증 등록자를 모집하고 있을 때였다. 김씨는 채혈하기가 싫어 이리저리 피해(?)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권유와 회사의 적극적인 분위기에 결국 등록을 결심하게 됐다.

    “그날 무려 712명이 기증신청 등록을 했어요. 이렇게 다들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등록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직 사람들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 만큼 우리 사회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자 전 인구의 0.24%뿐

    생명 나누는 행복한 봉사

    김한신 씨는 조혈모세포 기증 이후 삶에 감사하게 됐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기증을 원하는 지원자가 직접 59달러의 비용을 들여 등록을 한다. 한국은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등록에 소요되는 비용, 즉 HLA 검사 비용을 국가가 매년 일정액 보조해주는데도 전체 인구의 약 0.2407%(2005년 기준)만이 등록돼 있다.

    “2007년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기증 희망 등록 후 실제 기증한 등록자의 기증 현황을 보면 70% 이상이 말초혈 기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수혈과 달리 말초혈 기증은 법적으로 장기기증으로 구분되지 않기에 회사에서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기증이 가능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실정입니다.”(대한적십자사 혈액수혈연구원 이미숙 씨)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 마치 연애할 때처럼 집사람이 보고 싶더라고요.”(김한신 씨)

    5월 김한신 씨는 그렇게 조혈모세포 기증 수술을 마쳤다. 그리고 2차 기증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다시 이식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말초혈로 기증하면 된다고 해서 동의를 하고 기다리던 중, 2차 기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혜자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 가슴 벅차게 기쁜 순간이었다.

    기증 등록 이후 근 1년간 김한신 씨에겐 이렇게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돌아보면 늘 ‘받을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오늘 누가 내게 친절했는지, 이번 달 월급은 얼마인지. 하지만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선물로 받았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내가 참 받은 게 많다’는 생각에 마음이 넉넉하다. 이런 마음이 전달되는 것인지 요즘 영업도 잘한다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한 문의는 080-722-7575(대한적십자사 혈액수혈연구원 특수혈액관리과)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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