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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침탈 日本에 북한이 발끈한 까닭은?

양국 수교협상 순항 중 이례적 강경 발언 치고 빠지기 전술이냐 의례적 반응이냐

독도침탈 日本에 북한이 발끈한 까닭은?

독도침탈 日本에 북한이 발끈한 까닭은?

지난해 6월 일부 일본인들이 북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군사적 공격 준비를 마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전범국으로 몰리며 움츠렸던 자신들을 한스러워하다 빚을 갚기 위한 꿈을 꾸며 공개적으로 군국주의의 독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첨예한 정치군사적 문제이고,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신성한 우리나라 영토를 넘겨다보며 감히 우리의 자주권을 건드린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북한도 뒤늦게 발끈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월16일자 ‘해외침략을 위한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위험한 군사적 책동’ 제하의 기사에서 “일본이 영토분쟁 조작 책동을 계속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파국적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독도 도발에 이례적으로 침묵하던 북한이 강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우회 비판 이 대통령과 차별화 전략?

북한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대응하곤 했다. 중국과 사이가 좋을 때도 서울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동북공정을 비난했다. 백두산공정 때는 “김일성-저우언라이(周恩來) 회담의 결과인 1962년 국경조약(조-중 변계조약)의 문구를 한 줄씩 재검토했다”(대북 소식통 L씨)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왜 뒤늦게 반응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갈래다. ① 서로 으르렁거리는 남북 관계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서울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마뜩잖았을 것이다. ② 북-일 수교협상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고 조심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비판한 것은 수교협상이 난관을 맞았다는 뜻으로도 점칠 수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거친 단어를 쓴 것은 하루 전 8·15 경축사에서 우회적으로 독도 문제를 다룬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프로파간다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도 역사를 직시해 불행했던 과거를 현재의 일로 되살리는 우를 결코 범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일 대화 라인은 셋으로 파악된다. △공식 루트인 송일호(북한 조-일 국교정상화 교섭대사) 라인 △대일 관계에서 중심을 잡으며 정지작업을 벌이는 노동당 국제부 라인 △2002년 김정일-고이즈미 회담을 성사시킨 비선 라인이 그것이다. 대남 라인이 그렇듯, 북한은 이 세 라인을 별도로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일본 쪽에서 비선 라인을 주도한 다나카 히토시 전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당시 비선 라인의 북측 인사를 국방위원회 소속의 ‘미스터 X’라고 칭했다. 대북 소식통 K씨는 “미스터 X는 국방위보다는 당 중앙위 소속으로 보는 게 적확하다”고 주장한다. 외교가에서 ‘미스터 X’로 회자되는 이 당 중앙위 라인이 지금도 가동된다는 것이다.

북-일 수교협상의 교집합은 경제 문제다. 주민을 굶기면서도 서울의 손길을 거부한 북한 처지에선 100억 달러 안팎으로 예상하는 청구권 자금이 있다. 일본은 청구권 자금을 미끼로 한 대북투자를 통해 북한에서 이권을 도모한다. 한국이 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세웠듯 ‘100억 달러’는 북한 경제의 종자돈 구실을 한다.

북-일 수교협상은 알려진 것보다 순항 중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일본은 납치자 재조사를 조건으로 △인도적 물자수송 선박에 한해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조치 △북-일 간 인적 왕래 금지 조치 등을 해제하겠다고 밝혔으며, 북한은 “올 가을까지 일본인 피랍자 재조사를 실시하겠다”며 물러섰다.

납치자 문제는 수교협상에서 일본이 쥔 전가의 보도다. 평양은 “앞으론 납치자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쥔 패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탈 행위. 중국 선양(瀋陽)에서의 북-일 대화를 앞둔 8월 초 평양은 일본의 문화재 약탈을 ‘인류 문명에 칼질한 엄중한 국제범죄’로 규정하면서 일본을 압박했다.

외교가 첩보에 따르면, 일본은 북한과의 물밑대화에서 “생존자 2, 3명을 받는 선에서 납치자 문제를 해결 짓자”는 완화된 의견을 내놨다고 한다. 일본이 이처럼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내걸자 북한이 재조사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북-미 관계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면서 수교협상의 시계추를 조율한다.

일본의 정치 상황이 수교협상을 재촉하리라는 분석도 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인기는 바닥을 긴다. 야당이 다수를 점한 참의원은 6월 그를 문책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뒤 지지도가 급상승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강한 어조로 일본을 비판한 것은 수교협상과 관련해 ‘치고-빠지기’ 전술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북 소식통 K씨는 “평양의 독도 대응은 수교협상과는 무관하다. 큰 의미가 없는 의례적인 반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 완화된 의견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한국의 대북 지원 감소를 극복하고자 일본에 다가서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한-미-일 공조가 한 묶음으로 이뤄진 예가 없다. 남북 관계가 나쁘던 1990년대 초반엔 일본, 그 뒤엔 미국이 북한을 지원했고 2000년 이후엔 한국이 북한의 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중국을 다지고, 미국 일본과 통하면서 한국을 ‘왕따’시키는 전술로 일부 효과를 보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는 건 무리다. 김대중 정부 때도 초기엔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다. 대화를 구걸하기보다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옳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8.09.02 651호 (p18~19)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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