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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18대 국회 불법파업 40일 비망록

“낯 두껍고 몰염치한 우리 비난 들어도 싸다”

식물국회에 관한 국회의원 4인 ‘자성의 소리’

“낯 두껍고 몰염치한 우리 비난 들어도 싸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비례)

“낯 두껍고 몰염치한 우리 비난 들어도 싸다”
18대 국회가 개원도 못하고 40여 일을 보냈다. 단순 파행과 달리 국회 기능이 완전 마비됐다. 입법부가 부재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헌정 중단이었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채 국민적 비난을 초래했다. 어쩌면 국회의원들 스스로 없어도 그만인 조직임을 증명한 셈이다.

국회의 부재와 파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헌정 60여 년 동안 거의 예외 없이 매년 반복해온 일이다. 똑같은 과오를 60년 동안 되풀이해왔다니 참 미련하다.

국회의원들은 가장 고질적인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이러고도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견제하고 누구를 감시한단 말인가. 가장 낯 두껍고 몰염치한 사람들의 집단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한쪽 탓만 할 수가 없다. 공동책임이다. 역지사지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헌법기관이라는 자긍심이 없다. 거수기고 동원된 이등병이다. ‘제자리 서!’ 하면 꼼짝없이 서 있고 좌향좌, 우향우 구령에 잘도 따른다.



나라 선진화가 시대적 과제이고 현 정부의 국정 목표다. 국회는 국회대로, 각 정당은 정당대로 선진화 전략을 짜서 추진해야 한다. 국회 파행과 파문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국회는 입법기능과 견제 감시기능이 주된 일이다. 이를 위해 감사원과 국책연구기관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 국민 혈세를 지키고 국민에게 필요한 법을 시의 적절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여야간에 정책 대결, 입법 대결을 하면 싸울 시간도 파행 시간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

“낯 두껍고 몰염치한 우리 비난 들어도 싸다”
김형, 후텁지근한 여름에 건강하신지. 이제 내 나이도 마흔 고개를 넘어 쉰에 다다르니 여름날도 슬슬 피해지는구려. 4월 선거에서 부족한 나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도와주던 김형의 헌신적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오. 어느 날인가, 김형이 땀을 훔치며 내게 부탁했던 “좋은 정치 한번 해보자”는 말이 떠오르네. 나 역시 밤낮없이 뛰어 그 어렵다던 서울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개원조차 하지 못한 정치 현실에 누구보다 김형에게 미안할 뿐이네. 국회를 우선 열어 국회에서 따질 일은 국회에서, 시민과 함께할 일은 시민과 함께하자는 나의 주장은 경색된 정국에선 소수파일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조차 하기 민망하네.

김형도 알다시피 광장에는 두 달 넘게 촛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네. 그곳에서 외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무언(無言)의 함성을 들었다네. 어린 여중생부터 시작해 유모차를 이끈 젊은 엄마들, 넥타이부대와 노인분들까지 앞장선 가히 세계적인 범국민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네.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런 거대한 물결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우리 국민의 저력, 우리 역사의 전진이 바로 거기에 있었고 배후가 없는 자발적인 양심의 물결이었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무슨 심보인지 말로는 사과한다면서 ‘수입고시’를 강행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물대포와 몽둥이로 강경 진압했네. 심지어 이를 말리는 동료 국회의원들까지 폭행을 당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 개원을 가로막았다는 항변조차도 부끄럽네. 그저 국민에게, 김형에게 송구한 마음만 커지네.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파악하는 훈련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네.

그런데 김형, 며칠 전 광장에 촛불을 들고 서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과연 여기인가? 국민이 바라는 나의 자리가 여기인가? 내가 수만 개의 촛불 중 하나를 들고 싸우는 것과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 들어가 잘못 가고 있는 권력을 바로잡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정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인가.

문득 국회의원은 국회에 들어가 일은 일대로 하고, 따질 것은 악착같이 따지라는 것이 늘 솔직하고 시원했던 자네의 대답이 아닐까 싶네. 김형, 자네와 약속했던 좋은 정치, 시작부터 잘 안 풀리네.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네가 나를 위해 흘려준 땀 이상으로 발로 뛸 작정이네. 늘 지켜봐줘서 고맙네.

한나라당 백성운 의원(일산 동구)

촛불집회는 총체적인 국정운영 역량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은 과정도 미숙했고 결과도 미흡했다. 집회에 대한 대응조차 안이하고 무기력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깨끗이 시인하고 신속히 보완에 나서는 한편, 공권력의 엄정함만큼은 놓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줬어야 했다. 정부는 촛불정국의 시련을 국정의 새 출발을 위한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촛불집회를 두고 혹자는 ‘직접정치의 새로운 모델’ ‘디지털 민주주의로의 진화’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동하는 다수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민심의 일단일 뿐, 보편적인 국민 뜻의 공약수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오히려 ‘디지털 포퓰리즘’으로 가지 않게 경계해야겠다.

이번 촛불정국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어른과 지도자들이 후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반문케 했다. 아무리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초·중·고생들이 ‘쥐새끼’니 ‘미친놈’이니 하며 대놓고 막말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녀들의 올바른 심성교육과 도덕심의 배양은 쇠고기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마땅히 아이들을 꾸짖어 돌려보냈어야 옳았다. 그런데 실상은 꾸짖기는커녕 촛불 든 아이들 옆으로 국회의원들조차 가서 곁불을 쬐고 있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특히 이번 촛불집회와 진압과정에서 소중한 한 가지를 잃어버려 마음이 아프다. 바로 ‘공(公)’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공공부문·공권력·공무원 등은 국민 전체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인정할 건 인정하고 제지할 건 제지하는 심판관이다. 한 사람의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면 선수들과 관중 모두 권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법이다. 그런데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데 ‘야, 조용히 해!’ 한다면 그건 벌써 경기가 될 수 없고 사회로 기능할 수 없다. ‘공’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할 것인지 숙제를 안았다.

민주당 장세환 의원(전북 전주 완산을)

“낯 두껍고 몰염치한 우리 비난 들어도 싸다”
18대 국회가 파행을 겪다가 간신히 개원했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고물가에 고유가, 고환율 등 어려운 경제상황과 이에 따른 민생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는 터라 더욱 유감스럽다.

파행의 책임은 고스란히 정치권의 몫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인 민주당으로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이번 파행은 상당 부분 이명박 대통령이 자초했다는 점만큼은 짚고 넘어가는 게 온당할 것이다. 야당의 책임을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올바로 알자는 이유에서다.

국회 파행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졸속협상에서부터 시작됐다. 국민의 건강권과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을 내던졌던 것이다. 국민과 야당의 재협상 요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오불관언 ‘모르쇠’로 일관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대화와 협상인데 이 대통령은 이러한 원칙을 외면했다. 장관고시 강행, 경찰의 폭력 과잉진압, 무차별 연행 등 다수당의 위력을 믿고 밀어붙이려고만 했다. 소통은 없고 일방통행식 강행만 있었다. 국정 수습과 국회 정상화 의지가 대통령에게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힘이 부족한 야당이 거대한 여당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국회를 거부한 채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이 이 나라의 오랜 전통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가 열렸지만 이걸로 문제가 끝났다고 여기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민주적 의지를 갖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한 이명박 정권 내내 국회 파행이 계속되리라는 국민적 우려가 팽배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회 파행은 국민을 위해서든 나라를 위해서든 불행한 일이다. 다시는 그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한 민주정치에 매진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주간동아 2008.07.22 645호 (p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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