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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⑬ 질마재

석양빛 물든 서해에 미당의 詩心 출렁이네

친일 논란 서정주 시인의 고향 … 생가 인근엔 미당시문학관 자리잡아

석양빛 물든 서해에 미당의 詩心 출렁이네

석양빛 물든 서해에 미당의 詩心 출렁이네

질마재 마을 풍경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의 전원 버튼 옆에 ‘reset’이라고 적힌 버튼이 있는데, 작업을 시작하거나 끝내기 위해 절차에 따라 누르는 것이 전원 버튼이라면, 이 ‘리셋’ 버튼은 컴퓨터 작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자신이 뜻한 바와 상관없이 오작동할 때,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버리는 ‘강제’ 버튼이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이 게임이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거나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이 버튼을 눌러 모든 것을 ‘원인무효’로 돌려버리기 위해 쓰기도 한다.

그런 증후군, 그러니까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리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축구선수는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골 포스트 위로 멀리 날아가버린 공의 궤적을 바라본다. 야구선수는 크게 헛스윙을 하고는 그 연속 동작으로 거구의 몸을 몇 번 움찔거리면서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게이머는 차라리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 천하의 제일검객들에게 쌍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다. 내게도 그런 욕망이 없지 않아서 정말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너 정말 죽어볼래?’ 하면서 고함을 치며 어서 일어나라고 닦달하는 형을 바라보면서도, 약간의 몸살기를 핑계 삼아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논바닥에 드러누워 엉엉 울던 여덟 살 때의 무지몽매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문학평론가 오형엽이 ‘기억과 망각의 회로’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붙인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에서 시인 박주택은 끊임없이 ‘기억’과 ‘망각’ 사이의 길들을 어깨를 움츠린 채 걸어다닌다. 그에게 새벽이 오고 안개가 몰려들고, 갑자기 여름 하늘에서 낙엽이 떨어지고, 깨진 화분 위의 사철나무에 먼지가 앉고 어둠 속으로 나방이 몰려드는 일들은 ‘수많은 기억의 물고기들이 다친 지느러미로/ 제 집을 찾아 헤매는 것’(시 무창포)의 일환이다. 박주택은 시 門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나를 떠나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내가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들이마신 사람들의 위장 속에서/ 돌아갈 길이 너무 멀어 주저앉아버린 사람들처럼/ 나에게로 내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고창에서 선운산의 양편으로 끼고 도는 국도를 따라서 20분쯤 서해를 지향하여 달리다가, 국도변의 공사판과 ‘가든’과 녹슨 컨테이너 옆을 지나서, 채석장 같은 곳을 꺾어 올라가면서, 오대산이나 월악산 쪽의 고갯길에는 어울리지도 않을 야트막한 고갯마루를 다 올라섰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차는 국도 위의 모래 때문에 내가 의도한 착지 지점에서 좀더 미끄러졌다. 나는, 내 차가 만든 모래먼지 속으로 후진 기어를 넣어 돌아온 다음 국도변의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질마재’.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질.마.재.



‘질마’는 소나 말 등에 얹는 안장 ‘길마’의 사투리

질마재는 ‘질마처럼 생긴 고개’라는 뜻이다. 여기서 ‘질마’는 ‘길마’의 사투리. ‘길마’는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을 가리킨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질마재’가 그런 도구에서 연원한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보통 ‘마른자리 진자리’라고 쓸 때처럼 ‘질마’는 혹시 물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서 질척거리는 마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질마재’는 고창에서 서해로 가다 보면 만나는 야트막한 고갯마루이고 그 고개를 넘으면 작은 마을 하나가 나오는데, 그 마을의 끝은 서해 뻘밭이다. 바닷물이 차고 넘치면 마을이 진창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지리적 판단인데, 이는 또한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시인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 그중에서도 해일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앞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바닷물이 넘쳐서 마당까지 흥건해지는’ 마을을 ‘질마’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지금 그 마을은, 다만 그 겉모양으로는 이 나라의 어느 마을보다 더 정갈하게 소박한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다. 우선 서정주 생가 인근의 폐교를 리노베이션한 ‘미당시문학관’이 있고, 미술가들이 서정주의 시와 유년의 기억들을 모티프 삼아 만든 모뉴멘트가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집집마다의 지붕과 담은 국화 옆에서를 디자인으로 응용한 온기 있는 그림들로 채색되어 있다.

석양빛 물든 서해에 미당의 詩心 출렁이네

미당시문학관(왼쪽)과 미당 서정주 생가.

나는 이 작은 마을의 문학관에서 난데없이 ‘리셋’을 떠올렸다. 미당시문학관의 제2전시동 한쪽 벽면에는 그의 친일시들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따위들이 걸려 있다. ‘이것은 알리바이일까?’ 우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면 ‘단순한 기록’일까.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은 격려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은 바는 아니다. 이 세상 도처에 숱한 문학관이나 기념관들이 즐비한데 그 많은 공간들에서 당사자의 ‘부끄러운 일’을 전시해놓은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서정주의 명백한 친일행적이나 독재 미화 언행은 뚜렷한 역사의 기록이고 그것을 말갛게 ‘리셋’할 수 없다면, 그것을 전시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판단했을 관계자들의 숙고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 ‘한국문학관’ 같은 밋밋한 제3의 공간이 아니라 서정주의 이름으로 된, 그의 시업(詩業)을 기리는 공간에 ‘부끄러운 일들’까지 전시해놓은 것은 격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이렇게 전시해놓았다는 것만으로 서정주의 세계가 간명하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문학관에서 서정주의 친일행적에 관한 토론회가 벌어진 것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지난해 가을 동국대 주관으로 ‘미당의 친일문학-식민지 문인의 내면과 친일의 정신구조’라는 토론회가 열렸고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영원성을 지향하는 미당의 전근대적인 기질은 친일, 이승만과 전두환 찬양 등 권력이라면 절대적으로 받아들인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부족장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으로 된 문학관에서, 그의 행적에 관한 비판적 토론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서정주’라는 이름은 아직 ‘리셋’될 수 없는 시인임을 증명하는 셈인 것이다. 미당 사후에 그의 천거로 문단에 오른 시인 고은이 ‘미당담론’을 발표하면서, 반대파로부터 ‘스승의 등에 칼을 꽂는 배덕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에 문학평론가 김명인 등이 “서정주 신화의 그늘에는 그의 수많은 제자들의 유아적이고 봉건적인 맹종도 깃들어 있지만, 터무니없는 정치적 저능아 서정주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신화화함으로써 한국현대사를 일관해온 자신들의 무지몽매한 노예성에 함께 면죄부를 받으려는 일종의 집단무의식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비판하여 본격적인 문학 논쟁이 전개될 듯하였다가 그만 시들시들해져버린 사연을 떠올릴 때, 그 장소가 이곳 질마재의 ‘미당시문학관’이든 서울 어디의 문화 공간이든 간에 더 진지하고 뜨거운 문학적 논쟁은 단지 미당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현대문학과 정신사의 궤적을 제대로 탐사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일이 되는 것이다.

논쟁의 중심 서정주 ‘리셋’하기엔 아직 이르다

요컨대 아직 서정주를 ‘리셋’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모두의 집합적 기억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하여, 혹은 그와 같은 목적이 무망한 일이 되더라도,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치르게 될 연구와 논쟁 그 자체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는 일이니, ‘리셋’ 버튼은 아직 누를 필요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질마재 고갯마루에서 저물어가는 서해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의 시 자화상이 낮은 산야와 짙은 해무(海霧)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올 듯한 풍경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하략)



주간동아 2008.07.08 643호 (p64~66)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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